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밤, 눈물의 밥

by KarenB

규칙적으로 놓인 삶의 궤도를 잠깐 이탈해 온 것임을 깨닫고는.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 왓타이 공항에 도착한 첫날, 마지막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에 끼어 있는 N을 보자마자 나는 어렴풋이 우리를 기다리던 사람이, 우리 여행을 가이드해 줄 사람이 저기 보이는 저 사람임을 직감했다. 이유는 없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처음 본 사람에 대한 경계를 지우고 마음을 열었다. 역시 이유는 없다. 마음이 그랬다.


그런 나를 두고 J는 “그냥 가이드일 뿐이잖아”라고 했다. 그냥 가이드뿐일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자꾸 마음이 쓰였다. 여행은 삶의 '궤도'를 잠깐 이탈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여행이라는 짜릿함 속에 놓인 흥분된 사람들을 마주 보는 N의 모습 속에서 외따로 놓인 듯한 슬픔이 읽혀 그의 삶을 참견하고 싶어졌다.


툭툭 말을 건네고, 농담을 건네며(나는 잘 그러지 않는 사람인데) N의 의사완 상관없이 우리의 관계 속에 우리의 여행 속에 그를 끌어들이고 싶었다. 잔뜩 곤두선채 무언가에 화가 나 있는 N을 우리가 느끼는 여행의 흥분과 여유 속에서 쉬어 가기를 바랐다. 우습게도 N은 일을 하고 우리는 여행을 했는데 같은 공간 속에서 그도 '여행'을 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라오스에서 맞는 마지막 아침이었다.(마지막이었는데, 인지하지 못했다) 가뿐하게 일어나 조식으로 쌀국수를 먹고, 점심으로 고추 장아찌가 더 기억에 남았던 비빔밥을 먹고, 16명을 태운 대형버스는 덜컹거리며 비엔으로 향했다. 버스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에서 바삭바삭 부서지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이불 삼아 낮잠을 잤다. 자는 와중에도 비포장 도로에 튀어나온 돌덩이를 넘느라 덜컹거리는 버스의 움직임을 따라 몸은 들썩 거렸다. 5일간 24시간 내내 옆에 있었던 J도 잠이 들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하는 N의 목소리도 중간중간 들려왔다.


비엔티엔 빠뚜사이(독립기념탑)에 도착한 버스에서 16명의 사람들이 차례로 내렸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마주 보며 기지개를 쭉 켰다. 눈부신 햇살이 가슴으로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진정한 의미의 '현재를 즐겨라'라는 단 1초의 시간이라도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시간을 오롯이 느끼고 옅은 미소를 띤 채 J와 나는 걷고, 앉고, 서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의 미소를 본 적이 없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미소는 그 시간을 완벽히 흡수된 채, 사진 한 장으로 남았다. 사진은 그때의 그 느낌과 공기의 감촉을 생생히 되살렸다. 어쩔 땐 사진 속 내 모습이 낯설기도 했다. 똑같이 웃고 싶어 입술을 달싹여도 같은 표정을 짓지 못했다.


곧 있으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빠뚜사이 그러니까 비엔티엔 독립 기념문- 이글거리는 라오스 햇살 아래서 우리는 그만 '시간'을 잊고 말았다. 그날의 햇살은 온 우주에 사는 사람들 중에, 우리가 제일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멋들어진 반짝이는 나라는 아녔어도, 순간순간 돌아보니 제일 반짝거렸던 건 '우리' 였을 수도.
시절 안에 즐기고, 웃고, 울었던 눈으로 들어와 마음으로 확, 다가왔던 라오스.
'나'를 발견하고, '너'를 발견했던 멈춘 시간.
공기와 바람, 강의 온도까지 기억할 거 같은 멈춘 시간.
결국에 그리움으로 자리 잡은 그곳.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일정은 마사지였다. J와 나는 마사지 대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로 했고, 3박 5일간 우리를 포함한 일행을 가이드했던 N에게 차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일행을 마사지숍에 보내고 온 N이 편안한 자세로 앉아 테이블에 놓인 달달한 커피를 습관적으로 쭉 들이켰다. 피곤과 권태가 깔린 얼굴이었다. 미처 감추지 못한 그늘도 드문 드문 보였다. 한국에서 방영된 라오스 방송 이후로 기하급수적으로 몰리는 여행객들로 밤잠을 설쳐가며 일행들의 요구를 프로답게 맞춰주고, 가볍게 던지는 농이 섞인 말을 재치 있게 받으며, 진지한 모습으로 예의 있게 손님의 삶을 묻기도 하고, 노래 좀 불러보라는 무리한 요구에도 웃으며 노래했던 N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쩐지, 그가 이 일을 꾸역꾸역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벼랑 끝에 서서 결코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벼랑과 멀어질 수 없는 그 아슬한 경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으로 해가며 도망칠 수 없는 자신을 향해 매일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거 같았다. 다 피운 담배꽁초를 땅으로 툭 던져 발끝으로 비벼 끄는 건조한 모습에서 안쓰러운 마음이 측은하게 올라오곤 했었다.


빠른 속도로 커피를 마신 N은 시계를 확인하고 마사지숍으로 향했다. N과 함께 숍에서 나온 일행들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의 공백을 채웠다. 여행 내내 일행들의 직업과 서로의 관계가 궁금했던 J와 나는 은근슬쩍 직업 묻기에 돌입했다. J가 운을 뗐다.

"그런데 무슨 사이예요?" 스무고개가 시작되었다.
"같은 동네?"
"예전 직장 동료?"
"아는 형 동생 사이?"

J는 가능할 법한 관계를 죽 늘어놓았다. 궁금증이 일게 대답에 자꾸 뜸을 들였다.
"우리 교사예요"
"저기 회사에서 왔다던 팀도 다 교사예요"

감쪽같이 속였다는 투로 재미있다는 듯 장난기가 도는 목소리에서 '교사'라는 단어가 귀에 꽂혔다.
"네에?!!!"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도 교산데..."

허탈한 웃음이 몰려왔다.
0세부터 사춘기를 아우르는 우린 모두 '선생님'이었다.

왜... 선생님이라고 말하지 않고 회사에서 왔다고 했을까... 전전날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눈 내 모습이 갑자기 부끄러워지는 이유와 같은 이유겠지- 생각하니 씁쓸한 웃음이 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을 단어와 직업에 가두는 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거였음에도 관습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와 몸에 베인 행동들이 있었다. 흠칫 놀라 나를 흔들어 깨운다. 그러지 말자고. 마지막 저녁을 먹으러 가는 버스 안에서 일행들의 대단한 공통점을 발견한 우리는 연신 '신기하다'를 연발했다. '교사예요'라는 말이 자꾸 꼬리를 물고 졸졸 따라붙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 날은 2017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였다. 일행들이 받았던 마사지 숍에서 N은 하얀 장미 다발을 들고 나와서는 일행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눠 주었다.

"라오스에서는 밸런타인데이에 남자가 여자에게 흰 장미를 주는 풍습이 있어요"

한국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초콜릿을 주잖아요,라고 하는 그에게 남자가 아니고 '여자'가 준다고 정정해 주니, 갑자기 남자가 아니고 어째서 여자냐고 물어 와서 별안간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어쩐지... 여자에게 한 번도 초콜릿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J와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초콜릿 사진을 찍어 보내 주었다.


N이 야심 차게 준비한 마지막 저녁식사는 근사한 분위기가 도는 M레스토랑에서의 현지식이 었다. 야외 테이블에 우리 일행의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커다란 분수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레스토랑이었다. 식당을 에워싸는 라이브 음악이 흘러나왔고 둥그런 조명이 은은한 밤을 밝혀주고 햇살이 물러간 밤공기가 선선했다.


N은 많이 먹으라고 접시에 현지식 볶음밥을 한가득 더 퍼주었다. 테이블에 모인 일행들과 밥을 덜어 먹다 '이별'이 코 앞에 놓인 것을 비로소 체감했다. 사실 내내 따라다녔을 텐데, 밥을 먹다가 갑자기 '이별'이 등을 떠미는 거 같았다. 선물 꾸러미 안에 선물이 더 있을 거 같은데, 이게 마지막이구나- 했던 아쉬운 밤-이었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한없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여행지 분위기 속에서, 잘 단단히 예쁘게 감싸 놓았던 마음이 풀어헤쳐진 순간 결국, 밥상머리 앞에서 눈물이 또다시 터졌다. 두고 온 가족이 그제야 생각이 났던 것이다. 우리보다 몇십 년을 더 살아냈을 언니들이 무수한 날들을 떠올리며 필연적인 만남이었을 마지막 저녁에 엄마 이야기를, 아이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눈동자 전체를 덮어버린 그렁한 눈물이 결국 테이블 아래로 떨어졌다.


차근차근 오고 가는 이야기는 너무도 감동스러웠고,
이렇게 만나진 인연이 신기하면서 감사했고,
불사조처럼 살아온 엄마가 생각이 나서,
툭툭 눈물을 떨구면서도, 행복한 마음으로 밥을 먹었던 기억.


그 마지막 저녁은 감동의 밤 속에서 눈물의 밥을 먹었다. 시원하게 쏘아 올리는 물줄기 속에서 밤을 밝히는 불빛이 하나 둘 켜졌을 때 얼굴도, 눈도, 마음도 빨갛게 상기된 채 우리는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일어섰다.


마지막 밤이 그렇게 왔다.


공항으로 가기 전, 빨간 지붕이 길게 늘어선 야시장에서 짧은 시간을 보냈다. 야시장답게 시끌벅적한 소란한 틈에서 곧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5일 동안 마음에 왔던 것들이 무엇인지 눈을 시장 풍경에 둔 채 더듬더듬 생각했다. 그 마음을 형용할 단어를 찾지 못하고, 검은 구슬이 촘촘히 끼워진 팔찌 가운데에 이니셜이 새겨진 기념품을 사자고 J와 나는 마음을 모았다. 5일 동안 고생한 N에게 줄 팔찌도 사자는 데까지 마음을 모으고 그것이 N에게 무슨 필요가 있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따위는 생각지 않고 불쑥 팔찌를 N에게 내밀었다. 당황한 마음을 숨겼을 N은 스쳐 지나갔던 손님 중의 일부분이었을지 모를- 우리가 불쑥 내미는 팔찌를 짐짓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팔찌를 바지 호주머니 속에 넣은 N은 우리 일행이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일행들의 캐리어 무게를 일일이 살피고, 수속을 마칠 때까지 공항에 머무르며 결국엔 등을 보이고 갈 수밖에 없는 일행들과 악수를 하고, 고개를 숙이거나 팔을 흔들며 인사했다. 나는 멀리서 N이 마지막 일행이 등을 보이고 올라가자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툭 내리고 털썩 의자에 앉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몸의 피로가 채 풀리기도 전에 들뜬 마음으로 왓타이 공항에 내렸을 손님을 또 맞았으리라.


비행기는 예정대로 인천으로 가는 하늘길 위에 떠 밤하늘을 갈랐다. 대기의 고요함 속에서 온몸에 묻은 라오스의 기억을 온 마음으로 끌어안고 비좁은 의자에서 내내 잠을 잤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공기의 아침이었다.

잠이 쏟아졌다. 한꺼번에 많은 잠을 잤다.

벌써부터 그리움이 몰려와서 잠을 자고 나면 괜찮을 줄 알고.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밤이 찾아와도... 뭉실뭉실한 구름이 펼쳐져 있는 하늘을 보다가도- J와 함께한 라오스 여행은 일상에 많은 잔향을 남기고 따라붙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는 건 놀라움이다.


6개월 뒤 추석이 낀 황금연휴, 우리는 거금을 주고 두 번째 라오스 항공권을 끊었다.

티켓이 없어 N을 귀찮게 해 가며... 온 신경을 티켓에 몰두한 몇 개월을 보내고 겨우 구한 티켓으로 라오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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