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남편이 퇴근했고 우린 서로 어딘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방에 작게나마 빛을 뿌리던 스탠드를 껐다.
남편이 침대에 눕자마자 내가 꺼버린 건데 바로 끄냐며
아쉬움을 비추던 남편. 뭐야, 그린라이트야?!
누워서도 편안히 자세를 잡지 못하는 우리 둘, 역시 그것은
그린라이트였고 그렇게 다시 켜진 작은 불빛-
빠르게 나눠서 맥주잔을, 안주를 꺼내 다시 방으로 모였고
결국 매일 저녁 누리던 행복을 어제도 이어갔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양을 줄여가고 있으니 그걸로 작게나마 서로를 위안하며 마무리지었던 맥주타임.
아침, 대자연의 현상으로 배도 허리도 온몸이 쑤시니 힘이
생기지 않았고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더군다나 전날 운동의 후유증으로 허벅지까지 말썽.
정말 오늘은 운동 가기 너무너무 싫었지만 다 같이 움직이니 저절로 몸이 따라가는 놀라움을 맛보았다.
아마, 나 혼자만의 운동이었으면 절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운동하면서도 기운은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움직이다 보니 몸은 어떻게든 움직여졌고 강도는 좀 줄었지만 원래 하는
패턴 그대로 잘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정해진 순서대로 씻기를 마친 후 여느 때와 같이 점심을 차리고 치우니 조금이나마 허락된 나만의 시간-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을 읽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덧 아이들의 학원 갈 시간이 되었다.
그때만큼은 지체 없이 빠르게 준비해 학원에 데려다준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나는 그늘과 햇빛 그 어느 중간에서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먹는 입이 많은 만큼 냉장고가 가벼워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당연한 순리겠지 , 그렇게 나는 오늘도 냉장고를 채울 것들을 골라댄다.
이젠 무조건 필수로 먹어야 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제일
큰 사이즈로 주문해 한 손에 들고 마시며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 더위를 식히고 냉장고에서 야채들을 꺼냈다.
미리 생각해 두었던 아이들의 저녁밥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야채들을 한입 크기사이즈로 잘잘 썰어서 용기에 담아놓으며 다시 생각난 큰 외숙모의 볶음밥.
볶음밥을 생각하면? 아니, 오히려 큰 외숙모를 생각하면
볶음밥의 이미지가 같이 떠오른다.
큰 외숙모는 가난하고 가난한 살림 속, 혼자 있고 엄마의 빈자리가 많이 느껴질 때면 항상 나를 본인들의 딸들처럼 나를 데리고 다니며 보살펴주고 함께해 주었다.
엄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외숙모와 아빠의 빈자리를 꽉 채워주었던 큰외삼촌은 언제나 당연하듯 부모의 역할을 해주셨고 그럼으로써 나의 외로움과 불행을 막아주었던 존재이다.
외숙모의 볶음밥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기분 좋게 떠오르는 것은 고소하고도 진한 냄새다.
나도 외숙모의 볶음밥을 최대한 비슷하게 하고자 정성 들여해 보았지만 같은 냄새는 나지 않았는데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냄새는 외숙모 것으로만 남겨두고 싶은
이상한 마음.
노란빛의 찰기 있는 밥풀들과 야채들의 조화가 너무나도
훌륭했던 그 고슬고슬 볶음밥.
그리고 만들다 보니 또 하나 든 생각.
야채와 밥이 더해지니 원래 밥 양에 비해 전체적으로 많이 양이 늘어난걸 보니,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외숙모는 나까지 밥을 챙겨줘야 하고 많은 사람이 다 먹어야 하니 그래서 볶음밥을 많이 만들게 된 것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저릿한 마음이 몰려왔다.
그 어느 한 번도 자신들의 세명의 딸들과 나를 다르게 대한적이 없던 그 두 분이 그립고도 보고 싶은 그런 저녁.
뉴저지에 계셔 당장 달려가 볼 수 없고 마음을 전할 수 없어 서글픈 그런 저녁인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