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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Jun 04. 2024

술이 웬수야?

정신 차려야 한다고 매일을 다짐하고 매일을 기도 해댔다.

절대 술 취하지 말고 사건, 사고 일어나지 않게 항상 조심하자고 그래서 이 세상 제일 소중한 황남매에게 상처 주는 행동과 상황을 만들지 말자며 다짐 또 다짐하고 명심했것만, 어리석은 행동은 의식하지 못할 때 일어났고 또다시 자괴감이 드는 날을 맞이해야 했다.


주말, 보통 우리 네 식구끼리만 함께 하는데 오랜만에 지인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날이 날인만큼 점심부터시작된 우리의 술자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술자리에서 시작해 마무리는 노래방이었고 이미 먹을 대로 먹고 난 뒤라 내가 술을 마시는 건지 술이 나를 마시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술에 취하지 말자고 다짐했것만-


잠깐의 방심으로 나는, 우리는 또다시 안 좋은 상황까지 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고 잠잠히 생각해 보니 집에 온 거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후론 제대로 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앞전의 안 좋았던 기억이 가물가물 흐려질 때가 되어서 그런 건가. 꽤 오래전 그날도 그랬다.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났고 먹고 마시다 보니 황남편과 나 둘 다 만취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원래 취하면 자기 상태를 알 수 없지 않은가, 우린 그냥

만취 중에 만취였다.


그렇게 황남매에게 면목없고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 황남편과 나는 맥주잔을 서로 부딪치면서  구호를 외쳤다.

그 구호는 ‘취하지 말자’였는데 안일해진 마음으로 어느 순간구호의 외침은 끝이 났고 우린 또다시 그런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번보단 심하지 않았다는 것에 그나마 정말 아주 조금이나마 다행이고 지켜주심에 감사하지만 정말 하면 안 되는 행동이었고 절대 다시는 반복되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걸 절대 명심해야 함을 백번, 천 번 다짐하는 바이다.


정말 멍청하고 정말 한심하고 정말 싫다. 나 자신이-


일요일 눈을 떴음에도 계속해서 핑핑 놀던 머리.

전날 늦게 잠이든 황남매도 도통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깨어 난 잠이 다시 들지 않고 애써 정신 차리고자 눈을 뜨고

정신줄을 부여잡고자 노력해 본다.


핸드폰을 집어드니 전날 가득 밀린 카톡이 눈에 들어왔고 함께 있던 지인들의 카톡이라 읽지 않고 채팅방을 눌렀다 바로 나와 알림 표시만 지웠다. 그러면서 문자 온 것도 확인을 하는데 노래방에서 7만 원이 넘게 찍힌 문자내역을 보고 또다시 자괴감이 한가득 밀려와 눈을 질끈 감았다.



기가 막힌 타이밍. 황남매가 몇 분 차이로 일어났고 또다시 미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옆에선 너무나도 고요히 자고 있는 황남편을 보니 짜증이 확 올라왔다.


누워있는 것이 더 자괴감이 들 거 같아 힘들지만 몸을 일으켰고 황남매 아침을 챙겨줬다. 그 와중에 뜨끈한 속이 해장을

절실히 원했고  같이 라면 먹자던 황남편 말에 두 개를 끓여 차려놨지만 그새 다시 잠든 황남편은 일어나지 못했고 결국 혼자서 우걱우걱 먹다 절반 이상 먹지 못해 버리게 되었다.


아직 정신이 돌아오기 전인지라 집안일을 하면서도 도통 속도가 붙지 않았고 그럴수록 바보 같은 모습에 나 자신이 더욱 싫어지는 경험을 계속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해야 할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괴로운 마음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아파트 계단 타기 운동을 하러 나갔다. 몸이 지치며 땀이 줄줄 흐르니 텁텁했던 마음이 조금은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고 다시 정신 차리며 살자고 다짐하며 운동을 마무리했다.


황남편은 오후 늦게까지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고 나 또한 몸이 안 좋으면서도 이대로 아까운 주말을 허무하게 보내고 싶지 않아 야구를 보며 맥주 뚜껑을 열고 홀짝홀짝 마셔보지만 들어가지도 않아 겨우 버티는 심정으로 앉아 있다가 황남매 자는 시간에 맞춰 나 또한 잠자리에 들었다.


내가 누워야겠다 생각할 즘 슬금슬금 침대에서 일어난 황남편은 거실로 나왔고 티브이를 보기 시작했다. 그를 남겨두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고 당연히 얼마쯤 보다 들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새벽녘 여러 번 내가 깨는 동안 밤 12시 새벽 3시 새벽 5시까지 까지 환하게 번쩍번쩍하는 빛으로 공격하는 티브이를 계속 보고 있던 것이다. 겨우 새벽 5시가 지나고서야 방으로 들어와 몸을 눕혔다.


내 눈에 비친 황남편의 모습엔 할 말이 없었다.

너무 재미있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던 것도 아니고 행복한 모습도 아닌 마냥 멍하게 초점 없는 눈으로 세상 쓸쓸함을 혼자 다 짊어지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니 화도 나고 서글프기도 했으며 우리의 어리석음을 온몸으로 다 겪어내고 있는 있음을 보게 되었다.


왜 그러고 앉아 있었는지 물었고,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 잠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온전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세 번 깨어나는 동안 모두기억나지 않는 악몽을 꿔야 했으니 말이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제 각기 다른 방법과 행동으로 자괴감 속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각자의 다른 모습으로


술이 웬수가 아니라 나 자신이 웬수 웬수 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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