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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행복

by 은조

오늘 저녁부터는 매일 누리던 즐거움이 사라질 예정이다.


아이들을 다 재우고 고요해진 시간 속 나만의 순간을 즐기고 있다 보면 늦게 퇴근하는 남편이 도착한다.

그럼 나는 남편이 씻는 동안 조용하지만 빠르게 미리 생각해 두었던 간단한 안주들과 함께 맥주 한상을 차려낸다.


그렇게 한나절동안 냉장고에서 꽁꽁 얼어붙은 차가운 맥주 한 모금 마시며 하루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마무리하는 것이 우리의 소소하지만 행복하게 누리던 일상이었는데,

역시나 매일 음주는 몸에 해롭기도 하고 살이 많이 찌기에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을 맞이했다.


그렇게 오늘 저녁부터는 조금 덜 행복해질 예정이다.

그럼에도 다음날 체중계에 올라갔을 때 숫자를 보면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작은 기대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밤새 뒤척이다 일어난 화요일 아침.

이럴 때 해당 되는 말이겠지?! 한숨도 못 잤다고 하는 말-

뒤척이는 걸 스스로도 생각하고 알고 있으니 정말 뒤척인 것이 맞는 거 같고 더불어 내 옆에서 또 뒤척이던 한 사람.

남편도 밤새 나와 같이 뒤척였다. 왜지?


그럼에도 요즘 최고 몸무게를 갱신한 남편은 아침 운동을

하고자 몸을 일으키는 놀라움을 보여줬다.

그렇게 우리 집 사람들은 모두가 살을 빼야 하는 위치 해있기에 군말 없이 다 같이 운동길을 나섰다.


오늘 처음으로 같이하는 운동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매일 혼자 계단 타기는 지루하기만 했었는데 이렇게 다 같이 하다 보니 힘들어도 하나 더 한번 더 움직이는 계기가 되고

같이 으쌰 으쌰 에너지를 주고받으니 후끈한 열기 속에서

하는 운동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던 것이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뤄진 아침운동.


다 같이 나가 다 같이 집으로 돌아왔고 아들부터 차례로 씻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어서 씻어야 하는 상황에선 화장실이

두 개 있는 집이 참 부럽고도 부럽다


찝찝한 상태지만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나의 일을 한다.

빨래거리를 찾아 가져다 두고 점심 준비를 사부작 하고 있다 보면 남편까지 씻은 상황이 만들어져 있고 그렇게 남편 먼저

이른 점심을 차려준다.


대충 정리가 되고 나서야 나도 씻으러 들어간다.

운동을 제대로 하고 나선 매번 느끼는 감정이지만 씻을 때

유독 성취감과 개운함이 물밀려 다가온다.

이젠 씻으면서 하지 않으면 뭔가 덜 한 거 같은 화장실 청소까지 마친 후 산뜻하게 화장실에서 탈출한다.


바로 이어지는 아이들의 점심시간.

어제 재어놓은 불고기를 구워 밥 옆에 살포시 담아 덮밥

형식으로 완성, 거기다 몇 가지나물 반찬을 덜어 주면 간단하지만 알찬 한 끼가 완성된다.

운동을 나름 열심히 한 아이들은 잘 먹는다.

이렇게 먹을 때 너무 예쁜데 조절해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분명, 아이들을 위해서 더욱-


밥을 먹는 아들을 보는데 자꾸 입에 손가락이 들어간다?

왜 그런지 가만 보니 흔들리는 치아가 불편한 모양이다.

더 흔들어서 아빠한테 빼달라고 할 거라며 버티는 중이었는데 더 이상은 불편해 보여 안 되겠는 마음에 치과에 갈 것을

제시했다.


무서우면서도 불편했는지 아들은 빠르게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고, 학원이 끝난 뒤 데리러 가서 치과를 다녀왔다.

시원하게 발치도 하고 어느 부분 덜 되었던 레진치료도 하고 그렇게 완벽히 검진과 치료까지 끝내고 집에 오는 길에 어떤 것으로 저녁을 때우면 알차고도 미안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 생각난 곳.


그곳으로 가서 떡볶이와 순대, 김밥, 어묵까지 아주 야무지게 먹고 집에 오던 길에 마트에 들러 후식으로 먹을 귤까지 사들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처음 19살 때부터 실습하다 20살 때 취직한 곳이 어린이치과였다. 물론 어른들의 진료도 같이 했지만 간판 이름에 맞게 아이들의 환자 숫자가 월등히 높았다.


일하다 보면 심심찮게 아파서가 아닌 정기검진을 하러 엄마와 오늘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아마 내 어릴 적이 생각나서 그랬나 보다.

나는 많이 아파서 갔던 병원을 이렇게 아프기 전에 오고

주기적으로 케어받는 그 모습이 여유가 있어 보이고 삶의

질이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다음 안과에서 일하면서도 정기검진을 받는 사람들을

보며 눈과 이는 아프기 전에 주기적으로 검사하는 것이

맞는 거라는 생각을 새겨두고 살아갔는데 막상 나도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시간을 두는 것이 힘들어져갔다.


뭐, 심지어 감기가 걸려 아파서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에도 전전긍긍하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 평일 대낮에 아이들의 검진과 발치를 위하여

내가 케어하며 데리고 갔다 왔다 하는 상황이 너무 감사하면서 행복한 것이다.


내가 그 여유를 지금 누리고 있다니 하면서-


비록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많이 하면서 대자연의 날이 다가오는 기간이라 컨디션이 별로인 순간들이었지만 이 모든 것을 끝낸 지금 홀가분하고 깔끔하게 기분이 좋다.


그리고 더욱 깔끔한 것은 집에 오고 나서 자연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밖에서 펼쳐졌으면 상당히 불편했을 텐데 말이다.


다만, 오늘부터 우리만의 맥주타임이 사라진다니..

서로 잘 참아내자고 다짐하고 서로에게 파이팅!! 외쳐대지만

단칼에 자를 수 있을까, 없어도 해야 한다는 걸 아니 다시

조금을 행복하지 않을 거 같지만 한번 오늘 겪어봐야겠다.


그래도 다행인 건 또 다른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 같은

알 수 없는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의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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