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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금택 Jan 08. 2024

초품아 그렇게까지 사야하나?

이 세상 모든 아빠는 아이를 위해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될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위해 아빠는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학교, 내 아이의 수준과 비슷한 또래를 만나 친해지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국내 유명한 사학초등학교는 예약순서만 해도 기약이 없고, 학비도 너무 비싸기 때문에, 웬만한 학구열이나, 재력이 있지 않고는 도전이 힘들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야 하는 시기에 젊은 부부는 고민이 많다.

아이가 어떤 친구들과 사귀게 될지, 어떤 담임선생님과 만나게 될지 , 무엇보다 내 아이가 처음 가는 학교에 잘 적응하게 될지 걱정이다. 아이도 처음이지만, 부모도 학부모가 되는 게 처음이다.

현실적인 문제는 통학거리다.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로 두 정거장 이상이면 아이 혼자 통학은 불가능하다. 부모가 학교까지 통학을 도와주어야 하는데, 직장 출근시간이 문제가 된다. 

집, 학교, 지하철역 과의 거리가 나에게 친절하지 않을 경우가 많다. 

아빠의 직장은 강남쪽이고, 아내의 직장은 신촌이다. 신림역은 넉넉하지 않은 청춘이 결혼해서 둘만의 작은 공간을 얻기 좋은 곳이라, 청춘들과 직장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신림역을 기준으로 저렴한 빌라와, 원룸이 많아 전월세 상품이 풍부하다. 그래서 언제나 돈 없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초등학교에 보내야 할 때쯤엔 직장 출근과 아이 통학을 고민해야 한다. 

초등학교만 본다면 마포, 공덕역이 양호한 편이다. 초등학교가 아파트와 지하철 근처에 있어 , 통학과 출근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림역과 공덕역 아파트 가격은 차이가 아주 크다. 

결혼하고 두 사람만의 주거공간을 선택하고, 이제는 아이의 생활공간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아이의 학교, 출퇴근을 위한 교통, 주변 환경에 대한 여건을 모두 충족한 아파트는 항상 가격이 문제다.  아이가 학교에 가게 되면서 아파트의 위치와, 부모의 재산이 갑자기 중요 해진다. 


이 세상 모든 아빠는 아이를 위해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단지 내 초등학교가 있다면 아이 통학이 부모의 출근과 아무 관련이 없게 된다. 힘이 넘쳐 늘 뛰어다니는 아이가 4차선 횡단보도를 건너 학교에 가는 상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아파트는 아이의 삶과 부모의 삶이 겹쳐질 때, 상충되지 않고 오히려 시너지가 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도구다.

나는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면서 더 이상 초품아가 필요하지 않게 됐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해에 나는 광명북초 근처 우성아파트를 매수했다. 

내 형편에 도저히 불가능한 금액이었지만, 가진 돈 모두와, 신용대출까지 끌어모아 북초와 맞닿은 아파트를 미친놈처럼 매수했다. 다달이 우수수 빠져나가는 이자를 볼 때마다, 나의 선택이 적절했음을 확신했다. 이 아파트가 아니었다면, 하루하루 아이들의 통학과 나의 출근을 조율하느라 전쟁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생활이 지치고 힘들면 집중할 수 없고, 나 자신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빠져나가는 이자가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졌다. 

초등학생을 둔 젊은 부모에서 , 이제는 먹고 노는 대학생이 영 못마땅한 중년부모가 되었다. 

젊은 후배 부모에게 초품아를 넘겨주고, 근처 공원이 있고 편의시설이 있는 신축아파트로 이사했다. 나와 가족이 나이를 먹고, 그때마다 필요한 주거공간은 변화한다. 


교양 있으신 분에게, 보통사람들이 거주하는 집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따끔한 훈계를 들었다.

가난하고 젊었던 나는 버거운 삶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부에 대한 욕망과 가족에 대한 사랑에 조금은 미쳤었다. 

집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을 욕하고, 따질 만큼 여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싸움을 하고, 아파트를 가지고 장난을 쳐서 수억 원의 차익을 내서 가격이 치솟아 오르더라도, 나는 그들을 정죄할 여유도, 그래야 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나는 오직 내 삶에 진심이었다. 

오직 내 아이와 가족을 위해, 사람들이 장난쳐 가격이 치솟아 오른 아파트를 아무 생각 없이 샀다.

왜 이리 아파트가 비싸냐고 따지고 욕하지 않았다. 그보다 내 아이가 , 내 삶이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싼 아파트는 우리 가족에게 몇 배 더 큰 삶의 가치와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적어도 내게 삶이란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 어떻게 더 행복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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