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TOPIA를 몸에 새기며

by KarenB

유토피아가 현실이 되어.




라오스를 다녀온 그 후, 무슨 운명처럼 여행을 주제로 하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라오스 편' 방영 소식이 들려왔다. J는 매주 화요일 밤 방송을 함께 보기 위해 밤길을 걸어 우리 집으로 왔다.

봄이었는지.

봄과 여름의 어느 사이쯤.

벚꽃이 만개했고, 벚꽃이 져버린 그 어느 사이쯤.

신이 난 여고생처럼 맥주 한 캔을 앞에 두고 함께 앉아 방송을 보았다. 눈 한가득 그리움을 담고, 소리 없이 환호하며, 붉어진 눈시울로 보고 싶은 라오스를 그렇게 살살 달래 갔던 시간들이었다.


방송을 보고 돌아가는 밤길에선 또, 그렇게 끝나지 않을 거 같은 라오스 이야기를 줄줄줄 늘어놓았다.
봄바람이 불었는지
벚꽃을 밟고 걸었는지 잊고
사람을 소환하고, 추억을 소환했다.
이렇게도 잊히지 않고 그리워만 지는 여행지가 있다는 건, 내 인생에 상당한 충격이고, 놀라움이었다.

두 계절을 보내고 한 계절을 맞이 했을 때쯤, 우리는 라오스로 가는 비행기에 다시 올랐다. 6개월 전에도 그랬듯 N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로도 N은 매 년 한 번쯤, 어떤 해는 두 번- 라오스를 찾는 우리를 위해 왓타이 공항에서 늘 기다렸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루앙프라방- 푸시산이 있는 곳- 푸시산에 오르면 그림 같은 일몰을 볼 수 있는 곳- 옆엔 J가 있다. 꿈결처럼 행복했다. 어느 여행지보다 이국적인 느낌의 루앙프라방이었다. 한적하고 조용한 곳. 어느 누구도 들뜬 사람이 없다. 마음을 뉠 수 있는 곳에서 시간을 붙들고 천천히 걸었던 날들.


이른 아침에 눈을 뜨고 간단히 세수만 한 채 새벽 어스름쯤 나와 탁발 행렬을 보는 것으로 루앙의 하루는 시작된다. 회색빛 도는 구름에 가린 채 태양도 숨죽인듯하다. 조용하고 깊다.

'삶'의 시작을 알리는 긴 행렬이 줄지어 오는 모습을 나는 숨죽여 지켜봤다.

묵묵한 맨발

숙여진 고개

겸손한 식량

완벽히 다른 '삶'이었다.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삶이 있어, 나는 가끔 유독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그건 옳은 '삶'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은걸. 그런 말을 내가 정말 해도 되는 것인지. 자라면서 하면 안 되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매몰차게 고개를 돌려 버리고 그래, 이해해. 라며 모른척할 때. 고뇌 속에서 심장이 차가워짐을 느끼곤 했다. 이들의 삶도 그랬다.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내가 이질적으로 느껴진 순간이었다. 완벽한 이방인이기도 했다.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나는 그저 가난한 예술을 품고 있는 듯한 루앙의 신비스러운 고즈넉함이 좋을 뿐이라고 마음으로 되새겼다.


긴 행렬이 사라지고 나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 밝고 깨끗한 활기가 차분히 시작된다. J와 나는 민낯으로 조마(베이커리 카페)에 앉아 향이 좋은 커피와 크로와상을 앞에 두고 툭툭이가 지나가고 자동차와 자전거가 지나가는 도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오늘의 아침을 준비하고 오늘의 삶을 준비하는 루앙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보다가, 느닷없이 파이팅이라고, 생뚱맞은 응원을 퍼부어 주고 싶었다. 무한하지 않은 우리들의 삶, 잘 살아내자고 밑도 끝도 없이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씨~익 웃어 보였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 나설 채비를 했다. 한국에서 미리 사둔 박연준 작가의 신작(그 당시) '소란'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진작에 펼치고 싶었던 책을 '유토피아'에서 읽기로 한 날이었다. 루앙의 거리로 나왔다. 온 하늘이 태양인 거 같은 착각이 일게 하는 한낮의 태양 빛이 조용한 거리를 가득 비추고 있었다. 10월의 루앙은 얼마나 그 볕이 뜨거운지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마치 발끝에서 뜨거운 불이 뿜어져 나오는 거 같았다. 현실인데 현실이 아닌 것처럼 꿈결을 거니는 듯한 느낌으로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곱씹고 곱씹으며 걸었다. 조용히 걷는 걸음 위로 각자의 사연을 끌어안고 쏟아지는 뜨거움을 넉넉히 받으며 걸었다.


P20171005_111233479_E1B02ED6-FC9C-4942-847B-5D69044A9583.jpg


루앙은 정말이지 고요하고 따스한 풍요가 넘쳤다.

유난스럽지도 별나지도 특별하지도 어느 것 하나 튀는 거 없이 고만고만한 매력이 그것이 곧 우리 삶이라는 듯 엄청난 힘을 가지고 마음으로 진하게 왔다.


유토피아는 J와 내가 머문 게스트하우스와 제법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리 욕심이 많은 J가 구글 앱으로 영리하게 유토피아를 찾았다. 하얀 글씨로 진하게 새겨진 간판을 보고 입구로 향했다. 메콩강을 마주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가장 편한 자세로 눕거나 앉아서 애초에 이 여행의 목적도 목표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그저 그 공간에 머물고 있었다. 둥근 라탄 테이블에 우리가 시킨 음료가 도착했다. 본연의 맛을 그대로 품고 있는 과일음료가 기분 좋게 식도를 타고 흘렀다. J와 나는 동시에 '소란'을 펼쳐 읽었다. 책 읽기에 딱 좋은 공기와 풍경이었다. 부러진 나뭇가지조차 조화롭게 풍경에 녹아 있고, 메콩강 위에 하늘은 딱 그만큼 파랗고, 구름은 사랑스러울 만큼 하얬고, 조용하고 고요한 공기의 감촉은 적당히 기분이 좋았다. 간혹 스치는 바람에 작은 잎들이 산들거렸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빠진 채, 글 속에서 슬프게 헤매고 있을 때였다.

나 지금 너무 슬퍼-라고 했는지 나 지금 너무 아파-라고 했는지
낮게 들려오던 J의 말에 조용히 외줄을 타던 마음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요동치는 마음을 잠재우려 눈 안에, 마음속에 공기를 풍경을 냄새를 소리를 가득 담아 어떤 틈도 생기지 않게
꾹꾹 담으려 했는데.

가족이란 누가 보지 않는다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
박연준 '소란' 중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울음이 순간적으로 올라왔다. 그렇게 갑자기 단번에 꽉 찬 울음이 올라올 수 있다니.

멈추질 못하겠는 울음이 눈에서 코에서 한꺼번에 쏟아졌다. 조용하고 고요한 풍경에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없는 울음을.. 나는 한동안 쏟아냈다. 폭우가 쏟아지고, 폭설이 내리고, 우박이 쏟아져도 하늘은 놀랍도록 명징한 아름다움을 곧 드러낸다. 그 모든 걸 품고 있기에, 더 아름다운 건지도 몰랐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있을 그 벼락같은 슬픔을 배꼽 아래에 꾹꾹 눌러 넣어 놓고 산다는 J의 말에 나는 아팠다. 하늘 아래 꿋꿋한 나무처럼 벼락을 품고도 단단히 서있는 친구가 또, 한편으론 아름다웠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꾹꾹 눌러 넣어 놓고 살지 못해 불쑥 올라오는 기억에 얼굴 곳곳에 먹구름 같은 우울감이 스미고, 내리는 소나기에 고함을 지르고
폭우에 폭설에 귀를 틀어막고 뾰족한 가시를 세웠다. 안고 사는 것이 버거워 매번 꺽꺽거렸다.

사실, 괜찮아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기억은 지울 수 없고, 슬픔은 잊힐 수 없으니까.
단지 괜찮아-라고 말하면 모든 게 괜찮아지는 거 같기도 했다. 속절없이 내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는 듯한 유토피아에서 말 못 할 위로를 얻고 있는 거 같았다. 눈길이 책에 머문 J도 풍경처럼 말없이 들어주고 있는 듯했다. 어떤 단어로도 채워지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삶엔 명료하게 정의할 수 없는 것들도 순간들도 있는 것이었다. 답을 요하는 물음도 진실한 위로도 없는 것이 '나'인 채로 놓여 있을 수 있게 했다. 그 사실 하나로도 기꺼운 위로가 되었다. 현실에 존재해 마음에 아로새겨진 우리의 '유토피아'를 J와 나눠 갖고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기분 좋게 일어섰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그 길에서 무거웠던 옷을 벗고 새 옷, 그러니까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걸었다. (유토피아로 가는 길에 산 원피스로 갈아입으니 새로운 기쁨이 피어났다) 살랑거리는 원피스를 나란히 입고, J와 나는 다부진 걸음걸이로 씩씩하게 걸었다.


출출하다고 느낄 무렵, N에게서 연락이 왔다. "밥 안 먹었으면 한국촌 가서 밥 먹어"라고. 루앙까지 와서 한국촌에 가서 밥 먹어야 해?! 낄낄 거리며 작열하는 거리에서 '한국촌'을 찾아 걷고, 툭툭이를 타고 한국촌 식당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라오스에서 제일 많이 먹은 음식이 '한식'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타투샵을 찾았다. UTOPIA를 태운 비행기를 몸에 새겼다. J와 나는 유토피아에 대해 어떤 말도 나누지 않았다. 다만, 그곳에 요가가 유명하더라, 다음엔 요가를 해보자- 햄버거가 맛있다더라, 다음엔 햄버거를 먹어보자- 정도의 이야기만 나누고 존재하는 우리의 유토피아를 소중히 몸에 새겼을 뿐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