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독후감
시간을 되돌려 사고가 일어나기 전,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나 볼 수 있다면... 고전 소설 '박씨전'은 병자호란을 겪은 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박씨전'에서는 요술을 쓰는 '여성'이 오랑캐에 대항한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의 바람이 간절해지면 사람들은 속 시원한 다른 결말에 갈증나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인 줄 알면서 그것을 굳이 읽고 싶어하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권선징악'이라는 이름으로 쓰여진 소설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벌한다는 '이야기'는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 우리 삶에서 '선'을 행하고 보답을 받지 못하거나 '악'을 행하고도 별일 없이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 즉, 사람들은 '염원'과 '현실'의 차이를 해소하고자 한다. 그럴싸한 과학 공상 이야기나 완벽한 연인이 등장하는 연애소설. 그것들의 역할은 있을 수 없는 일을 이야기 속에서나마 있을 수 있게 하는데 있다. 소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은 그렇다. 소설은 일본소설이지만 읽으며 느껴지기에 우리도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우리'는 '세월'이라는 배가 침몰한 사건의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여러 죽음 중에서 '사고사'가 끔찍한 이유는 얼마 전까지 일상을 살았던 이가 갑자기 없어졌다는 허무함 때문이다. '죽음'이 아니더라도 갑작스러운 이별은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한다. 생각치도 못한 이별을 갑작스럽게 맞이하면 그렇다.
알고 지내던 이가 갑작스럽게 사라진 경험은 나 역시 있다. 이 경험이 어떤 트라우마를 남기는지, 분명히 공감한다. 어제까지 일상을 함께한 이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제일 먼저하게 되는 것은 '현실부정'이다.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릿속에 생생한 존재가 다시 함께 할 것 같은 착각 말이다.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가 거짓말이나 착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꽤 오래 지속된다. 점차 현실을 인지하고 받아드리고나면 다음에 오는 감정은 '자책'이다. '자책'은 어찌보면 당연한 순서다. 돌이켜 보건데, 별거 없던 현실이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을 보자면 하루하루가 다르지 않던 일상 대부분이 송두리채 잘못됐다고 여긴다. 어째서 친절하지 못한 말투를 하게 됐는지, 어째서 꼭 하고 싶은 말들은 숨겼었는지. 이별 당일에 자신이 내린 사소한 결정만 바꿨더라면 어땠을까. 앞서말한 두번째 과정이 지나고 나면 그 다음은 현실을 순응하게 된다. 자신의 경험과 적절하게 공감되던 음악과 소설에서 자신의 이야기거 서서히 사라진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치유는 그렇게 3번째 단계에서 시작된다. 소설은 역시 갑작스럽게 이별한 이들의 이야기를 한다. 죽음 이전에 단 한번만 만나 볼 수 있더라면, 해보지 못한 말을 할 수 있을까. 죽음 이전에 단 한번만 만나본다면 듣지 못한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소설에는 총 4건의 이별이 등장한다. 모두 한 사건으로 이별을 맞이했으며 서로 다른 이야기들은 같은 열차에 타서 같은 결말을 맞이한다. 죽음을 갑작스럽게 맞이한 이들은 역시나 스스로 슬퍼하지 않는다. 죽음은 사실 '죽은 이'보다 '그 곁'이 슬픈 법이다. 사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태풍의 눈'은 되려 그 주변보다 조용한 법이다. TV를 보면 가끔 불편한 상황을 맞이한 사람과 인터뷰를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정작 인터뷰를 받는 사람들은 담담한데,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들이 서럽게 우는 경우를 보게된다. '리쌍'의 '광대'라는 노래는 '광대'의 입장에서 쓰여진 가사다. 해당 가사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무대 위에 서면 우린 때론 정반대. 내가 관객이 돼."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린다. 슬픈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슬픈 이야기들이 있다. 모두가 관객이며 광대다. 다만 자신의 슬픔에는 무감각하고 타인의 슬픔에 더 과도하게 몰입한다. 이 소설에도 그렇다. 죽는 이들은 오히려 덤덤하다. 이미 죽은 이들을 그리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은 '죽음'의 당사자가 아니라 주변인들이다. 이야기는 단순히 사고와 그것을 그리워하는 소설로 그치지 않는다. 죽음 뒤에 있던 평범한 일상과 사랑의 이야기들이 함께 있다.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 연인의 이야기, 부부의 이야기 등 실제 우리 삶에서 겪는 여러가지를 이야기한다. 쉽게 읽히고 또 재밌게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