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그리운 쏭강에서는

by KarenB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늘 찰나였다.




라오스를 꼭 가보리라 생각했던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었다. 무료한 오후를 보내다 하얀 바탕에 <여행하다 결혼하다>라고 쓰인 책 한 권을 호기롭게 펼쳐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장을 덮고 카오산도 라오스도 마음에 꼭꼭 접어 넣었다. 특히 루앙프라방 푸시산의 석양에 진하게 밑줄을 그으며 석양이 내리 깔린 푸시산의 풍경을 상상했다. 한참 뒤, 어느 TV 프로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너무도 자유롭고도 청춘스럽게 라오스를 여행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고, 그 모습에 열광한 대한민국의 젊은 청춘들이 '라오스'로 몰리기 시작했다.


그즈음이었다.

J와 나는 처음으로 불쑥 해외여행을 계획했고, 서너 개의 동남아 후보지를 놓고 고심하다 라오스에 가자는 내 제안을 그녀는 고민 끝에 받아들였다. 날짜는 정해져 있었고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다. 게다가 촉박한 시간 탓에 항공권도 없어 J가 간절한 마음을 끌어안고 항공사 측에 전화를 걸어 두 개의 자리를 지혜를 총동원해 지혜롭게 마련했던 것이다.(J는 능력자였다!) 그렇게 가게 된 첫 번째 라오스는 비엔에서 방비엥, 방비엥에서 다시 비엔으로 돌아오는 3박 5일의 패키지여행 상품이었다. 이후로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이나 라오스를 다녀오고 돌아오고 다녀오고를 반복했다. 여섯 번째가 없는 것은 다름 아닌 걷잡을 수 없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코로나19'로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의 여지없이 우리의 반복적 여행이 멈춘 것이다. 처음엔 왜 몇 번이고 라오스행 티켓을 끊는 것인지... 대체, 라오스에 뭐가 있는 것인지 왜 그렇게 좋은 것인지 찾으려 애썼는데, 어느 순간 그마저 멈추고 그저 그곳을 가고 걷고 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로 있다가 오곤 했다.


J와 나는 다섯 번의 여행 동안 많은 변화들을 마주하고 좁다랗고 편협했던 사고들 앞에서 주춤거리고 일상 안에 놓인 우리와 여행 안에 놓인 우리의 모습을 두고 혼란스러워하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교류했다.

우린 분명 함께 라오스를 다녀온 전과 후로 나뉘었고 달라지고 변했다. (가족들도 가까운 친구들까지도 느끼고 있었다!) 선뜻 답하기 힘든 감정을 두고 여러 날 고민하고 피곤한 생각들을 그만 멈추고 싶었을 때, 다소 1차원적이고 유치한 질문을 J에게 던졌다.

"다시 선택이라는 것이 주어 진다면 라오스를 다녀오기 전과 후, 넌 어느 쪽이야?"

난, 고민 없이 후라고 답했다. J의 대답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녀는 에둘러 답하지 않았을까.




전 날의 숙취를 가득 머금은 몸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걷는 나에게 N이 물었다.

"왜 그래?"

대답도 듣지 않고 '블루라군'에 가서 좀 누워 있어-라고 했다. TV에서 감탄하며 보던 에메랄드 빛 호수 앞에 우스운 몰골로 몸져누워 대뜸 N에게 컨디션 타령을 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숙취가 견딜 수 없어 N에게 컨디션을 달라고 했고, N은 여행 온 손님에게 고작 컨디션 타령을 듣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애석해하며 라오스 비타민 음료를 뚱하게 내밀었다.


라오스에서 '짚라인'은 꽤나 유명했는데, 우리는 짚라인을 타고나서 그 사실을 안 것이다. 2시간이 넘는 코스 인 데다 높이도 제법 아찔했고, 잘 가꿔 놓았다기보다는 우거진 숲 사이로 허술해 보이는 구석이 있어 자칫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J를 혼자 보낼 수 없는 데다 이미 하기로 한 선택을 숙취를 핑계로 무를 수 없어 짚라인 장비를 숙취가 깔린 몸에 장착하고 꽤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J는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도 절대 타지 않는 사람이고, 나는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짚라인이 무엇인지 정확한 정보도 없이 올라서는 내 앞에 놓인 상황을 보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 눈물이 나오려 했다. 징징거리면서도 도로 갈 수 없으니 뛰어내려야 했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장작 2시간이 넘도록 허공에서 허공으로 이동해 지상으로는 걸어서가 아닌 낙하하여 내려왔다. 낙하라니. 나는 공중으로 던져졌다.


2시간을 넘게 허공에 매달려 정신줄을 붙잡고 있었던 덕분에 몸은 하루의 일정을 소화할 만큼으로 돌아와 있었다. 전 날, 정신을 잃은 친구를 밤 새 돌보고, 팔자에도 없는 짚라인을 타느라 J의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눈에 보이는 바닥에 걸터앉아 블루라군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봤다. 블루라군 호수 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나뭇가지는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올라가도 끄떡없을 만큼 단단해 보였다. 두려움에 떨며, 할 수 있다고 몇 번씩 다짐하는 사람들... 기세 등등하게 올라 발이 떨어진 공중에서 포즈까지 잡는 사람들... 물속에 사라졌다 올라오는 사람들의 표정에선 하나같이 천진함이 묻어났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숲과 듬성듬성 펼쳐진 돗자리에 누워 책을 보거나 잠을 자던 사람들의 평화로움. 시간의 결 하나하나 가 다 보이는 듯한 풍경에 놓인 채 블루라군 호수에 몸을 담가 보기로 했고, 감각을 깨우는 물의 감촉에 부유하던 생각들이 씻겨 내려갔다.


다시없을 짚라인과 컨디션 타령의 강렬한 기억을 남기고 다음 일정으로 돌아가는 길엔 숙취에서 깨어난 내가 버기카 운전대를 잡았다. 커다란 바퀴가 비포장 흙길을 마구 달리면 흙먼지가 얼굴로 날아든다. 우리는 흙먼지 파우더를 뒤집어쓴 채 하얀 이를 들어내며 마주 보고 웃었다. 파란 하늘에 울퉁불퉁 곡선으로 그려 넣은 듯한 산자락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고, 그 산자락 아래로 흙바닥을 고스란히 들어낸 너른 들판에 깡마른 소들이 무리 지어 얄팍한 풀을 뜯는다. 흙먼지가 이는 길 옆으로는 어린 시절 스케치북에 그렸던 지붕들이 낮게 깔려 있고, 맨발의 아이들이 작은 웅덩이로 다이빙하는 평화로운 시간이 흐른다.


버기카에서 내려 땅과 하늘에 나 있는 길을 느리게 걸었다. 잠잠하고 고요했던 탁 트인 시야, 느릿한 소, 조용히 걷는 여행자의 숨죽인 발걸음. 시간이 멈춘 듯한 길들이 풍경이 이어졌다. 손가락으로 해야 할 일을 세지 않아도 되는, 들끓는 생각들이 한 낱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리는, 좀 전의 스릴도 차분해지고 배고픔도 잊을 거 같은 풍경 안의 길이었다. 천천히 오고 가는 길에서 눈짓으로 인사하는 사람들의 눈길엔 말하지 않아도 알 거 같은 이 길의 느낌과 여유가 묻어났다. 정말 좋죠? 이 시간, 이곳, 이 느낌, 이 풍경 말이에요. 하고, 서로 나누고 한 움큼 가슴에 가져가는 거 같았다.


P20170213_165200461_1FD9569B-ACE1-484A-9B39-76E636549713.JPG



쏭강에서 노를 저어 보트를 타는 것은 방비엥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일상으로 돌아가면 왜 이 풍경이 그토록 생각이 나는지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평면적인 방비엥이 너무 좋았다. 하늘과 땅, 강, 집과 사람만이 보였던,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삶이 있고, 그 안에서 충만한 만족감과 편안함이 나를 쉬게 했다. 노를 젓던 손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다 문득 까마득해진 오전 일이 J에게 미안했고, 그런 내게 J가 풍경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와의 시간들은 내 마음속에 간직하면 되니까 그런 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다만 네가 안 아파서 다행이다. 정말"


조금씩 저물고 있는 태양을 뒤로하고 따뜻한 마음이 부푼 채 노를 힘껏 저었다.


오전 8시에 시작한 방비엥 액티비티는 오후 5시를 넘기고서야 끝이 났다. 한낮에 묻은 땀과 물기를 깨끗한 물로 씻어내고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호텔 밖으로 나왔을 때는 지는 태양이 뿜어내는 석양빛에 쏭강이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을 때였다. N이 준비한 롱테일 보트에 올라 석양에 잠기는 쏭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뜨겁고 환했던 우리의 '낮'이 가끔은 두렵기도 했던 '밤'에게 시간을 내주었다. 폭발할 듯 에너지를 발산하고,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눈에 보이는 풍경을 한가득 마음에 담았다면 여행지에서의 '밤'은 버릴 것은 버리고, 보낼 것은 보내는 고마운, 이 여행의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곱씹고 곱씹는 시간이었다.


노를 젓지 않아도 되는 롱테일 보트에 올라 어둠이 깔린 쏭강을 또 새롭다는 듯 마음에 그득그득 담았다. 쏭강을 끼고 있는 강변 식당에서 하나 둘 밤을 밝히는 불빛이 새어 나왔다. 사람들은 강변 식당에 앉아 밥을 먹다가도 지나가는 보트를 향해 팔을 번쩍 들어 올려 다정하게 흔들었다. 눈, 코, 입은 선명하지 않아도 흔드는 팔 속에서 선명히 전해져 오는 따뜻한 온기가 멀리서도 느껴져 나도 팔을 세차게 흔들어 보였다.


N이 준비한 장소에 우리 일행이 모였다. 둥그런 식탁에 앉아 구워져서 나오는 삼겹살을 저녁으로 먹었다. 또, 삼겹살이야- 볼멘소리를 하기에는 쏭강이 만들어내는 밤의 풍경이 묵직하고 고요했다. 태양이 모습을 완벽히 감추고서도 남아 있었던 기다란 붉은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칠흑 같은 어둠이 쏭강을 우리를 덮었다. 실루엣만 보이던 어둠 속에서 양초가 하나 둘 켜지고, 한쪽에서 모닥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빛은 놀랍도록 금세 둥그런 식탁을 밝혀 놓았다. 양초는 촛농을 뚝뚝 떨어뜨리며 멈출 수 없는 우리 시간을 뜨겁게 붙들었다. 모닥불은 오랜만이었다. 위로 솟는 불길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휩쓸려 가는 것이든 활활 태워지는 것이든 흔적도 없이 살아지는 것은 결코 없었다. 기억이란 것은 언제든 왔다 갈 수 있었고, 어떤 기억들은 통증을 동반하기도 했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뒤흔들지 못하도록 나는 매 순간 아름다운 것(이를테면 모닥불, 석양 같은)들을 붙잡으려 했고 내 옆의 사람들이 보내는 따뜻한 관심과 애정에 집중하려 애썼다.


모닥불이 타들어가는 밤공기 속에서 마침, N이 노래까지 틀었고 안그래도 낭만적인 밤이 한껏 낭만으로 물들었다. 이선희님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 노래가 흘러 나왔는데 N은 이 노래를 정말 좋아해서 뮤직 비디오까지 챙겨 보며 울기까지 하는 감성이 제법 풍부한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줄기차게 듣거나, 슬픈 영화를 보고 또 보고 하는 버릇은 나랑 비슷한 면이기도 했다.


준비해 놓은 고기를 모조리 먹은 것을 놀라워 한 N은 자신의 여행 상품을 들고 찾은 여행객들을 위해 일정에 없는 풍등 날리기를 할 수 있는 선물 같은 기회를 주었다. 함께 온 일행들은 새하얀 풍등에 무언가를 꾹꾹 적어 내려갔다. 각각의 다짐과 희망, 긍정의 문장들이 적혔을 풍등이 깜깜한 방비엥의 어둠을 향해 솟구쳤다. 죽죽 올라가는 풍등이 점처럼 보일 때까지 꺾어진 고개는 좀처럼 내려올 줄 몰랐다.


'사랑하는 너, 행복한 한해되길'이라고 쓰인 풍등이 달빛이 잔잔한 하늘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정말 그 해는 많이 행복했다. 별 거 아닌 거에 깔깔거리고, 마치 대단한 보석 하나라도 캐온 사람처럼 기억을 라오스를 마음에 소중히 얹어 종일 들여다 보고 생글거렸다. 그 시절은 그랬다. 쏭강 하나만으로도 벅차게 행복해... 나는 불행할 때마다 그저 그 기억을 꺼내 읽었다. 그러면 다시 웃어졌다. 좀처럼 작아지지 않은 추억이 커다랗게 부풀어 아직도 생생하게 마음에 남아 있을 정도로 나는 라오스를 사랑했다.


지금, 쏭강에선 멈춘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있을지.

자연은 꿋꿋하고 거짓이 없으니.

쏭강의 시간이 거짓 없이 꿋꿋이 흐르겠지.


DSC09582.JPG



J와 나는 낮과는 사뭇 다른 방비엥의 밤거리를 걸었고, 밤은 계속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