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2,
그리고 1이 길다. 1은 늘 길었다.
마지막은
마지막다워야 한다고 너는 말했었다. 다음을
예비하지 않는 것, 그것 또한 마지막의 속성이었다.
미적지근한 것은 아프지도 않고 그래서
살아있지도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닌 시간은 살아있다, 다행히
피처럼 붉고 극적이다. 내어준 것이 아니라 빼앗겼음을
생생하게 실감해야 하니까. 아프게,
피처럼.
그 누가 15초의 기다림 앞에 고작이라는
이기를 주장할 수 있나. 찢어진 현수막의
설움에 내 영혼을 내어주기에도 1은 길었다.
자, 다시.
3,
2,
1은 1이고,
0을 담보하지 않는다. 그래도 파란불은 결코
지고 싶지 않았을 테지. 빨간 불,
왜 네가 주인이어야만 하지,
빨간 불.
파아란
불
문제:
빼앗긴 시간으로 발을 내딛는 것은 죽음을 담보하는가?
아무래도 좋을 거야, 죽음으로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 죽음을 사는 사람도 있고.
그러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부도덕,
이라는 말은 거창해서 좋았다. 무책임은 정확히
그 반대의 의미로 싫었다. 빨간 불,
너는 왜 나를 부정하지. 나는 왜
너를 거역하려 하지,
빨간 불.
파아란
불
문제 2:
내가 주인이었던 날들보다 그렇지 못한 날들이 더 길었나?
후회스럽지는 않다. 별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잖아. 빼앗긴 것은
내어준 것보다 더럽고 질척거리는 것이어야 했다, 피와
닮아 붉고 극적인.
산다는 게 왜 고통스러운 것인지 누가
답을 했더라. 빨간 불,
답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 거였더라, 빨간 불.
왜 너는 빨리 오지 않는 거고, 왜 1은 이렇게
길기만 하지, 왜 나는 어딜 가나
너를 기다려야만 하지, 왜
멈추어야 하지,
빨간,
불.
때는 아직도 오지 않았는데 발이 심장보다
먼저 초조하다. 찢어진 현수막은 여전히
찢어진 것이고 또 영원히 그럴 테지. 어떤 시간은
영원히 가지 않으니까.
사실 영원히 가는 시간은 없어, 우리가 다
죽어 없어진다면 빨간 불 따위 알 게 뭐람. 길을
건널 사람도 없는데, 고작이라도 15초는 영원히
내어줘야 하겠지, 차라리
그게 승리일지도 몰라.
파란
불,
자. 그럼.
다시
한
번
더
3,
2,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