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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증언 01화

꽃 피는 아몬드 나무

by SAndCactus

아몬드를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으면서 나의 이름을 물려받은 아이를 생각한다

이르게 피는 꽃들은 그만큼 이르게 질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예정받은 모든 존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에게 희생된다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힌다 반년 전까지 그곳은 아몬드 나무의 자리였다

아몬드 나무의 영혼이 말라비틀어진 가지를 흔들었다

누구신데 여기에 누워 계시나요.

여기는 제 자리입니다.

반년 전에 죽은 아몬드 나무의 가지는 처음부터 쭈글쭈글했다

너는 그래도 운이 좋아

꽃이 죽을 때 같이 죽는 나무들도 있어

아몬드 나무의 꽃이 질 때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

애도에도 자격이 필요하대

오도독오도독 부서지는 아몬드의 속살은 뽀얗다

여기는 제 자리입니다.

꽃 피지 않는 아몬드 나무의 가지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해

아몬드 나무의 늙은 가지도 내장은 흰색일 것이다

여기는

자리

입니다


그는 아몬드 한 알을 묻는다

아몬드 한 알이 흙을 파고든다


여기는

묘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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