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문
최근 이처럼 빠져서 읽었던 소설이 있던가. 얼마 전, '밀리의 서재'에서 이벤트로 잠시 오픈했던 소설이다. 바빠서 좀처럼 읽지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초반부를 봤다. 그 뒤로 밀리의 서재 12개월을 등록했다. 종이책을 서점에서 구매해 버렸다. '히가시노 게이고', 그는 분명 천재다. 군더더기 없이 인물을 사용하고 감정과 상황을 설득력있게 한다. 제목은 '나 추리소설이오.'하고 드러낸다. '살인의 문', 어쩐지 시작하자마자,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걸 추리할 것만 같은 제목이다. 다만 살인 사건은 좀 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치과 의사 아버지를 둔 '다지마'는 유복한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가정부도 있다. 철 없던 어린 시절의 '다지마'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유복한 '다지마'의 불행은 아버지의 외도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의 외도와 할머니의 죽음. 그 모든 불행은 우연히 받게 된 '한 통의 편지'가 시발점이다. 편지는 '다지마'를 저주한다. 그런 류의 농담을 믿지 않던 주인공이지만 어쩐지 찜찜하다. 편지는 '저주'나 '마법'처럼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소재로 삼진 않는다. 다만 편지는 어떤 이와 이어지는 첫 매개체가 된다. 아버지의 외도, 할머니의 죽음그 뒤로 더 불행한 일이 기다린다. 할머니의 죽음에 '어머니'가 개입됐다는 소문이 도는 것이다. 주변에서는 그의 가족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다. 소문은 가볍게 시작했으나 점차 묵직해진다. 소문 덕분에 치과에는 환자가 오지 않는다. 심지어 경찰까지 조사하러 온다. 일이 점차 꼬여간다. 다지마의 부모는 이혼을 결심한다. 이 불행은 다시 더 크게 시작이 된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새로운 연인을 마주한다. 그녀는 따로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돈을 목적으로 접근했다. 이 사실로 아버지는 연인의 남자친구로 피습을 당한다. 피습의 후유증은 손떨림으로 나타난다. 결국 치과는 문을 닫는다. 그 뒤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다. 학교에서는 각종 따돌림을 당한다.
소설의 주 소재는 '열등감'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되면 앞으로 읽을 독자에게 스포를 하게 되는 셈이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한다. 다른 이들의 감상평을 보니 주인공을 '답답하다'고 평하는 이가 많았다. 실제로 주인공은 답답했다. 다만 어쩐지 내 모습과 겹쳐보이기도 했다. 쉽게 누군가의 말을 믿기도 하고, 그를 의심하기를 반복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입장에서 나 또한, 믿고 의심하기를 반복했다. 어떤 행동이 수상하게 보이다가, 그쪽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 만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또 어느 순간에는 수상해 보이기도 하다가, 듣고보니 그럴 듯했다. 나또한 주인공처럼 답답한 선택을 했으리라. 실제 내 인생에도 비슷한 경우는 있었다. 나와 인연이 된 누군가는 얼핏보기에 나를 무시했다. 자존심이 심하게 상하고 나면, 언젠가 그는 맥주 한잔 하며 '그의 깊은 뜻'을 설명했다. 그러면 줄곧, '나를 위한 배려'에 감동한다. 그러다 행동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눈빛에는 '배려'따윈 없다. 다시 언제고 그는 자신의 깊은 뜻을 이야기했다. 그를 의심했던 좁은 속을 탓하며 자책했다. 돌이켜보니, '깊은 뜻'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저 그 순간을 모면하려는 '처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진실을 알고자 '그렇다'와 '아니다' 사이에세 헤재지말고 확실히 의심을 하거나, 확실히 믿었다면 어땠을까. 요즘에는 이런 경우를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다고 했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 사전의미는 그렇다. 그렇다. 몇 번을 그렇게 당하고 나면 나를 막대하는 누군가가 '깊은 뜻'을 갖고 있다고 합리화하게 된다. 결국 자신을 지배하는 것은 '타인'이 된다. 그가 하는 말에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버린다.
누군가와 '비교'하고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느끼는 감정을 '열등감'이라고 한다. 열등감은 행동하게 하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스스로를 갉아먹게 하기도 한다. 소설은 무시무시한 '살인'에 관한 소설이 아니다. 소설 어린 소년이 성장하며 청년이 되고, 취업하고 결혼하는 우리 시대 너무 흔한 이야기다. 거기에서 벌어지는 갈등 또한 너무나 평범했다. 친구의 소개로 위험에 빠지거나, 친구에게 도움을 받는다. 자신을 도와주는 친구에게 증오심을 갖기도 하고, 다시 그와 인연을 이어가기도 한다. 어느 부분에서는 나와 닮았다. 수 일 간, 책을 들고다니며 읽고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번갈아가면서 봤다. 생각이 많은 요즘 아주 몰입하고 읽었다. 그것이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누군가를 의심하는 행위를 바라보며 '편집증'이나 '조현병'으로 여긴다. 겉으로 보기에 너무 잘해주는 지인의 의도를 이상하게 해석하고, 친절에 다른 의미를 찾는다. 어떤 기회를 주어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기회를 준 사람을 탓한다. 소설은 단순히 '선'과 '악'이라고 구별하기에 모호한 부분이 있다. 우리에게는 모두 다 열등감이 있다. 열등감은 실제로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나오는 '살인의 문'의 의미는 그렇게 해석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를 보면 그 도입에 '살인'이 나온다. 살인범은 '흉악'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상대를 악마로 묘사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는 일이다. 모든 개인은 스스로 납득할만한 상황에 놓인다. 그것은 '살인'이라도 마찬가지다. 살인은 분명 정당화 될 수는 없으나, 그들에 대한 심리 이해를 거부하고 '악'으로 치부하는 것도 옳지 않을지 모른다. 모쪼록 이처럼 술술 읽히고 생각할 거리도 많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히는 소설은 너무 오랫만이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