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무진 버스를 기다리던 날. 야호, 두 손을 흔들며 나는 그야말로 막춤을 췄다.
이제 시작이니까. 앞으로 5일이나 우린 마음껏 자유로울 테니까.
20년 지기 친구와 처음으로 가는 해외 패키지여행이었다. 수학여행의 즐거움이라고는 모르는 내가 그저 어린애처럼 들떠 있었다. 칼바람에 스타킹을 신은 다리가 얼얼해져 캐리어에서 담요를 꺼내, 다리를 둘둘 말고는 기다려도 오지 않은 리무진이 안 올까 봐 설레발친 뒤 리무진은 그제야 왔다. 20분이나 늦은 시간이었다.
5시간 20분 비행. 우리들의 빙고, 끝말잇기, 오목 두기.
그 모두를 했는데도, 우린 아직 공중인 게 믿기지 않아 자고 있는 승무원을 깨워 "아직 멀었어요?" 기어코 물었다. 그로부터 1시간여 뒤, 비엔티엔 공기마저 좋았던 '왓타이 공항'에 도착했다.
"야야, 가이드 눈 마주치지 말로 일단 환전, 유심 알지?"
"어디서 왔어요? 물어도 그냥 씹어"
"응, 한국에서 왔어요 하면 되지. 뭘 씹어"
막 던지는 말에 막 웃음이 났다. 깔깔깔.
나는, 피켓을 들고 일렬로 서 있는 N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우리의 긴 인연을 알리는 첫 만남이 가볍게 시작되었다.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았고 나는 연신 생글거리며 J의 손을 잡고 N을 따라 대형버스에 올랐다. 사방이 껌껌한 채 우리의 첫 여행이 낮보다 밝고 들뜨게 시작되고 있었다.
패키지여행의 대형버스는 한 날, 한 시에 모인 여행객들을 싣고 상품에 끼워진 호텔로 우리를 데려갔다.
처음 만난 가이드 N은 대형버스 안에서 익숙하게 마이크를 잡고 내일 약속 시간과 첫날이니 간단히 맥주 한잔과 함께 좋은 밤 보내라며 피곤함이 깔린 형식적인 멘트를 날렸지만, 훗날- 맥주를 살 수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은 것을 J와 나는 두고두고 이야기했다. 자정이 넘어 도착한 숙소 근처엔 맥주를 살만 한 곳이 죄다 문을 닫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호텔 프런트로 달려가 '맥주'를 살 수 있는 곳이 있냐고 백번 물었지만 '백번' 모두 'close'라고 외치는 직원의 멱살을 잡고 싶을 만큼 우리는 맥주가 간절했던 것이다.
결국, 호텔 바에 가지런히 놓인 '비어라오'를 두 캔을 그렇게 마주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맥주는 처음이라는 듯 호들갑을 떨며 라오스와의 끊을 수 없는 우리들의 인연을 아무것도 모른 채 맥주 한 캔에 행복에 겨워하며 잠에 들었다.
라오스에서의 첫 아침- 다시 만난 N이 반가워서, 단번에 사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 있는지 생소한 마음이 들어 싱글싱글 웃는 눈을 하고 있는 내 귀에 들려오던 N의 첫 말은 예상을 뛰어넘어 "어젯밤에 콘돔 뜯었어요?"였다. 중장년층이 모인 여행객들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종이에 무언가를 휘갈기며 무심한 듯 N이 말했다. 너무 놀라 뚫어져라 N을 바라보며 J와 나는 입을 틀어막고 배꼽에 단단히 힘을 주고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콘돔 사건'은 뜯어 놓은 값을 그것을 뜯었을 누군가 지불하고 일단락되었다.
우리 일행의 본격, 사원 투어가 시작되었다. 호텔을 빠져나오니 한글이 큼지막하게 적힌 대형버스가 눈앞에 놓여있다. 함께 여행을 시작한 동기들은 한 줄로 서서 차례차례 들어가고, 지정석에 앉고, 간식도 사이좋게 나눠 먹고, 밤새 노느라 피곤한 얼굴을 하고 돌아가며 꾸벅꾸벅 졸기도 했던- 그 대형버스는 여행 내내 우리를 싣고 달리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데려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각자의 여행을 흠뻑 즐기다 돌아와 가이드 N이 들려주는 라오스 이야기를 재미있게 또는 재미없게 듣다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버스의 속도에 맞게 스쳐 지나갔던 창의 풍경을 그들의 느린 삶을 놓칠세라 바라보았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펼쳐진 삶은 부러 맞춰놓은 슬로모션처럼 느릿하게 내 마음에 무언가를 남기고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 풍경을 오래도록 기억했고 그리워했다.
다양한 연령, 다양한 직업군이(다양한 직업군이 모였을 줄 알았다!) 한데 모인 16명의 인연 중 J와 내가 가장 어린 막내였다. 우리는 어른들 틈에 제일 '젊은애들'로 불렸고, 어른들은 매번 유명 관광지 앞에서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손을 내밀었고, 카메라 초점을 우리에게 맞춰 놓고는 자꾸 뛰어(점프!) 보라고 마치 대단한 구경이라도 하는 듯 호기롭게 요구했다. 어쩌면 자신들은 더 이상 뛸 수 없는 나이라고 그러니, 너희는 뛸 수 있을 때 많이 뛰어보라는 듯- 매 순간 그렇게 살아보라는 듯- 우리는 매번 그들이 요구대로 뛰고는 바보처럼 즐거워했고, 찍힌 사진을 보고 한바탕 웃고는 또다시 어른들 앞에서 뛰고, 찍히고를 반복했다.
사원 투어와 소금마을 그리고 태국과 라오스를 잇는 우정의 다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탕원 선상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선상에 오르자 한상 가득 라오스 현지식이 차려져 있었고, 가지런한 음식처럼 우리 일행들이 가지런하게 앉아 있었다. 화장실에 들려 마지막으로 들어온 우리를 향해 언니들이 팔을 뻗어 손을 흔들었다. 비워 둔 자리에 앉으니 배에서-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출발했고, 현지인 2명이 기다렸다는 듯 배 앞쪽에서 나름 디제이 흉내(?)를 내며 음악을 틀었다.
"이리 와서 앉아"
"얼마나 좋아, 우리는 다 늙어 이제 이렇게 즐기는데 자기들은 젊어서 이렇게 다니니. 얼마나 좋아"
비껴갈 수 없는 세월이 내려앉은 얼굴로 건네고 싶었던 말을 내내 참았다는 듯 불쑥 말을 꺼냈고, 말을 마친 공기가 촉촉해졌다
부드러운 바람에 얼굴로 날아드는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천천히 지나가는 선상 위에서 사위를 둘러보니 모든 게 멈춰 있는 거 같았다. 그저 크고도 넓은 하늘 아래 남능 강이 유유히 잔잔했고, 얼기설기 난 나무와 풀들이 마음을 탁 놓게 하는 게 편안한 조화로움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이 들었다. 미리 알고 있었던 패키지여행의 일부였고, 평범한 선상식 위에서의 점심이었다. 의리 의한 선상도 아니고,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풍경도 아니었고, 엄지를 추켜올리게 하는 음식도 아니었다. 지나옴의 현실을 살다 종종 이 날, 여기서의 '점심'을 떠올릴 때가 많았다.
J와 나는 정말이지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선상 위에서의 점심을 마치고 만난 N에게 왜 안왔어요? 너무 좋았는데... 말을 걸었다. 나는 줄곧 N에게 툭툭 농담을 하고 말을 걸었고, N은 그런 내게 엉뚱한 손님이라는 듯 귀찮기도 하다는 듯 이런 손님에겐 이렇게 대해야 한다는 메뉴얼이 있는 것처럼 무신경한 태도로 일관했다.
20년이 넘도록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곁에 머문 J의 눈동자를 그 선상 위에서 처음으로 깊이 들여다보다 대뜸 눈물이 올라왔다. 그 풍경 안에서 눈동자를 서로 마주치다 예상치 못한 낯선 눈물이 올라온 것이다.
가끔 보이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은 말을 하고, 말하지 않은 것들에서 더 많이 보아지는 것이 있었다.
굳이 들춰내고 말하지 않는 것은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행복하고도 아픈 눈물이 그렁해진 채 마음만큼은 행복에 부풀었던 점심- 그리고 작은 평화와 느린 시간들.
우리는 늘 그렇듯 멋쩍은 듯 빠른 속도로 눈물을 훔쳐 내고 환하게 웃었다.
어쩌면 오늘 여기서. '우정'이라는 이미 끼워진 소중한 단추를 더 단단히 잠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안다' 고 생각했지만 더 모를 때가 많았다는 것을 서로 인정해야 했고, 20대의 치기 어리고 서툰 다툼이 아닌 30대의 '다툼'은 서로를 더 이해하고 관용하며 진심이 뒤덮인 우정이 서로에게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닫게 하는 과정이었다.
배와 마음이 두둑해진 채 선상을 빠져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대형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구불거리는 산악길과 비포장 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려 우리 일행을 '방비엥'이라는 곳에 데려다주었다.
방비엥에서는 다시없을 '술'을 두둑이 채웠다.
(이런!)
오고 가는 공기 속에
오고 가는 말들 속에
눈처럼 행복이 쏟아지던 점심
비처럼 감동이 퍼붓던 점심
너무 좋으면 눈물이 난다더니
짜란, 눈길이 마주친 순간
찌릿, 마음이 오고 간 순간
그렁해진 눈으로 우리가 느낀 감정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니
그저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
애쓰고, 수고하고
정말 잘 해냈다고
두둑하진 않아도, 우리 정말 반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