장편 소설을 쓴답시고 묻어 둔 소설이 몇 편 된다. 재밌는 소재가 떠올라도 초단편으로 써버리는 게 아까웠다. 글을 쓰더라도 넘지 못할 벽이 '소설'처럼 느껴졌다. 소설이 쓰기 힘든 여러 이유는 '시간'이다. 짧게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있는 와중이다. 장편 소설은 한 소재의 이야기를 몇 일에 걸쳐 써야 한다. 흐름을 몇 번을 끊기고 나면 다시 시작하기 쉽지 않다. 장편 소설을 쓰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다. 쉽게 말하면 '초단편' 소설은 '캠핑텐트'다. 반면 장편 소설은 '빌딩'을 짓는 것과 같다. 짬짬히 시간을 내어 빌딩을 짓는 것보다, 빠르고 가볍게 쓰고 읽을 수 있는 '캠핑텐트'가 좋다고 생각했다. 글은 완성한 순간마저도 훈련이다. 실전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이 '훈련'이다. 내 훈련의 과정이 누군가의 읽을 거리로 제공된다면 그만큼 좋을 일도 없다. 결국 글의 본질은 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시작할 때, 나만의 철학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형편없이 시작하기'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이뤄질 이 목표를 나는 반드시 설정하고 시작한다. 그로서 '형편없이 시작하기'라는 목표를 너무나 쉽게 성취해버린다. 시작이 반이다. 절반을 성취하고 나면 나머지 절반은 식은 죽 먹기다.
학창시절 문방구에서 나름 비싼 다이어리를 산 적있다. 다이어리의 첫 장에 뭐라고 적을까를 고민했다. 일기를 적었다. 적어 넣은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 장의 망가짐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장을 찢었다. 뭐라고 적을지 고민했다. 친구들의 연락처를 적어둘까. 적었으나 얼마 뒤, 다시 그 것을 찢어 버렸다. 이것 저것을 더 시도했지만 여지없이 찢어냈다. 찢어내기를 수 번하고나니, 완전해야 할 다이어리는 다른 의미로 완전해졌다. 시작하지 않는 것 처럼 완전한 상태가 또 어디있을까. 다이어리의 본질은 사라지고 깔끔하게 보관하는 목표만 달성했다. 다이어리 날짜가 다 지난 뒤에서야 그것을 수학연습장으로 사용해야 했다. 이런 상황은 오래 지속됐다. 서점에서 문제집을 산 날도 그랬다. 교과서를 받은 날도 깔끔해야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시작을 못하게 했다. 당시 친구들은 새 신발을 신고 오면 흙 묻은 발로 새신을 밟아주는 관습이 있었다. 흙묻을까봐 조심스럽게 신던 신발은, 친구 녀석들이 흠씬 밟아 버린 뒤로 너무 편하게 신을 수 있었다. 그것이 비로소 내 것이 됐다. '형편없이 시작하기'를 목표로 설정하면 그 뒤에는 내려 놓을 수 있다. 완벽해야하고 완전해야 한다는 강박이 내려지면 그 뒤로는 온전히 내가 편한대로 사용했다. '소설쓰기' 그것의 시작은 역시나 '형편없이 시작하기'다. 그냥 '막' 하다보면 어느 순간 다른 세계가 열릴 때가 있다.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모차르타'나 '피카소, '아인슈타인'도 '천재 필살기' 하나로 유명세를 탄 것 같지만, 무수히 많은 작품을 내 놓은 다작가들이다. 능력있는 스나이퍼의 '단발'보다는 마구자비 '기관총'이 더 많은 표적을 맞추지 않았나.
'초단편'을 흔히 엽편소설이라고 한다. 앞으로 괴상망측한 망상들을 쉴새없이 적어둘 예정이다. 하루 수 천 자를 붙여 쓴 다른 글들에 비해, 소설은 스마트폰으로 읽기 쉽도록 띄어쓰기를 넉넉하게 할 예정이다. 자기 전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간단하게 쓸 예정이다. 앞으로 100일 간 꾸준히 작성할 예정이다. 블로그나 브런치에 끊임없이 적어둘 예정이다. '인스타그램'으로 인연이 된 '김동식 작가' 님의 글이다. 초단편 소설은 사실 '웹소설', '웹툰'처럼 빠르고 짧은 컨텐츠를 즐기는 스마트폰 문화에 최적화된 글쓰기다. 쓰는 사람의 편의가 아니라, 읽는 사람에게 최적화된 컨텐츠이기도 하다. 처음 유튜브를 봤을 때, 가졌던 감정이 있다. 너무 인스턴트처럼 '생략' 해 버리는 것이 '감정의 흐름'을 존중받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유튜브는 곧 대세가 됐고 '틱톡'은 그보다 짧게 나왔다. 사실 감정 너무나 짧게 축약한다는 것은 사실상 당연하다. 영화도 현실을 축약하고 생략한 내용이고 드라마도 그렇다. 유튜브도 그렇고 틱톡도 그렇다. 헤밍웨이의 소설 중 여섯단어로 이뤄진 소설이 있다.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
짧을수록 형편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미술에서는 선 하나, 점 하나로 엄청난 표현을 해낸다. 그것은 그 가치도 엄청날 수 밖에 없다. '얼마나 사실적이냐'는 결코 '사실'을 이길 수 없다. 어차피 그럴싸한 거짓을 이야기 한다면 그런 척하지 말고 진짜 허구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