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증언 06화

묘비명

by SAndCactus

묘비처럼 서 있었다 무덤 옆에는

으레 그런 게 서 있어야 하니까 배신당한

이에게도 애도는 필요했다 순전함이

죄가 되는 세상이라도 묘지 옆에는

늘 내가 서 있어야 했다 이유를 대신

세워둘 수는 없으니까 왜 잠자리는

가위와 닮았고 당신은 왜 기름처럼

스며들었는지 잠자리의 날개를

뜯어볼 수는 없으니까 당신에게서

화상을 걷어낼 수는 없으니까 어떤 불가역의

망가짐은 상처보다 세 배는 더 아팠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몫까지 울어야 했으니까 잠자리의 날개를 달고도

날 수 없어 당신은 한 번 더 울었다 중력을

원망하는 것은 세상을 원망하는 것보다

쉬웠다 세상도 그럴 듯한 이유를 오만곳에 다 부여할

여유는 없었을 테니까 돈이

목숨보다 귀해야 하는 것도 잠자리가

날개를 찢는 손을 베어버리지 못하는 것도 당신이

울고

있는 것도


(중력이 거꾸로 된 세상에서는 눈도

거꾸로 내릴까 구름 위로도 날릴까 태양을

꺼뜨릴 수 있을까 천국을 향해서

뛰어내릴 수 있을까 잠자리의 날개가 없어도)


중력이 발을 놓아주지 않는 탓,

모든 비겁한 것이 아직 이 땅에 남아있는 것은

내가 아직 당신을 따라가지 못한 것은

keyword
이전 05화무단횡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