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서시를 읽고 인공지능(챗GPT)의 해석은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며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죽기 전까지는 언제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고통받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죽기 전까지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있고 주어진 길을 걸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는 것을 보며 삶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다. 다른 문장들은 그대로 직역하고 있고 그렇게 해석해도 무방하지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고통받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는 이 부분을 읽으면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참 기계적으로 해석했네.
윤동주의 서시 원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 문장은 어떤 시련과 고통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이어야 하는데 나약해지는 자신을 괴로워하는 부분이다. '바람'은 외부의 시련, 내면의 흔들림으로 해석된다. 문득 바람에 떨리는 잎새를 바라봤든지, 거친 바람에 부들부들 떨리는 잎새를 상상했든지, 나를 가만두지 않는 세상 속에서 고독하고 힘든 자신의 모습이 잎새로 투영되고 그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당당히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 용기를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일본 경찰의 폭력에 의해 식민지 청년으로서 항거불능의 상태로 생체실험을 당해야 했던 그였지만 '순수'가 무엇인지를 그는 서시에 낱말 하나하나로 박아 넣었다. 자신이 걷고자 하는, 결심한 그 길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가겠다는 의지. 순수성을 서시 전체에서 보게 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시 아니겠나. 윤동주의 얼굴만큼 깨끗한 시가 탄생되었다고 본다. 얼굴, 눈빛. 마음이 하나가 되기도 참 어려운데~우리는 가식으로 치장한다. 외모부터. 덜 바르고 덜 두르고 덜 입으면 순수한 것 맞다. 덧바르고 덧입고 덧칠하다 보니 엉망진창이 되는 거다. 치장하지 못 하는 게으름을 이렇게나마 변명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