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 그대로의 방비엥

by KarenB

날 것의 모습인 채로.




익숙한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비엔 왓타이 공항에 내리면 이미 저문 해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고, 한두 시간이 지나면 다음 날이 되어 버리는 깜깜한 밤이 고는 했다. 한국에서 예약해 둔 벤에 올라 방비엥으로 향한다.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비포장도로와 산악길을 서너 시간 달려 방비엥에 내린다. 심하게 꿀렁거리는 벤 안에서도 나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반쯤 누운 상태로 잠을 자곤 했었다. 우리를 벤에 태워 방비엥으로 보낸 N은 몇 시에 도착하든지 도착하면 꼭 연락을 하라고 당부하곤 했었다. 나는 그의 그런 말이 좋았다.

어느 날, J가 보낸 문자에 '마음 고향'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고향이라고 불릴 수 있는 곳을 떠올리다 보면 그저 어린 시절 흰 눈이 무릎까지 쌓였던 시골집이 생각나곤 했었는데. 어쩐지 그곳을 고향으로 부르기엔 무언가 모자란 거 같았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게 고향이라면- 꼭 내가 방비엥을 떠올리면 풍겨오는 냄새 같은 것이리라- 막연한 생각을 품고는 대번 방비엥을 떠올렸다. J도 그랬다. 우린 동시에 그곳을 마음의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향수에 젖을 때가 많았다.


방비엥에서의 아침은 그리움이 묻힌 곳에 안착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바스락거리는 침대 시트 속에서 안도감을 끌어안고 맞은편에서, 오늘은 잠을 푹 잤는지 궁금한 J의 얼굴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빼앗기지 않을까, 별 소득 없는 고민을 하곤 했다. 아무것도 없이 친구의 얼굴을 보고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물처럼 주어진 하루가 매일 같이 좋아 맑게 갠 아침에 눈을 떠서 고즈넉한 방비엥의 풍경을 바라보며 현재의 시간이 영원하도록- 가능치 않는 희망을 품었다. 익숙한 방비엥에서 아침을 맞는 일이 어느새 내 삶에 특별한 위로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비엔에서 출발하든, 루앙에서 출발하든 우린 반드시 '방비엥'에 머물렀다. 방비엥을 가지 않는 라오스는 생각할 수 없었다. 루앙에서 이틀을 보내고 방비엥으로 향하는 날이었다. 두 손을 꼭 잡고 살아 돌아가자 싶은 아슬한 산악 길을 달려 도착한 방비엥은 우기가 끝나 축제가 한창인 라오인들과 방랑자 같은 여행객들로 어느 때보다 북적였다. 우리는 그 틈에 끼여 적당한 캐리어를 끌고 I호텔을 찾고 있던 중이었고, 횟수로 두 번째 '방비엥'이었다. 방비엥은 그야말로 새롭게 떠오르는 배낭 여행자의 '성지'였는데, 낮에는 액티비티를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밤에는 술병을 들고 쏘다니는 여행자들로 시끌시끌했다. 한낮에 민소매 차림에 제 몸 보다 큰 배낭을 멘 여행자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그들의 그 심심한 걸음걸이에서, 얼굴로 쏟아지는 볕을 가린 무심한 손등에서 나는 방비엥의 매력에 매료되곤 했었다. 그런 풍경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꽉 찬 풍요를 맛보고 있는 거 같았다.


N의 도움 없이 호텔을 찾자니, 길들은 어지럽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이 길이 저 길인 거 같은 나와, 세상의 모든 길은 머릿속에 넣고 싶어 하는 J와 약간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쯤,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안 그랬으면 싸웠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야야야"

퉁명스러운 말속에 묘한 친절이 묻어 있는 목소리다.(J는 아니라고 할지도! 이름을 놔두고 야야야가 뭐냐고 툴툴거렸다)


일을 마치고 툭툭이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N과 기막힌 우연으로 방비엥 한복판에서 마주쳤던 것이다. 우기가 막 끝났을 때쯤의 초저녁 무렵 하늘에서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가느다란 비를 흩뿌리고 있었다. N이 타고 온 툭툭이를 타고 I호텔에서 내려 짐을 풀고 곧장 나설 채비를 했다. 비 오는 날의 방비엥은 그날, 하루였고, 식당을 찾지 못하는 N을 찾다가 J가 빗길에 미끄러져 발을 다친 날이기도 했다. 다시 만난 N과 한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에서 술을 마시며 '인연' '마음' '페미니즘' '배려' 다소 무거운 주제로 서로의 말을 내세우며 뾰족한 날을 세웠다. 어중간하게 취한 채로 설명되지 않는 서러운 마음을 나는, 술상 머리에서 어김없이 토해낸 날이기도 했다. N이 자신을 걱정하는 우리의 '배려'에 대해 왜 너희가 그런 걱정을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해서 이기도 했지만, 걱정하는 사람에게 어쩜 그리 말할 수 있냐고 따질 수 없는 노릇이라. 나는 술김에 울기만 했다. 방비엥 밤거리로 나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다친 발로 걷고 있는 J에게 횡설수설 정리되지 않은 말들과 눈물을 무작정 쏟아냈다. 그녀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서툴고 다듬지 않은 마음들을 툭 꺼내 보여도 나라는 사람을 어떤 잣대로든 '판단'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가는 존재. 그 비 오던 날은 여러 가지 감정들이 종잡을 수 없는 날씨처럼 왔다가... 가버렸다. 맥주 몇 캔을 더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발코니에서 쏭강을 앞에 두고 우리 셋은 각자의 진심은 뒤로 밀쳐두고 그저 술잔을 기울이며 음악을 듣고, 어둠에 잠긴 실오라기 같은 쏭강의 모습을 바라보고, 해야 되는 모든 말들을 삼켜 쏭강에 흘려보냈다.


유독 방비엥에서 나는 늘 날것의 내가 툭 튀어나오곤 했다. 그래도 된다고 허락받은 기분이었다. 너무 많은 옷을 한꺼번에 껴 입은 채 관습적인 모습으로 살다 종래엔 나를 잃어 가기도 해서 다 벗어 버리고 싶었다. 겉치레를 벗어던진 채 거침이 없었다. 울고 웃는 것과 낯선 관계에 틀에 박힌 케케묵은 '형식'과 '사고'라는 것을 집어넣고 싶지 않았다. 가령 그 모습이 철이 없다거나 부끄러운 일일지라도 자유롭고 싶었다. 내 속에 있는 어떤 것이라도 마구 꺼내놓고 무작정 놀고만 싶었다.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은 채 밤을 붙들어 놓고 싶었다. 다음날을 걱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오늘을 누리고 싶었다. 그런 나를 두고 복잡한 글들이 읽혔던 J의 얼굴을 때로는 모르는 척했다. 누구도 아닌 J와 함께한 여행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시절을 들여다보다 J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고마웠다.


중학교 모습을 기억하는 우리도 여행 안에서 울고 싸우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나는 그 모두를 여행의 일부로 여겼고 그것마저 추억이라 말했다. 돌이켜 보며, 몇 번을 곱씹어도 그저 좋은 기억들 뿐인 지나온 시절에 J의 표정이 떠오를 때마다 혹 그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의심이 들어 괴로운 밤들이 있었다. "너만 좋으면 나는 됐어"라던 그의 안심 어린 목소리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었다. 그는 그런 사람임을 비로소 이해하며 별안간 그를 무작정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담고 마음에 새기느라 그녀가 옆에 있는 사실조차 잊을 때가 있었다. 공기처럼 너무 당연한 존재였어서. 우린 서로의 필요를 묻지 않았다. 그저 우린, 우리 인 채 라오스에 놓여 있었다. 그게 다였고,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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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의 일정을 세우지 않은 채로 잠이 들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P이모 가게에 가서 길거리 음식을 먹자고 다짐하지만 한 번을 제대로 먹은 적이 없던 우리였다. 먹지 않아도 먹어 버린 느낌. 방비엥을 몇 번을 갔어도 그 유명한 샌드위치 하나를 다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눈만 감아도 떠오르는 거리에 서 있으면 배가 잔뜩 부른 기분이었다.


정오쯤 되면 N의 도움 없이도 버기카를 빌려 블루라군을 늘 향하곤 했다. 버기카 안에서 우리는 한참 말이 없다가도, 느닷없이 옛날 노래를 소리치듯 불러 댔고, 미친 사람처럼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비어 라오와,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신라면과, 볶음밥, 맹고까지 먹고 라군에 들어가고 나면 비로소 내가 방비엥이구나 실감이 나곤 했다. 루앙의 '유토피아' 같은 우리의 아지트로 기어 들어가 조용히 시간을 누리고, 드문 드문 이야기를 주고받고 각자의 사색에 빠졌다. 밤이면 라오스식의 샤부샤부를 감탄하며 먹고, 일수 찍듯이 S바와 B펍까지 갔다 오면 벌써 다음날이 되고 했다. 어떤 날은 B펍이나 J파티에 갈 수 없다는 그녀와 다투기도 했다. 모진 말을 쏟아 놓고 다음 날이 되면 미안해,라고 사과하고 전처럼 돌아갈 수 있는 역사를 지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감사했다. 보트 파티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며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의 직업을 묻고, 쓸데없는 내기를 하며 시시덕 거리고, 사진을 찍고 온갖 배설물이 흘러 들어왔을지도 모른다는 강에서 몸을 담근 채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이 두 눈을 가득 채웠다. 잡념이 사라지고, 나는 어느 누구도 될 수 없고 그냥 '나'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졌다. 구명조끼를 입은 몸을 강에 붕붕 띄운 채 N을 부르며 수영을 했다. 정수리로 쏟아져 내리는 따스한 볕을 한가득 받고 행복한 미소가 종일 이어졌다.


J와 커플 신발을 신고 빨간색 시밀러 룩을 입고 방비엥 한가운데서 삼각대를 세워두고 사진도 찍었다. 타이머를 맞추고 어색한 포즈들을 취하며 깔깔거렸던 나날들. 환한 미소 뒤로 눈부신 방비엥이 늠름했다. 늘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쇼핑을 하는 일이 자연스러웠고,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게 여행의 반이었다. 자연스러운 들숨과 날숨이 오고 갔다.


잔뜩 웅크린 어깨와 손아귀의 힘을 풀고 긴장과 두려움, 불안을 내려놓고 흠뻑 취한 채 누렸던 나의 방비엥이다. 서로를 부정하지 않고 어떤 모습이든 사랑할 거 같은 우리가 방비엥에 있다. 그립다.


싸바이디!

방비엥!

내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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