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렐은 평행이란 뜻이다. '평행 엄마'가 무슨 뜻일까?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와 '아나'(밀레나 스미트)가 한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한다. 같은 날 출산한 아이가 뒤바뀌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아나'로부터 아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뒤바뀐 사실을 아는 '야니스'는 진실을 말하지 않은 채 '아나'를 자기 보모로 들인다.
둘은 동성애 관계도 보이면서 잘 지내다가 '야니스'의 떠났던 애인이 돌아오려 하자 '아니'에게 '진짜 엄마가 너'라는 사실을 밝히며 '아니'와 헤어진다.
이후 '야니스'는 스페인 내전으로 숨진 할아버지의 유골을 찾는 일을 애인과 함께 해결한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제주 4.3 사건'을 마지막에 슬쩍 넣어 역사적 아픔을 드러내는 식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뭔가 잘 안 맞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지만 이야기의 부분부분에서 상당히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포스터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병원에서 친자가 바뀐다는 뭔가 자극적 이야기를 암시하지만 영화를 보면 갈등이 술술 해결되어오히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는다. 왜냐하면 현실은 늘 답답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먼저 아이가 뒤바꼈다는 사실을 안다면 현실은 어떻게 전개되는가? 득달같이 찾아가서 내 아이를 내놓으라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야니스'는 그냥 뒤바뀐 아이를 기른다.
또 유부남인 애인에게 임신한 사실을 말하자 지우라고 말하는 남자와 헤어지고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자기에게 찾아온 이 아이를 너무 기쁘게 맞이한다.
병원에서 만난 '아니'는 미성년자이고 임신한 상태지만 이혼한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있으며 아버지에게 계속 양육비를 요구한다.
이후 '야니스'는 친자가 돌연사로 죽은 걸 알았지만 비밀을 유지하다가 '아니'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다시돌아온 애인과 함께 삶을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나하나 커다란 일이고 갈등이 아닐 수 없는 일들이 문제가 안 되는 것처럼 해결이 되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여자들이 자기 삶을 좀더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선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를 원하면 출산을 하는 것이지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출산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또 '친자'에 목을 매며 타인이 기르는 아이를 강제로 데리고 오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행 엄마'가 아닐까? 내 아이든, 니 아이든 그냥 기르는 거다. 물론 현실적으로 무지 어려울 것 같다.
언젠가 본 영화에도 10년 이상 남의 집에서 잘 기른 뒤바뀐 아이를 데리고 왔지만 추억이 없는 친부모와 추억이 있는 부모 중 아이는 항상 길러준 부모를 그리워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 했다. 그래서 친부모는 아이를 다시 그 집으로 데려다 준다.
내가 소유하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가 사랑받으며 편안해 하는 그 공간과 추억을 지켜주는 것이 오히려 더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소유와 사랑, 소유와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틀이 오히려 부자유스러움을 강요한다. 그것이 정답도 아니다.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고도 한다. 너와 나가 서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게 정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