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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금택 Jan 14. 2024

아파트에서 빌라로 내몰리는 사람들

조금 멀리 보고 방향성 있게 영리하게 달리실 수는 없으신가요.


협의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왜 너네들끼리 결론 다 내려놓고 통보하냐.

나 그날 집 못 빼.!!. 할 테면 해봐. 

분명히 한 달 전 집을 보러 갔을 때, 살고 있던 세입자는 계약기간도 끝나고, 본인도 2월 말이나, 3월 초쯤 나가겠다고 했다.


중개사는 이사날짜는 협의하자고 말했고, 세입자도 그러마 고 했다. 

새로 들어올 세입자가, 3월 11일 날짜가 잡혀 집주인과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에 중개사는 기존 세입자에게 확인전화를 했다. 

3월 11일로 날짜가 정해졌으니, 새 집을 구하시는데 참고하시라고..

갑자기 전화기 너머로 쌍욕이 날아왔다. 왜 니들 마음대로 사람을 내쫓으려 하느냐고.

3개월 이전 통보이고, 이미 지난달에 언질을 준 상태다. 

보통 이런 경우 누군가 먼저 집을 구하면 , 그 사람 이사날짜에 다음사람의 이사날짜가 정해진다. 

이번엔 새로운 세입자가 먼저 날짜를 정한 것뿐이다. 3월 11일이 정해진 날짜라, 앞으로 당겨서 나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뒤로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세입자도 11일에 집을 빼주어야 그 날짜에 이사를 뒤따라 들어오기 때문이다. 

한참을 실랑이하면서, 임대차법까지 나에게 다 가르치신 다음,  제풀에 전화를 끊었다. 

돈을 참 어렵게 버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계약기간이 종료되었고, 집 구하시라고 계약금 일부도 보내 드린  상태라 이쪽이 법률적 하자가 전혀 없다.  


다만 시장이 변한 거다. 기존 세입자가 지금의 보증금으로 비슷한 컨디션의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2억 4천 전세보증금으로 25평 아파트에 거주했다는 것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왜 나를 아파트에서 빌라로 쫓아내느냐고 항변하는 것이다. 

기존 세입자분 눈에는  세상이 참 야속하게 보일 것이다. 힘들게 하루하루 살다 보니 갱신권까지 4년이 훌쩍 지나갔고, 그사이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했다가, 다시 또 곤두박질쳤다는 뉴스를 흘려들었을 뿐이다. 막상 내가 부동산 시장에서 새로 이사 가야 할 집을 구하려고 알아보니, 집값은 뉴스에서 말하는, 정부에서 말하는 그런 안정적이고, 저렴한 가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이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부동산 가격과, 실제 시장가격의 괴리를 인정할 때까지 꽤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직관적으로 집값을 올린 집주인(x) 들이 탐욕적이고 증오스럽다. 정부와 내가 아는 모든 유명하고 매스컴에 나오는 사람들이 집값 안정화를 주장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 시장에서는 그에 반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이해도, 용서도 할 수가 없다. 


이분들에게 자본주의 메커니즘과, 정부가 돈을 풀어서 인플레이션이 가중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기에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다. 손에 잡히지도, 형체를 정확히 알아들을 수도 없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체계를 어떻게 몇 마디 훈수로 이해시킨단 말인가. 

자본주의에 살아가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어디선가 알려주는 곳도 없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가장들. 

조금 멀리 보고 방향성 있게 영리하게 달리기에는 펼쳐진 야생이 너무 숨 가쁘다. 

함께 달리는 경쟁자가 너무 빠른 것 같고, 지금 이 순간 멈추면 곧 낭떠러지일 것 같은 위기감에 사로 잡혀, 죽을 때까지 달리기만 하는 우리 삶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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