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기억하는 추억

N의 삶을 응원하기 위해

by KarenB

머물러 있을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섯 번째 비엔티엔이었다. 비엔은 라오스의 도착을 알리고 마지막을 알리는 경유지 같은 곳이었다. 도착했다는 기쁨과 돌아가야 하는 슬픔이 교차됐던 곳. 주기적으로 라오스를 방문하는 우리를 N이 늘 맞이하고 배웅했던 곳. 처음으로 이곳, 비엔에 3일을 머물렀다. 텁텁하고 후덥지근한 공기 사이로 고운 모래가 끼어 있는 듯한 날씨가 N처럼 반가웠다.

비엔에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수도답게 방비엥이나 루앙보다 차가 많고, 삶을 일구고자 부지런을 떠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는 것. 목가적인 풍경보다는 도시의 풍경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방비엥의 느린 소처럼 걷다가 한식을 먹고, 느낌이 좋은 샵에 들어가 발마사지를 받으며 꾸벅꾸벅 졸다가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고 나오면 태양이 뭍으로 가라앉을 준비를 한다. 일을 마친 N과 만나 저녁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면 느린 시간도 별 수 없다는 듯 하루가 지나 있었다.


3일 동안 함께한 비엔에서 N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내내 보였다. 먹고사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전처럼 그늘만 뒤덮인 얼굴은 아니라서, 하하하 웃는 호탕한 웃음소리에 조금은 행복한 거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우리의 아지트가 되어 버린 강변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현지인만 갈 법한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노천 술집에 갔다. 끝나지 않을 거 같은 밤이 이어졌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 밤을 예감한 듯 우리는 시간을 붙들고 밤을 느릿느릿 누렸다.

얼굴 만 한 잔에 나오는 호가든 생맥을 보고 호들갑을 떨며 마시고 온몸에 조금씩 퍼지는 취기를 느끼며 라이브 바로 향했다. 바에 들어서자 느슨하고 끈적한 분위기가 훅 덮쳐왔다. 금빛 조명 아래로 여가수의 목소리가 기분 좋게 흘러 들어왔다. J와 나는 취했다. 알코올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맨 정신이었고, 분위기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잔잔했다. 도통 무엇에 취했는지 모른 채, 신이 나서는 엉뚱하게 싸이님의 '강남스타일'을 호들갑을 떨며 신청했다. 이날의 두 번째 호들갑이었다. 마음에 들었던 여가수는 무시할 수 도 있었을노래를 정성스럽게 열창했다. J와 나는 세 번째 호들갑을 떨며 부끄러움과 창피함은 개나 줘버리고 말춤을 추며 환호했고, N은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라했다. 깔깔깔 낄낄낄 멈추지 않던 웃음소리가 비엔의 밤공기를 향해 뻗어 갔다. 확확 달아오른 얼굴로 밤거리를 뛰며 호텔 근처에 있었던 클럽을 기어이 들리고 나서야 궤도를 이탈한 우리의 밤이 물러 갔다.


다음 날, 이르게 퇴근한 N과 만났다. 점심, 저녁으로 모두 '한식'을 먹고, N의 단골 카페로 기어들어갔다.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바닐라라테 세 개의 커피를 앞에 두고 말없이 각자 할 일을 하며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 카페에서 비가 온 날은 빗소리를 들으며 멍한 채로 말없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시답지 않은 말을 주고 받고 금세 침묵이 돌면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거나, 습관적으로 스크롤을 내리는 서로의 모습을 멀뚱히 쳐다 봤다. 더이상 카페에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마사지를 받으러 슬렁슬렁 갔고, 비어라오를 곁들여 저녁으로 어김없이 한식을 먹었다.


방콕부터 시작한 여행이 비엔에서 끝을 마주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N과 비엔의 식당에서 라오스식 샤부샤부를 먹었다. N을 본 이레 가장 단정하고 편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아끼는 동생을 다루듯 다정한 모습으로 시종일관 웃으며 떠들었다. 오래되고 편안한 친구와 만나 오랜만에 따뜻한 한 끼를 하는 기분이었다. 납작한 바구니에 각종 야채와 다양한 고기를 담고 불뚝 솟아 있는 둥근 팬에 고기와 야채를 분주히 익히며 서로의 그릇에 담아 주었다. 많이 먹으라며. 뜨거움이 물러간 자리엔 기분 좋은 선선함이 내내 머물렀다. 편안한 대화를 이어가며 마음까지 부른 식사를 했다. N이 연신 고기를 팬에 올리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저 뭐냐... 지금 중국에서 우한 폐렴 때문에 난리라며?"

뭐라고 대꾸했는지 조차 잊어버렸을 정도로 흘려 들었다. 라오스에서 함께 먹은 마지막 식사였다는 것만 또렷했다. 샤부샤부를 끝으로 분위기 좋은 라이브 바에 들려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익숙한 몸짓으로 우리를 공항으로 배웅한 N에게 고개를 숙이고 손을 조용히 흔들어 보였다.




'우한 폐렴 때문에 난리라며' 라던 N이 말은 맞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날, 우한 폐렴은 일상을 서서히 뒤흔들고 삶 곳곳으로 대책 없이 퍼져 나갔다. 입을 마스크로 가린 채 정신없는 하루가 눈 깜짝할 새 지나 있었다. 세 달이 지나고, 한 해가 지나 있었다. J와 나의 시절이 소리 소문 없이 끝나 있었음을 깨달았다. 매 번 우발적으로 끊었던 티켓이었다. 그리움을 한가득 채우고도 돌아갈 때쯤 되면 구멍 난 항아리처럼 텅 빈 마음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었다. 보고 싶을 때 언제든 가면 되지, 유일한 위안이었는데. 마음먹어도 할 수 없는 일 앞에 속수무책으로 그림움만 쌓여갔다. 일상을 뒤덮은 바이러스 속에 잠기지 않으려 허우적대다 겨우 한숨을 돌리면 마음을 먹어도 할 수 없다는 눈앞의 현실 앞에 놓인 채 무력해졌다.


일상에 묶여 여행이 간절해질 때마다 라오스 앨범을 꺼내 보며 잊지 못할 밤들을 떠올렸고, 추억을 더듬거렸다.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면 덩달아 N도 떠올랐다. 우리의 서툰 만남이 5번의 여행으로 모양을 갖췄다. 만남은 다섯 번의 여행과 함께 먹은 밥의 횟수와 시간만큼 서툰 모습으로 쌓이고 쌓였다. 라오스를 떠올리면 절로 N이 떠올랐다. 사랑하기를 마다 하지 않았던 그곳을 그 공간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그리움을 토로하며 툭 메시지를 보내며 시절을 떠올렸다. N인지, 라오슨지... 무엇이 먼저였는지 순서를 정하려던 날도 있었지만, 중요치 않았다. 그저 마음이 가는 라오스에 가서 라오스에 사는 N을 만나고 돌아왔다. N은 우리의 여행에 필요한 전반적인 것들을 귀찮아하면서도 도와주고, J와 나는 타지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을 끙끙대며 챙겨 가져 가는 것으로 서로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오랜만인데 술 한잔 해야지" "밥 먹었어? 밥 먹자"

의례적인 말들을 나누며 해가 바뀐 얼굴을 하고서 반가운 마음으로 마주 보며 밥을 먹고, 어느새 편해진 얼굴로 비어라오를 마셨다. 서로에게 말하지 않은 진심을 에둘러 전하고 용기 있게 위로를 또박또박 말하지 않고 그저 함께 밥을 먹는 것으로, 함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함께 시간을 말없이 보내는 것으로... 해야 될 말들을 삼키고 대신했다. 그땐 그랬다. 허례허식을 벗고, 답습해온 관습 없이 오롯이 나로 놓였있길 바랐다. 나로 놓인 채 마음으로 들어온 풍경에서 마음껏 행복해하고 가면 없이 관계를 끌어안고 한껏 사랑했다. 지금 당신이 느끼고 보이는 내가 그대로의 '나'로 느끼길 바랐다.


태생적으로 불행을 안고 태어 난 내게 처음으로 사소한 위로를 얹어 주던 친구가 있었다.

똑 단발을 하고서, 서로를 알아보았던 그 친구와 단번에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어두운 공기 속에서 고기를 굽고, 깻잎을 씻고, 깨끗이 씻어 놓은 밥공기에 밥을 한가득 퍼 주던.
잘 익은 고기를 씹으며 친구가 했던 소란스러운 이야기와 하얀 밥 위에 고기를 올려 주던 작은 손과, 입안으로 퍼지던 고기 맛은 내 인생 최고의 '위로'로 남았다.

때로, 인생은 그 별 거 아닌 '위로' 하나로도 살아지는 것이었다. 내가 정말 그랬으니까.

슬픈 인생 위에 고기 한 점을 올려주는 인연. 나는, 내가 본 불행에 그런 사소한 위로이고 싶었다.


나는 N에게 그런 위로이고 싶었다. 그가 계획하고 준비중인 일이 잘 되서 원하는 행복에 도달하길 바랐고, 쉽지 않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한번 사는 삶에서 느긋한 '재미'를 별볼일 없이 누려 보기를 원했다. 나는 그에게만큼은 생전 펼치지 않은 '오지랖'을 맘껏 내보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라오스로부터 받은 위로가 J와 나를 통해 N에게 전해지길 바랐다. 일어나서 기지개를 쭉 켜어 맑은 하늘을 좀 보라고, 건강을 해치는 담배와 술을 좀 줄이고 몸에 좋은 음식으로 배를 좀 채워 보라고, 의미 없는 게임들을 멈추고 나가서 책도 좀 보고 운동도 좀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일'을 하는 라오스에서 '여행' 하듯 좀 지내보면 어떻겠냐고. 자꾸 N의 인생을 알게 모르게 간섭하고 참견했다. 종국에 J와 나는 N의 인생을 참견하러 라오스에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우린 정말 라오스의 냄새, 공기, 풍경, 그곳에서 지냈던 모든 날들이 참을 수 없이 그리워 져서 훌훌 떠났다. 떠나서는 라오스를 온 마음을 다해 누리고 사랑했고 좋아했다.

진심이었고,

진심이었고,

진심이었다.


오랫동안 우리의 여행이 이어지기를 바랐고 멈추지 않길 바랐지만 따뜻한 바람 같고 봄날의 곰처럼 마냥 좋기만 했던 시절의 멈춤은 결국 존재했다. 마침표 앞에서 때를 놓친 말들이 있어, 시절을 떠올리다 보면 꼬리표처럼 따라 붙은 말 못할 미안함이 있었다. 그로 인해 우리의 진심이 묻힐까, 겁이 났다가도 시절 속에 놓인 우리를 떠올리면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올라왔다. N을 빼놓고서는 라오스 시절을 이야기 할 수 없었다.


그저 그게 우리였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모습이었고, 그 시절 우리의 특별한 여행이었을 뿐이었다.


그 시절에 그 공간에 그 시간에 머무른 우리를 그대로 두기로 한다. 어떤 생각도 집어넣지 않기로 한다.

평생 기억하게 될 추억이라는 것에 변함이 없다는 사실에 마침표를 찍기로 한다. 어떤 하루도 추억이 아닌 게 없는 시절이었던 채로 마음속 깊이 간직하기로 한다.


다시 하늘길이 열려 여행길에 오른 우리를 상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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