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의 진실

by KarenB

어스름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하는 무렵 대형버스는 방비엥 호텔 앞에 정차했다. N은 우리에게 뷰가 제일 좋은 방의 열쇠를 건넸고, 열쇠를 건네받은 우리는 방에 들어와 손을 닦고 캐리어에서 부랴 부랴 칫솔을 꺼내 양치를 시작했다. J와 나는 칫솔을 입에 문채, 우리에게 뷰가 좋은 방을 주기 위해 호텔 직원과 사투를 벌인 그의 행동을 영웅이라도 되는 듯 '그것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웅얼대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N이 사수한 '뷰'는 하얀 침대 옆으로 작은 테라스에 사각형 테이블과 두 개의 라탄 의자가 놓여 있었고 정면으론 바위 같은 산과 그 아래로 초록빛 산이 쏭강을 품고 도시에서 온 여행자의 바쁜 시간을 느릿한 시선으로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테라스에 앉아 빵빵하게 부푼 시간의 여유를 눈곱만큼도 가질 수 없었지만 그 풍경 옆에서 잠들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양치를 마치고 손과 입에 묻은 물기를 닦으려다 '수건'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있을 만한 곳을 뒤져도 도무지 보이지 않는 수건을 둘이서 보물찾기 하듯 찾다가 찾다가 1층 프런트로 내려가려는 찰나, 침대 위에 두 마리의 백조로 변신한 게 수건이 아니냐며 J가 물어왔다.

1초간 정지했다, 1초 뒤 웃음이 터졌다. 푸하하하 바보들 같으니라고.


작은 소동을 마치고 수건을 수건걸이에 걸어 두고 3~4층의 계단을 내려와 처음이라 생경한 방비엥의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비포장 거리 양 옆으로는 구멍가게를 연상케 하는 상점들과 라오스식 편의점, 삼각형 지붕의 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상점 앞엔 천으로 아이를 옆구리에 들춰 엎고 도시에서 온 이방인을 이방인이 서로서로 신기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검은 눈동자를 끔뻑이는 아이에게 미소를 띠고 '안녕'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나면 한발 짝 '라오스'에 다가간 거 같기도 했다. 마음을 그렇게 대번 활~짝 열었는데, 나는 9시간 뒤 그 거리를 미친개처럼 활보하는 것으로 믿음직스럽게 그것을 증명했다.



DSC09475.JPG




기대에 찬 저녁은 '한식'이었다. 다름 아닌 삼겹살.

마사지로 나른해진 몸을 이끌고 한국 식당에 들어섰다. 얼굴에 기분 좋은 노곤함이 깔린 일행들은 긴 식탁에 2열로 마주 보고 앉아 노릇노릇 삼겹살이 익기를 기다리며 처음 만난 사람들과 술잔을 부딪히며 쌓인 여독을 풀어내고 있었다. 취기가 오른 목소리가 식당을 가득 채우고 연신 고기를 굽고 먹으며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행의 '밤'을 흠뻑 만끽했다.


J와 나는 한나절 함께 여행한 일행들 틈에 마주 보고 앉아 일행이 건넨 40도가 넘는 라오스 고량주를 시작으로 어느새 옆에 놓인 소주를 잔에 채우고 채워주다 얼굴이 벌게진 채로 식당을 빠져나왔다. 1월의 방비엥의 밤공기가 후끈한 얼굴을 확 감싸 안았다. 한낮의 라오스 태양에 검게 그을린 여행자들이 민소매 차림으로 한 손에는 비어라오를 들고 여행자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방비엥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J와 나는 밤공기를 가로지르며 손을 마주 잡고 오로지 's'바를 향해 뛰었다. 뒤에서 N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네 어디 가니? 같이 가~"

"이따가 S바에서 봐요" 소리치며 다시 뛰었다.

지각생 체크를 하는지, J가 내 손을 잡아당기며 의문스럽게 자꾸 재촉했다.


번쩍번쩍 알록달록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쿵쿵 울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미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조심조심 입구를 향해 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보드카를 마시면 바 이름이 선명하게 적힌 소매가 깊게 파인 나시티를 줬는데, 우리는 고심 끝에 '빨간색' 나시티를 함께 골랐다. 마실 술을 주문하고 슬금슬금 살피며 가장자리 쪽에 자리에 잡았다. 노랑머리, 검은 머리, 갈색 머리 사람들이 한데 섞여 울려 대는 음악에 화답하며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부끄러웠지만 술기운을 빌려 춤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을 코리아 댄스랍시고 삐걱삐걱 흔들다 분위기에 취해 알코올에 휩쓸려 갔고, 어느 지점에서 나는 '정신'이라는 것을 놓쳐 버렸다.


정말 오랜만에 많은 술을 마셨다. 고량주를 시작으로 소주, 보드카, 맥주를 마시고 나니 어느새, 내가 '내가' 아닌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슬슬 내 상태를 파악하고 그만 호텔로 돌아가자는 J와, 술에 잔뜩 취해 더 놀고 싶은 나와 한밤중에 방비엥에서 양보할 수 없는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혼자 돌아가겠다는 J가 정말 갔는지를 살피고, 우연히 마주친 현지 가이드에게 엉뚱하게 N이 어디 있냐고 물어 가며 바에서 마지막 엔딩송을 듣고서야 별수 없다는 듯 바에서 나왔다.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통통 거리며 걷는지 뛰는 건지 모르는 상태로 방비엥 거리를 활보했다.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고, 내 뒤를 조용히 따르던 J가 그날 밤, 방비엥 하늘에 별이 정말 많았고 얼마나 예뻤는지 아냐고, 자신이 라오스에 무언가를 두고 왔는데 두고 온 곳이 아무래도 '그곳'인 거 같다며- 네가 그 거리를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아냐고- 볼멘소리로 덧붙였다.


넘어져서 머리를 도랑에 박고 무릎에 멍이 들고, 손이 발이 되어 엉금엉금 호텔 계단을 올라 간 이후로 띄엄띄엄 붙잡고 있던 정신은 호텔방에 들어온 뒤로 완전히 삭제되어 동이 트고 해가 온 하늘을 밝히고서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그 새벽에 알코올이 나를 잠식해 버린 틈을 타 내가 아닌 '내가' 튀어나와 무고한 J에게 엄청난 '말'을 쏟아 놓았던 거 같다.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 여러 번 물어본 내게 J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으로 응수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날에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들을 J는 어떤 얼굴을 하고 마음에 구겨 넣었을지- 얼마나 많은 날을 고민하고 끙끙 앓았을지- 기억이 나지 않으니 그저 예측하고 예상하고 급기야는 상상하며 '친구'라는 타이틀을 내걸며 내심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주어진 위치로 돌아와 자연스럽게 그날에 대한 대화로 이어지다 어느 날, J가 취중진담이라는 단어를 꺼냈고, 나는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했다.

"책에서 봤는데 사람에게는 무의식 속에 자신도 모르는 여러 자아가 살고 있는데, 그건 의식하고 있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거래"

그게 어떤 말이든, J에게 많이 미안했다.


나는 '농담'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다. 결국 농담도 진담에 기반을 두고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농담처럼 하는 말도 주워 담아 마음에 새겨 넣고 곱씹는 사람이었다. 지나가다 다음에 밥 한번 먹자고, 하면 내내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술을 먹으면 잘 울고, 속 이야기를 해도 되는 '사람'에게만 술기운을 빌려 나의 그늘진 이야기를 진솔하게 꺼냈다. 누구는 그것을 두고 '술주정'이라고 했지만(상처로 다가온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까지도 마음에 두고 사는 내가- 나 역시 여러 날 그것이 '취중진담'이었는지를 두고 고민했다.


돌이켜 보니, 그것은 '취중진담'이라고 불릴 수 조차 없는 일이었다. 정신이 나가 버린 일. 취중이라고조차 말할 수 없는 일. 분명한 것은 '술'을 그렇게까지 마셔서는 안 되는 일임엔 자명했다. 함께 지낸 세월이 견고하다 여겼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우정이 한 낱 실수로 무너지지 않을 거란 걸 알았지만, 그래서 그만큼 더 아팠으리라는 것과 가까운 사이 일 수록 노력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다듬어 가야 한다는 것을 느낀 ‘시작'이기도 했다.


처음 살아 보는 나이와 인생은 매번 서툴기만 하다. 앳되고 촌스러운 사춘기 모습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우리는 10대 20대 30대의 모습을 간직한 채 지나왔다. 잘 안다고만 생각했던 모습과 함부로 정의 내린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라오스 시절을 함께 지내오며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미처 몰랐던 서로의 낯선 모습에 시간을 갖고 마음판에 새롭게 새겨 넣으며 갈등을 겪었고 서툰 화해의 몸짓으로, '우정'이라는 것을 이전보다는 풍부하게 살찌워 갔다.




알코올의 후폭풍이 밀려온 머리를 부여잡고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J의 이름을 불렀다.

"괜찮아?"

"너는?"

"너만 괜찮으면 나는 괜찮아"


방비엥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던 호텔방에서 숙취에 괴로워하던 나와 우리의 오늘 일정을 두고 근심이 가득했던 J의 표정까지 그 하루가 얼마나 드라마틱했는지... 떠올리면 한없이 웃게만 하는 그 시절이 얼마나 소중하고 다시없을 시간이었는지를. 나는 그 시절 안에 살았던 우리가 많이 보고 싶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