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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_소설] 당신의 화살이 나를 향할 때_1화

by 오인환

그렇다. 그녀가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형편없는 사람이었고 우리가 쌓았던 추억은 일방적일지도 모른다.


이 쪽의 기억은 추억이고 반대쪽에서는 악몽일지 모른다.


내 기억의 대부분은 이기적이고 형편없는 왜곡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찌 됐건 상황은 벌어졌다.


둘 중 하나는 분명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그것이 나의 것이 맞는지, 상대의 것이 맞는지는 알지 못한다.


객관적이라는 자료들은 아무리 살펴봐도 나의 기억이 맞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대가 끔찍했다는 대부분의 기억 중 일부는 나와 겹친다.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나는 폭언을 일삼고 폭력적인 사람이다.


뭐든 독단적으로 결정하며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어리숙하고 여성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으며

상대를 속이는데 능숙한 소시오패스다.


남들에게는 둘도 없는 형이자 동생이자, 아들이지만

그녀에게서 만큼은 끔찍할 만큼 가부장적이고 독단적이며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나의 기억은 다르다.


그녀와 나는 다툼 한 번 없는 사이다.


서로의 고민을 함께 들어주고 모든 결정을 함께 내렸으며 24시간을 함께 했다.


모든 일의 우선순위에 우리 둘은 함께였다.

그 어떠한 예외도 없었다.


그녀가 하고자 하는 방향이 있으면

어떤 고민도 하지 않고 결정했다.


그녀는 나에게 사랑스러운 아내였으며

내 아이들에게 존경받아 마땅한 어머니였고

양가 부모님에게도 똑 부러지는 며느리자 딸이었다.


그런 그녀와 나는 이제 적이 되었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누구의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일이 일어난 것은 얼마 전이다.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커다란 창가를 머리맡에 두고 있는 침실은 해가 뜰 때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없어도 잠에서 깨어나게 만들어준다.


햇살은 동쪽에서 느닺없이 침실을 침투해서 두 눈을 쏘아붙인다.

그녀는 나보다 먼저 일어났다.

한참을 멍하게 반대쪽 옷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입을 뗀다.


"당신, 내가 딸기 케이크 좋아하는 거 알지?"


그녀의 눈을 바라본다.

그녀의 눈은 초점이 없다.

아직 잠을 덜 깼는지 내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다시 깊은 한숨을 섞어 이야기한다.


"내가 딸기 케이크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어머니 생신이었다.

생크림 케이크를 사 갔었는데, 어머니는 남은 케이크를 우리에게 주셨다.


아마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아침 이른 거 아니야? 케이크가 먹고 싶어? 갖다 줄까?"


그녀는 초점 없는 눈동자의 끝을 방 구석의 서랍에서 나에게로 옮겨졌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머님 있잖아... 어제 생신 때, 눈빛을 봤는데... 우리에게 숨기는 게 있는 거 같아."




그녀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무언가에 크게 배신당한 것처럼...

결의에 찬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대략 알고 있는 것만 350억이야. 언제쯤 이야기를 꺼내실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도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350억이라니, 도통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우리 집은 크게 가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부유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일반적인 가정집이다. 350억의 출처는 어떤 것에서 시작했을까?


그녀가 말하는 350억은 무엇이고 아침 일찍 딸기 케이크와는 무슨 상관인가.


나는 도통 감을 잡지 못했다.


그녀는 갑자기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한숨을 쉬며 말을 잇는다.




"이럴 줄 알았어. 내 말 못 믿을 줄 알았어. 당신은 항상 그런 식이지. 원래 부부란 서로 신뢰 관계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 거 아냐?"




당황스러웠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의 전개에 나는 되물었다.




"혹시 요즘 힘든 일 있어?"




나는 물었다. 그녀는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왜? 내가 미친년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정신병원에 보내려고?"



그녀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기에는 충분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알겠다고 했다.


우리 부모님의 재산이 350억이라면 어째서 졸업학기를 남겨두고 학교를 졸업하려는 나에게 학비 지원이 어려우니 학업을 포기하라고 하셨을까.


그녀의 이야기는 맞다.

부부 사이 혹은 연인 사이의 기본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에 의심을 하는 행위는 부부 사이의 틀을 넘어간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이란 말인가. 나는 그녀의 얼굴을 멀뚱하게 쳐다본다.




서로가 다른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은

나의 병일까.

그녀의 병일까.





망상과 환청, 와해된 언어, 와해된 행동, 정서적 둔마.

이것이 증상으로 이어진 조현형 성격장애...


의사는 이런 모습에 이런 이름을 붙혔을 것이다.

그녀에게...

혹은

나에게..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부부는

믿음으로 얼마 간을 유지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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