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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Apr 11. 2024

개구쟁이 E에게

  영원히 늙지 않는 사람이 있다. 영혼이 늙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틀린 음정으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러도 창피해하지 않는다. 실패한 요리도 유쾌한 맛으로 맛있게 먹는다. 밤마다 감동적인 영상을 보며 폭풍 같은 눈물로 감정을 충전한다.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는 개구쟁이 E와 함께 하는 일상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그런 E가 진지해질 때는 다음 끼니를 고민할 때이다. 그럴 때면 일단 자신에게 집중한다. 내가 지금 무엇이 먹고 싶은가에 골똘히 몰두한다. 그럼 나는 그런 E를 빤히 쳐다본다. 엄지와 검지를 V자로 펴 턱에 붙이고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계산을 하듯이 조곤조곤 결과를 향해 달려간다. 곧 얼굴에 있는 모든 근육이 활짝 움직이면 만족스러운 답을 찾아낸 것이다. 나는 키득키득 웃는다. 잔뜩 커진 눈과 콧구멍과 입이 너무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내가 웃고 있으면 E는 우리의 최고의 식사가 될 메뉴를 뜸도 안 들이고 이야기한다. E의 답은 언제나 정답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즐거운 식사를 한다.


 E와 내가 나누는 깊은 고민이 저녁 메뉴라서 좋다. 더 깊은 것들은 그냥 묻어 버리고, 우리는 언제나 즐겁기만 하자는 듯이. 그럼 나도 그런 고민들은 잊어버리고 저녁 메뉴나 같이 고민하는 척하는 가벼운 사람이 된다. 한들거리는 작은 풀처럼 그냥 그렇게 있는다. 가벼운 것들만 남길 줄 아는 E. 그와 꼭 붙어 지내던 기간 동안은 떡국을 아무리 먹어도 소용없을 것이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사랑을 담아,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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