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라오스행 티켓을 끊으면서 나는 신시가지 보다 구시가지를 더 사랑하고, 물감으로 마구 칠해 놓은 듯한 자연친화적인 곳을 더 애정 한다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바다도 강도 그렇다고 호수라고 하기에도 '멋'이 빠진 블루라군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방비엥의 여행자 거리에서 블루라군으로 가는 방법은 다양했다. 툭툭이, 버기카, 오토바이, 자전거, 그리고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되었다. 우리는 늘 버기카를 빌렸다. 희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버기카에 앉아 블루라군으로 가는 길은 매번 새롭기만 했다. 날이 좋지 않았던 날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갈 때는 네가 해. 올 때는 내가 할게"
매번 호기로운 마음으로 구불구불한 흙길을 질주하고 나면 케케묵은 감정의 찌꺼기들이 바람결에 날리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커다란 돌덩이를 넘어가는 일은 짜릿한 스릴이었다. 얼굴로 날아드는 흙먼지마저 사랑스러웠다.
방비엥에 '시크릿 라군'이 생겼단 소식을 접한 건 한국에서였다. 시크릿 라군으로 가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입수하고 만만의 준비를 했으나, N과 현지 버기카 직원으로부터 여자 둘이 위험할 수 있으니 되도록 가지 말라는 싱거운 말을 들었다. 일단 '뎃츠 오케이'를 외치고 시크릿 라군과 블루라군으로 가는 양갈래 길목에서 버기카를 세웠다. 선택과 집중이다. 예측 불가능한 위험과 가보지 못한 후회를 놓고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꽤 긴 시간을 고민하고 후회하지 말자- 라는 쪽으로 마음을 모으고 시크릿 라군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들어섰다. 가보지 않은 길이니 약간의 긴장과 스트레스가 슬쩍 올라왔다가 넉넉한 풍경 앞에서 사라졌다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땅과 하늘, 풀과 나무, 산, 강이 끝없이 펼쳐진 풍경은 거대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사방이 뚫린 버기카를 타고 그 공간을 달리면 커다랗게 부풀었던 삶의 문제들이 힘을 빼고 점처럼 작아졌다.
시동이 꺼진 버기카를 빈 땅에 세우고 나면 치장하지 않은 블루라군이 나타났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서로의 얼굴을 보고 낄낄거리다 마치 흙먼지를 씻어 내기 위해 온 것 마냥 얼굴과 몸을 씻고 나면 곧 부서질 거 같은 뗏목으로 올라와 온갖 포즈를 잡아가며 포즈를 취했다. 썩 마음에 드는 사진 몇 장을 건지고 출출하다 싶으면 볶음밥과 시크릿 라군의 별미 인 뚝배기 라면과 맥주를 마시고는 뗏목에 누워 하늘을 원 없이 바라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에 담기는 모든 것을 가만히 보고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생각만큼 이나 행복한 일이었다.
엉덩이를 붙이고 나면 꽉 차는 돗자리를 펼쳐 놓고 시원한 청량감이 도는 맥주를 마시며 책을 본다. 무심코 고개를 들면 눈앞에 빛깔들에 마음이 뺏겼다. 하릴없이 일어나 어슬렁 거리다 마음에 드는 메이드 인 라오라오 반바지와 티를 사 입고 블루라군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 유일한 일이라는 듯 사람들의 표정을 천천히 읽었다. 비단 이런 여유에 행복한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우습게도 마음이 풍성하고 두둑해졌다.
12월의 블루라군의 물 온도는 제법 차다. 몸에 묻은 찬기를 탈탈 털어내고 완벽한 어둠에 갇히기 전에 버기카를 타고 방비엥 여행자의 거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뻥 뚫린 공간에 어둠이 가득 메우고 있다. 깜깜해진 풍경만큼이나 우리도 조용했다. 긴장을 늦출 수 없고,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밤'을 마주했다. 인생은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환한 '빛'과 깜깜한 '밤'을 동시에 주었는데 그 어떤 것도 완벽히 행복하고, 불행하다 말할 수 없었다.(나는 종종 이렇게 이야기했다. "세상에 완벽한 게 있어?") 나는 완전한 '빛' 속에서도 슬픔을 느끼고,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이상한 사람이기도 했다.
깜깜한 밤 사이를 긴장과 약간의 공포를 안고 달린 버기카 안에서 웃음기 사라진 얼굴을 하고서도
지극한 편안함으로 밤공기를 갈랐다. J가 옆에 있다는 건 꽉 찬 든든함이었다.
빌린 버기카를 무사히 돌려주고 나오는 길에 N이 물었다.
"시크릿 라군 갔다 왔어?"
J와 눈을 마주치고 몇 초간 뜸을 들인 뒤 힘차게 대답했다.
"네"
"잘했어"
라오스에 안 갔으면 어쩔 뻔했어.
시크릿 라군에 안 갔으면 어쩔 뻔했어.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입술을 칠하고, 폼나게 선글라스를 끼고 인천공항을 갔던 시간이 점점 아득히 멀어지고 있다. 이제는 다양한 디자인의 마스크를 선택해 코까지 끌어올려 쓰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사람들의 입모양을 상상한다.
문득,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에 '순응'하는 일이 무서워지기도 했다. 지나와 보니 그렇게 사는 내가 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사는 요즘, 그 무엇도 소중하지 않았던 일상과 여행은 없었음을 깨달아 가고 있다.
말하는 사람들의 입을 흘기듯 훔쳐보고, 치아가 보이도록 웃고 떠드는 여행자들이 들끓었던 내가 사랑했던 그 거리와 공간이 사무치게 그립다.
우리는 그 공간을 다시 가질 수 있을지.
그 공간에서 예전처럼 치아가 보이도록 웃고, 서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일상을 빼앗은 바이러스로부터 자연스럽게 자유로울 수 있을지.
호흡하듯 자연스러웠던 '여행'을 다시 가질 수 있을지.
우리는 공으로 얻은 자연스럽게 주워지는 것에는 감사할 줄 모르다 뒤늦게야 소중함을 깨달았고, 때로는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음을 어렴풋이 인지하면서도 마음이 가는 대로 하기도 했다.
소중하지 못했던 일상에게 미안하고,
돌아가지 못하는 시크릿 라군에게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