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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따라오는 불안

by 은조

너무 단순하고 당연한 사실이지만 나는 너무 남편이 좋다.

특히나 어제처럼 마음대 마음으로 진심 어린 귀 기울임과

집중하는 눈빛을 보일 때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루를 보낼 때면 아무 문제가 없는 날이 거의 없는데 매번

그런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역할을 충실히 잘 해내는 그런

사람이 내 남편이라 다행이다.


남편에게 말을 하면 문제였던 것이 문제가 아닌 게 되고

심각하게 고민했던 생각들이 해결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역시 12살의 나이차이 속 연륜의 깊이는 어떤 식으로든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높은 경지임을 자연스레 느껴진다.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는데 남편이 깜빡이 없이 한마디 툭 들어온다 본인이 더욱 멋쩍어하며-

당신, 브런치 글 뭐, 어플 정리하다 눌러져서 봤는데 너무

딱딱하고 재미가 없는 거 같아, 재미가 없어


목구멍에 시원하게 떨어지던 맥주가 도로 튀어나올뻔한걸 겨우 삼키고 나 또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 내 글을 봤냐며

정말 봤냐고 다시 재차 물었다.

알 수 없는 조금의 정적이 흐르고 남편은 말을 이어갔다.


다. 다. 다. 너무 딱딱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하려는 지도

모르겠고 일단 재미가 없어-

아주 정확하고 냉철하니 기분 잡치게 하는 말들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런 지적질이 기분 나쁘지 않게 들렸다.

물론, 남편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라고 덧붙이긴

했지만-


그러나 정말 거짓 하나 보태지 않고 기분이 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정말 생각하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마 그렇게 들을 수 있던 것은 남편이 나를 진심으로 위하고 있음이 전해 져서였을 것이다.


계속 듣고 있는데 순간 부끄러움을 밀려 올라왔다.

남편이 내 글을 읽고 있었다니, 뭐 이상한 거 쓴 거 없나 하면서- 그리고 고마웠다. 평소에 책이랑은 담을 쌓고 줄줄이

있는 글은 꺼리는 사람이 내가 주절주절이 쓴 내용 없는 글을

쭉 읽고 있던 것이니 말이다.


뭐, 보려고 본 게 아닌 우. 연. 히. 어플 정리하다 본 거라지만

이런들 저런들 기분이 좋았다.


처음 그 말을 듣곤 오빠가 잘 모르는 거라고 원래 이렇게

써야 하는 거라며 떵떵거리며 대꾸했지만 남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수긍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니 나는 내 글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신기하게도 막 이렇게 쓸까, 저렇게 써볼까 하는 생각과 함께 뭔가라도 쓰고 싶은 창작 욕구가 솟아났다.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진심은 백 마디의 말보다

경청하는 자세와 주고받는 눈빛이라는 걸 알게 되었던 순간-


오늘 아침, 남편은 전날밤의 약속을 일어나자마자 지켰다.

아들과의 관계에서 속상해하는 나를 보며 이건 가족회의가 필요할 거 같다고 아침에 하자고 했는데 잊지 않고 아이들을 불렀고 그렇게 네 명의 가족이 모인 상태에서 가볍지만 진지하게 이뤄진 가족회의.


남편의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진심으로 받아들이는듯한

끄덕임을 연신 보여주며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뭔가 개운치 않았던 마음의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엄마를 대하는 모습과 아빠를 대하는 모습이 너무 다르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런 모습이 좋지만도 않은데

그렇다고 안 좋지도 않고 좋은 쪽에 더 가까운 거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그냥 이상하고 또 이상하고 요리꾸리한 마음-


날씨는 쨍쨍하다 못해 더위를 쏟아내는 높고 맑은 하늘이었고, 뭔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창 밖의 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조금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매일 데려다주던 학원을 아이들끼리 보냈다.

막상 둘이 보내니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기 전까진 뭐 마려운 개 마냥 편히 있지 못했지만 그 순간의 여유를 힘껏 누렸다.


어느덧 아이들 학원 끝날시간이었고 데리러 갔더니 시간표가 달라 먼저 끝난 딸아이 데리고 나와 피아노에 데려다주고 나는 다시 집으로 올라와 이불빨래 해놓은 거 건조기에 넣고 마지막 돌아간 빨래 정리 하니 다시 아들이 끝날시간-

땀이 줄줄 흘렀지만 그렇게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음이 좋았다.


데리러 가면서 남편과의 카톡을 하던 중

커피 마시고 싶다고 하길래 사다 줄까? 보냈더니 사다 주면

좋지라는 답변이 빠르게 왔고, 아들 학원 근처 카페에 가서

빠르게 하나 손에 들고 아들과 같이 남편의 일터로 향했다.


윽, 또 더워진 날씨 속에서 땀을 죽죽 흘리며 도착했고,

아들에게 커피를 전달받은 남편의 얼굴이 행복 그 자체였다.

분명한 건 그 행복이 커피 때문이 아니라는 것.


말하지 않아도 남편의 마음이 보였고 전달되었다.

아들이 주는 커피를 받은 남편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다는 듯 보여주고 싶다는 듯한 제스처로 충분히 느낄 수 있게 아들 어깨에 팔을 두르며 나를 향해 둘이 걸어오는 그 둘이 사랑스럽고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은 마음이 가득 피어올랐다.


커피 주고 돌아오는 길.

반대로 아들을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수업이 끝난 딸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집에 도착해 저녁을 차려주고 그걸 먹고 있는 딸아이를 보면서도 계속해서 남편과 아들의 모습. 남편의 행복 가득한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행복했다 그냥 계속 행복했는데..

정말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불안의 감정을 오늘 처음 느낀 것이 아닌 터라 회피하지

말고 들여다보고자 생각이 들었고 처음부터 느꼈던 감정선을 쭉 따라가 보니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이 행복할 때 느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행복한 만큼 불안이 따라왔고 그 불안엔 혹여나 이 행복이

깨질까 봐, 깨질 것만 같은 앞선 감정이 초래한 결과였다.

내가 이 행복을 누려도 되는 사람일까, 나는 불행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는데 그게 바뀔 수 있나?

이렇게 행복하다가 행복했던 만큼 결국 다시 불행해지지

않을까, 수많은 불안이 내 마음을 생각을 가만두지 않았다.


행복했던 마음만큼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이 느껴졌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대처하고자 결심하게 되었다.

원래라면 회피하고 아닌척하며 스스로를 속여 감정을 조절했다면 오늘은 앞서 말했듯 원인을 생각해 보고 감정을 따라가고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일 땐 그냥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온전히 느끼고자 하며-


그렇게 원인을 알게 되니 감정 회복이 빠르게는 아니어도

한결 편안하게 정리가 되어가고 있음이 느껴지는 지금-


자기 전 양치질을 끝낸 딸아이가 쭉 펴고 앉은 내 다리 위에 얼굴을 마주 보며 모습으로 앉았다.

이 행복이 깨지지 않음을 확인받고 싶어 딸아이를 꽉 안았다.

안은채 우리는 이렇게 행복하게 가족으로 쭉 같이 살자,

절대 깨지지 말자 서로 사랑하자고 딸에게 말은 말했지만

사실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 같은 읊조림이었다.


매일을 행복하기만 할 순 없지만 그냥 이렇게 함께 하고 같이 있을 수만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많은 역경을 이겨내 왔고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고난 또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선다.


이런 마음이 행복이고 이 마음만 잊지 않는다면 계속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말해본다.

불안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자 버티고 있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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