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라오스 여행길에 올랐을 때 엄마가 물었다.
"거긴 왜 자꾸 가니?"
할 말이 없었다. 왜 자꾸 가는지 나조차 그 연유를 몰랐다. 무엇을 찾고 보러 가는지 갈 때마다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저 '시절'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녀올 때마다 그리움이 짙어지고 선명해져만 갔다. 지나온 시절을 더듬거리며 시절을 산 '우리'가 보고 싶어서 매 번 가는 것이리라, 굳이 답을 내렸다.
나에게 여행은 권태롭고 팍팍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짧은 휴식을 누리고 오는 것이었다. 그 제한된 시간 안에 끝없이 펼쳐진 구름과 하늘을 구경하며 생경한 땅이 전하는 호기심을 가득 채우고 떠나옴의 여유를 마음껏 누리며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분배해 반드시 봐야 할 것을 보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여정 같은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새롭게 가본 나라라는 타이틀로 손가락 하나가 접히고 세계지도에 별표를 하나 추가했다. 별표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뿌듯해지고 아직 가보지 않은 나라가 많다는 것에 조바심이 났다.
여행이었지만 여행이라고만 할 수 없는 라오스 시절은 이전 여행과는 달랐다.
마음으로 '보고' '느낀' 것들로 꽉꽉 채워진 시절이었다.
익숙해져 버린 장소에 도착해서 한 껏 숨을 들이켜고 나면 마음이 한없이 후끈해지고 비로소 이곳에 도착했다는 안도가 밀려왔다. 매 번 처음인 듯 시간을 흘려 보내고 처음처럼 감동했다.
2017년 2월을 시작으로 그 해 10월, 12월의 여러 날 J와 나는 라오스에 있었다. 라오스의 우기와 건기의 경계를 맛보고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라오스의 겨울을 느꼈다. 3개월 간격으로 티켓을 무엇에 홀린 듯이 끊었고, 그곳에 무언가 놓고 온 게 틀림없다며 이번엔 꼭 찾아오자고 다짐했지만 가서는 까맣게 잊고 애초에 '끝'이 없는 듯 시간을 누리고는 돌아가야 한다는 슬픔만을 짊어진 채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집으로 와서는 첫사랑의 열병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다시 항공권 끊기를 반복했다.
한 시절을 장식했다. 여행이라 할 수 없는 그리운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당신도 잊지 못하는 시절이 있지요? 당신의 시절을 공유하고 우리가 그 시절 안에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밤이 새도록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싶은 나의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입이 찢어지도록 웃으며 별처럼 빛나는 눈물을 결국에 떨구고야 마는.
삶을 산다는 것은 '반복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을 반복하고 삶을 영위하기 위해 주어진 일들을 최선의 모양으로 하고, 주기적으로 친구와 약속을 잡는다거나 운동을 하는 거와 같은. 하루 중 해야 할 일들의 순서를 매겨 차례차례 해나가는 것과 같은. 삶에 놓인 일상은 대부분 그랬다. 돌이켜 보면 소중하지 않았던 일상은 없었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던 삶들이 포개졌고 어느 땐 내가 누군지 잃어 가기도 했지만 결국 살아낸 삶이 그럴듯한 모습으로 내 앞에 있었다.
눈 앞의 삶을 묵묵히 살다 끝끝내 견딜 수 없는 그리움으로 시절을 찾아갔다. 짧고도 긴 시간 삶을 멈추고 떠나니, 마음이 끝없이 흐르고 멈출 줄 몰랐다. 여리고 흩날리며 먼지처럼 부유하고 잘 부서지는 내가 보였다. 좋아하는 것에 금세 마음이 들통나고 슬픔이 보이면 와락 안아주고 싶은 내가 있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내내 안부를 묻고 손을 흔든다.
마음이 발가벗겨진 채 솔직해져 버린 우리가 라오스 시절을 누리고 살았다.
두 눈에 담긴 라오스가 마음으로부터 와서 마음에 남기고 간 모든 것들을 끄적였다.
오롯이 나인채로 놓였던 나를 우리를.
무엇도 걸치지 않고 본연의 모습인 채로.
일 생, 한 번쯤은 그런 시절을 누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