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말할 수 있는 다짐

<운영전> 속 용기

https://www.youtube.com/watch?v=XIkgRZczFNA

"말 못 할 트라우마에 시달려왔다... 델레 알리의 충격 고백에 따뜻한 응원 보낸 동료들" (2023. 7. 14)

2년 전. 잉글랜드 국적의 축구선수 델레 알리가 유튜브 채널 '디 오버랩(The Overlap)'에 출연해 어린 시절 가정불화로 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고백했다. 국내에서는 과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소속의 토트넘 홋스퍼 시절 대한민국 손흥민의 동료이자 '게으른 천재'로 익숙했기에 소식이 널리 알려졌다. 6살 때 친모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친모의 친구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게다가 자신이 살던 집안에서 마약과 파티를 즐기는 환경이다 보니 7살에 담배에 손을 댔고, 8살에는 마약 거래에 빠질 정도였다. 12살 때 새 가정에 입양돼 양부모의 지원을 받고 축구선수가 되어 성공했으나, 친부모가 언론에 나와 양부모들이 그를 이용한다고 조장하자 배신감을 느껴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고. 이후 슬럼프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과거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수면제 중독과 정신 건강 문제로 6주간 재활 치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선수로서 반등할 것을 굳게 다짐하면서 자신처럼 정신적 고통이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임했다고 밝혔으며, 그를 향한 동료들과 팬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이후 그는 2025년 이탈리아 세리에 A 소속의 코모 1907에 입단해 부활에 힘쓰고 있다.


고통을 인내할수록 남는 건 따가운 괴로움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을 일을 겪게 되고, 그 과정에 고통을 겪게 된다. 반대로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만큼 고통은 인생에서 보편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고통은 개인이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로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양상이 제각각이다. 만약 쉽게 피할 수 있는 고통이라면 적극적으로 피해야 할 테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고통은 단지 좋지 않은 수준을 넘어서 심리적, 정서적으로 흉터를 남길 정도의 일에서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고나 사건에 휘말리면 여기서 발현되는 고통을 겪는데, 이것이 더욱 심각한 상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여기서 고통이 지속되어 나타나는 심리적 외상을 '트라우마(Trauma)'라고 부른다. 트라우마는 심각한 신체적 손상이나 생명의 위협에 의한 정서적 충격에서 일어나는 것이 기본적이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일어난다. 예시로 학교나 직장 내 폭언과 따돌림으로 인한 괴롭힘으로 사람을 피하려 하거나, 교통사고를 겪고 사고가 일어난 장소 부근에 가면 사고 때의 일이 떠오르며 불안감과 스트레스에 휩싸인다. 결국 직접 겪은 사건과 사고의 심각성, 반복 노출과 경험을 받아들이는 주관적 척도에 따라 트라우마의 양상이 결정된다.


이러한 트라우마가 주는 심리적, 정서적 고통은 세월이 지나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옷에 뭍은 먼지처럼 털어내고 싶지만 이를 인내할수록 당사자를 비참하고 굴욕적으로 만든다. 그렇게 기억으로 저장된 고통은 부정을 형성하고, 이로부터 후유증이 나타난다. 곧 고통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 깨질지 알 수 없는 살얼음판 위를 조심스레 걷는 것과 같다. 이로 인해 삶을 유지하던 자존감은 고통 앞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며 부정적인 자아가 형성되고 이는 자학을 요구한다. 따라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우리를 무너뜨린다.


궁궐에 갇힌 궁녀들의 한 서린 변(變)


조선 17세기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운영전>은 선비 '김진사'와 궁녀 '운영'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 몽유록계 소설이다. 작품의 특징은 일반 몽유록계 소설과 달리 이중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듣는 '유영'이 취몽으로 현실에서 환상세계로 이동해 김진사와 운영을 만나는 장면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전개되다, 내부로 들어가 김진사와 운영의 일화 장면을 각각 인물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고, 또다시 외부로 나와 취몽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유영의 장면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전개되는 구조를 지녔다. 그 결과 작품 속 사건은 평면적으로 서술되지 않고 시간의 역전을 통해 입체적으로 형상화된다.


이야기를 살펴보자면 수성궁 경치를 즐기다 술에 취해 잠든 선비 유영이 꿈에서 김진사와 운영을 만난다. 그곳에서 유영은 김진사와 운영의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당시 학문과 예술에 능통한 인재를 양성하려던 안평대군에게 서예와 시를 배우며 수성궁에 살던 궁녀 운영은 우연히 안평대군을 찾아온 선비 김진사와 눈이 맞는다. 그러나 항상 궁궐 안에서만 생활하고 외부인과의 접촉을 금기시 한 안평대군의 명령으로 규범적으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런데도 김진사와 이루고 싶은 사랑에 목마른 운영은 다른 궁녀들의 도움을 받아 은밀한 사랑을 나눈다.


그러다 운영과 김진사의 시를 본 안평대군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 의심하기 시작하자 운영은 고민 끝에 다른 궁녀 '자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궁궐 탈출을 결심한다. 그렇게 김진사는 노비 '특'과 함께 운영과 재물을 빼내려 계획하나, 사실 김진사를 죽여 운영과 재물을 탐하려던 특이 끝내 배신하면서 둘의 밀회가 탄로 나고 만다. 안평대군은 죄를 따지려 형장에서 운영을 포함한 궁녀들을 문초하나, 궁녀들이 적극적으로 변론하고 항의한 끝에 운영을 별당에 가두는 처벌에 그친다. 더 이상 김진사를 볼 수 없어 상실감에 빠진 운영은 자결하고, 김진사는 운영을 위해 절에서 재를 올린 후 병세로 죽는다. 일화가 끝나자 둘은 천상에 올라가 평생을 누리고, 이후 정신을 차린 유영에게는 둘의 사연이 적힌 서책 한 권만이 남아있었다.


주목할 점은 형장에서 안평대군에게 항의하는 장면부터다. 김진사와 사랑에 빠진 것도 모자라 나라에서 제공한 재물을 빼내려 한 운영을 죽이려 하자 동료 궁녀들은 옹녀를 옹호하며 지금까지 궁궐에 갇히며 얻은 고통을 토로한다. 우선 '은섬'이라는 '궁녀가 누구나 갖고 있는 남녀의 정욕을 주군의 위엄이 두려워 펼칠 수 없었다'라고 말하자 뒤이어 '비취'라는 궁녀는 '궁궐 안에서 감격과 두려움에 오로지 글짓기와 거문고 연주만을 일삼으나,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앞서 운영의 탈출을 만류하던 자란은 궁녀들도 정욕을 갖고 있다며 어찌 운영만이 유독 운우지정(雲雨之情, 남녀의 연애를 이르는 사자성어) 없다 하시냐며, 뒤이어 안평대군의 허를 찌르는 진술을 말한다.


그를 내당으로 끌어들인 것은 주군의 일이었으며,
운영에게 벼루를 받들라 한 것은 주군의 명이었습니다.


안평대군은 작중 공부와 독서, 글짓기에 굉장히 능통했던 영리한 임금으로 표현된다. 자신의 재주와 비견되는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나이가 어리고 얼굴이 어여쁜 10명의 궁녀들을 들이는데 그중 한 명이 운영이었다. 천하의 온갖 재주는 반드시 조용한 곳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가치관 아래 궁녀들을 수성궁에 감추어 외부인과의 접촉을 엄격히 제한하며, 만에 하나 궁궐을 나가거나 외부인이 궁녀의 이름만 알더라도 그 궁녀를 죽일 것이라고 엄포한다. 그러나 안평대군은 엄포가 무색하게 김진사를 내당에 들일 때 나이 어린 유생이었던 그를 편히 여겨 궁녀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운영이 김진사에게 호감을 보이고 사랑에 빠진 것이 잘못이라면 그 계기를 마련한 안평대군의 몫이 크다는 점을 자란이 지적한 것이다.


용기를 낸 이에게 필요한 건 공감


궁녀들은 안평대군에게 운영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궁궐에서 자신의 신분을 의도치 않게 감추며 감내했던 고통을 솔직하게 고한다. 중세적 질서를 쥐고 있는 실세이자 조선의 왕인 안평대군을 상대로 목숨을 각오하고 크나큰 용기를 낸 것이다. 안평대군의 궁녀들은 10대의 젊은 나이에 궁궐에 갇혀 안평대군의 훈육과 유폐로 이루어진 질서를 지켜나가지만, 인간으로서 발현되는 자유, 타인과의 만남, 연애를 추구하는 정념에서 피어난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운영과 김진사의 사랑은 애정마저 규정지으려는 중세적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며 지금까지 받았던 고통을 해방으로 승화시키려는 궁녀들의 희망이 내포된다. 결국 궁녀들은 자유를 위해 궁궐에서의 해방을 갈망했고, 그 해방을 죽음으로라도 받아들이려 했다. 그렇게 궁녀들의 노고를 알게 된 안평대군은 노기를 풀고 운영을 별당에 가두는 행위 외에는 궁녀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는다.


이처럼 고통의 심연이 깊을수록 전적으로 슬픔과 통각에 사로 잡힌다. 그때 고통은 스트레스와 상실감을 전달하는 한편, 몸과 마음에 무언의 변화를 주라는 신호를 던지기도 한다. 이에 따라 지니고 있었던 고통을 숨기기보다, 용기를 내 타인과 공유하기로 결심하며 더욱 성숙해진 자신과 만나려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을 함께 이해하고 공감하는,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고 손을 내밀어 주는 태도다. 사실 고통을 가진 이가 타인에게 선뜻 고백하지 못하는 이유는 각자마다 위로의 방법이 다르고, 여기에서 또 다른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트라우마에 아파하는 이에게 상황과 잘못을 따져 훈계하거나, 그 고통에 뜻이 있고 무조건적으로 견뎌내야 한다는 설교는 오히려 고통만 자극할 뿐이다.


필자도 군대 시절 허구한 날 사사건건 일에 참견하고 툭하면 부조리를 하는 부대 내 최고 선임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종종 있었다. 군대 특성상 폐쇄적인 공간에 1년 반 동안 같은 사람들과 지내다 보니 소문도 빠르게 퍼지는 만큼 혹여나 잘못된 행동을 보이면 내무반에 안 좋게 찍힐까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혹이 생긴 듯 쓰라리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으나 그 선임에게 돌아오는 말은 '억울하면 군대 빨리 오든가'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소대 선임과 동기들이 다가와 요즘 힘들어 보인다며 속 깊은 대화를 권유했다. 나중에 그 선임이 필자에게 해코지하는 게 아닐지 이야기를 꺼낼지 고민했지만, 끝내 그 선임과 있었던 일과 고통을 토로하니 자기들도 한 번씩 당해본 적 있다며 어차피 곧 갈 사람이니 한 귀로 흘려듣고 말라며 필자에게 공감과 조언을 주었다. 이후 그 선임에 대한 두려움은 심적으로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고, 곧 그 선임이 제대한 뒤에는 비로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만약 그때 선임과 동기가 내밀었던 손에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필자는 군 생활을 맨정신으로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고통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용기를 내어 말한다는 것은 고통을 공유하며 도움을 얻고, 그 도움을 통해 자신을 탈바꿈하려는 대단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에게는 이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게 아닌 꽃 한 송이를 건네줄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하다.


참고자료


https://brunch.co.kr/@mindclinic/177

https://www.newstree.kr/newsView/ntr202305110019

https://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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