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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증언 05화

무단횡단

by SAndCactus

3,


2,


그리고 1이 길다. 1은 늘 길었다.


마지막은

마지막다워야 한다고 너는 말했었다. 다음을

예비하지 않는 것, 그것 또한 마지막의 속성이었다.

미적지근한 것은 아프지도 않고 그래서

살아있지도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닌 시간은 살아있다, 다행히

피처럼 붉고 극적이다. 내어준 것이 아니라 빼앗겼음을

생생하게 실감해야 하니까. 아프게,

피처럼.


그 누가 15초의 기다림 앞에 고작이라는

이기를 주장할 수 있나. 찢어진 현수막의

설움에 내 영혼을 내어주기에도 1은 길었다.

자, 다시.


3,


2,


1은 1이고,

0을 담보하지 않는다. 그래도 파란불은 결코

지고 싶지 않았을 테지. 빨간 불,

왜 네가 주인이어야만 하지,

빨간 불.


파아란

문제:

빼앗긴 시간으로 발을 내딛는 것은 죽음을 담보하는가?


아무래도 좋을 거야, 죽음으로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 죽음을 사는 사람도 있고.


그러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부도덕,

이라는 말은 거창해서 좋았다. 무책임은 정확히

그 반대의 의미로 싫었다. 빨간 불,

너는 왜 나를 부정하지. 나는 왜

너를 거역하려 하지,

빨간 불.


파아란

문제 2:

내가 주인이었던 날들보다 그렇지 못한 날들이 더 길었나?


후회스럽지는 않다. 별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잖아. 빼앗긴 것은

내어준 것보다 더럽고 질척거리는 것이어야 했다, 피와

닮아 붉고 극적인.


산다는 게 왜 고통스러운 것인지 누가

답을 했더라. 빨간 불,

답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 거였더라, 빨간 불.

왜 너는 빨리 오지 않는 거고, 왜 1은 이렇게

길기만 하지, 왜 나는 어딜 가나

너를 기다려야만 하지, 왜

멈추어야 하지,

빨간,

불.


때는 아직도 오지 않았는데 발이 심장보다

먼저 초조하다. 찢어진 현수막은 여전히

찢어진 것이고 또 영원히 그럴 테지. 어떤 시간은

영원히 가지 않으니까.


사실 영원히 가는 시간은 없어, 우리가 다

죽어 없어진다면 빨간 불 따위 알 게 뭐람. 길을

건널 사람도 없는데, 고작이라도 15초는 영원히

내어줘야 하겠지, 차라리

그게 승리일지도 몰라.

파란

불,


자. 그럼.


다시




3,


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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