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이 오면서 책을 멀리했다. 사기만 하고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래 중 이미 돋보기를 쓰는 이도 있다. 돋보기로 책을 읽는 건 더 엄두가 안 난다. 퇴직 후 웨이브, 넷플릭스, 유튜브를 보다 보니 책은 더더욱 멀어졌다.
그러다가 국립중앙박물관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다시 읽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최근에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 집에서는 책 들기가 싫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장소'가 진짜 중요하다. 음식을 먹는 장소에 따라, 잠을 자는 장소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듯 같은 문장이라도 다르게 읽힌다.
집에서 독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더 많이 읽을 텐데. 굳이 운전을 해서 30분을 달려가야 하고. 까페라떼 4500원을 내고 자리를 잡아야 하지만. 창문 너머 녹음을 보며 눈을 식히고 마음이 호젓해지는 느낌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독서로 인한 즐거움들이다.
책도 재밌고, 커피도 맛있고, 풍경도 멋지다.
카페까지 가면서 이미 드라이브로신났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니 좋고 한두 시간 읽고 점심까지 사 먹으면 더 좋고.
책 하나 들고 나왔지만 파생되는 즐거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 읽다 보면 글도 쓰고 싶어지고.
'집'에서도 꼭 책을 읽어야지'라고 다짐하지만 커다란 TV가 나를 압도하고, 피아노에 가서 뚱땅거리고 싶고, 냉장고 문을 계속 열어젖히고, 차를 마신다고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할 게 뻔하다.
내일은 다른 카페로 가 봐야겠다. 한두 시간이라도 바깥공기를 쐬면서 명상 아닌 책상, 책을 읽으며 명상에 잠기는, 유일하게 내가 온전해지는 시간을 가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