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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에피소드

by 은조

지난 토요일, 둘둘씩 각기 다른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협회 모임이 있던 남편은 아들을, 그 시간 동안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나는 딸아이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따로의 시간을 보낸 하루.


남편은 하남으로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다녀왔는지 내가

이곳에 가본 적은 있는 건가 싶은 홍대로 가게 되었다.

동네에서 홍대까지 가려니 1시간이 걸렸고 버스와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탄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딸아이가 좀 컸다고 불평불만 없이 잘 따라와 줬다.

무조건 자리에 앉아야 해서 눈치게임이 필요했지만-


남편 없이 친구들을 만난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주말은-

남편이 약속 있어 나가면 마냥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그 틈이 싫어서 내가 먼저 친구들에게 연락해 약속을 잡은 것이었는데 이게 뭐라고 만나기 전까지 마음 한구석

이상한 부담감으로 느껴지곤 했다.


그렇지만 알고는 있었다. 막상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색함 없이 신나게 즐기고 잘 놀 것이라는 걸.


생각했던 듯 우리는 몇 달 만에 만나도, 고등학생이 아닌

서른 살이 넘었어도 언제나 그때 그 시절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행동을 하고 우정을 쌓았다. 욕하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대화의 주제가 너무 세상적이라는 것?


원래 처음엔 하남에서 올 때 홍대로 와서 남편의 차를 같이 타고 집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는데 차가 막히는 토요일의 오후, 그럼 서로 너무 오래 기다리고 너무 막히기에 각자 집에서 만나기로 변경되었고 그렇게 딸아이를 데리고 홍대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또 느낀 건 정말 멀다는 것.

그리고 한동안은 이렇게 멀리 나가지 않을 거라는 작은 결심.


드디어 오후가 되어 집에서 만난 우리 네 명의 완전체.

본인들의 시간을 달라는 아이들을 집에 두고 우리 부부만

다시 밖으로 나왔고 그렇게 허락된 다시 둘만의 시간.

타코가 먹고 싶다는 남편 말에 동네 근처 타코집으로 가서

신중하게 골라 나름 맛있게 먹고 나왔다.


그렇게 짧게 짧게 2차까지 즐기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젤리 몇 가지와 간식을 사들고 집에 도착한 뒤 호기롭게 비밀번호를 띠띠띠띠 누르고 띠리리 소리와 함께 손잡이를 돌린 순간 철커덕- 하며 탁, 걸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반만 열린 것

뭐지? 하고 보니 현관문 맨 위에 걸쇠 하는 걸 아이들이

채워놓은 것이다.


우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걸쇠를 채워놓으면 안에서 열어주지 않는 이상 들어가지 못할뿐더러 원래 빨리 자는 우리

아이들이 안방에서 그것도 방문을 닫고 자고 있었으니-


전화도 진동이라 울리지도 않고 문 밖에서 아무리 아이들

이름을 애처롭게 외쳐봐도 우리 귀에 돌아와 꽂힐 뿐-

마지막 방법, 벨을 눌러보지만 역시나 소용은 없었다.


노곤하고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고

근처인 어머 님네 집에 가고자 다시 아파트를 나왔다.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서 당황할 아이들에게 문자 남겨두고 택시를 잡으려다 든 생각들.

어머 님네 동네는 택시가 가기 싫어하는 곳이라는 것, 더군다나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 것. 그렇다고 고 걸어가기엔 멀고 힘들다는 것.


그 순간 집에서 10분 거리인 남편 일터인 체육관이 떠올랐고 이곳에서 자야 아침에 빠르게 오기 좋겠다는 판단에 우린

다시 몸을 돌려 편의점에서 맥주 몇 가지 사서 갔다.


음, 처음에 설레고 좋았다. 창가 쪽으로 자리를 선정해 맥주를 쫙 깔아준 남편 덕분에 어둑어둑 해진 창가 밖에 작은 빛들의 세상이 운치 있게 느껴졌고 그 속에서 홀짝홀짝 마시는 맥주는 달콤했다.


남편과 함께 있는 뜻하지 않던 순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고 또 좋았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술이 들어간 만큼 지친 남편은

매트 위에 나는 소파 위에 몸을 뉘었고 그렇게 금방 잠에 들었는데 그놈의 모기 때문에 더 금방 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공격해 대는 모기와의 전쟁하는 동안 그 공간이 익숙한 남편은 작은 코골이로 꿀잠 자고 있었고 자지 전 모기가 많다고 모기 팔찌 같은 걸 사 올까? 묻던 남편에게 그냥 버티고 자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던 게 생각났기에 차마 깨울 순 없었지만 그렇다고 나만 공격하는 모기를 마냥 보고만 있을 순 없어 소파에서 벗어나 남편옆자리에 누웠고 차라리 이렇게 같이 나눠서 물리고자 하는 치사한 계획을 세웠다.


저녁엔 상당히 낭만적이고 운치 있다고 느껴졌던 큰 창 사이로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들이 차 소리와 함께 몰려왔고 그것들은 잔 것도, 안 잔 것도 아닌 상태의 나를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빨리자는 만큼 빨리 일어나는 아이들은

새벽 6시쯤 전화가 왔고 우리는 아니, 나는 정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했다.

조금 꼼지락 거리는 남편은 바로 두고 갈 태세로 말이다.


그런 나를 본 남편은 빠르게 일어났고 우린 새벽 공기를 맡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은 시원해진 공기 속 한참 20살 때 아침까지 술 마시고 집에 가던 좋지 않던 느낌의 그림이 떠올랐고 다시 한번 이렇게 다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일요일 새벽 우린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오자마자 씻고 집정리를 한 뒤 교회에 갈 아이들 준비를 도와주고 침대에 누웠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자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잠이 깼고 그렇게 다시 시작된 일상.


자고 일어나니 정신이 다시 괜찮아지는 그 순간 교회 가지

않은 찝찝함이 몰려왔다

다시 그 상황이어도 가진 못했을 것이지만 그 감정은 오로지 내 몫으로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한주의 시작 월요일

주말 동안 너무 먹어댔기에 몸무게가 치솟을 것을 예상은 했지만 아침에 재어보니 2킬로가 올라가 있었고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몸뚱이를 겨우 끌어내 체육관으로 향했다.

나가면서도 운동은 제대로 끝까지 하지 못할 거라는 걸 예상했지만 거르지 않고 갔다


주말 사이 선선해진 공기 속 물방울의 느낌이 머리에 달라붙는 느낌에 에너지가 올라가긴 했지만 원래 패턴대로 운동은 하지 못했고 언제나의 월요일처럼 오늘의 월요일에도 김밥이 먹고 싶다는 아이들 말에 집에 가는 길 포장했다.


덕분에 한결 편해진 점심.

거기다 남편 또한 점심을 집에서 먹지 않는다고 하니 허락된 나만의 시간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 기운이 날 거 같지만 뭔가 더 처지던 월요일


지난주 남편이 사는 게 재미없다고 했는데 오늘은 내가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그러나 행복은 소소 한 것이고 내가 만들어 거야 한다는 걸 잘 아는 나로서 내가 좋아하는 거, 돈 쓰는 거


계속해서 사고 싶어서 마음에 두었던 책도 사고 다이소에

가서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짱구 파우치도 두 개 더 사고 커피도 마시고 집에 와서 저녁준비며 집안일이며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니 조금 재밌어진 인생.


하루종일 모기밥이 된 나의 온몸을 벅벅 긁으며 괴로워하고 팔꿈치에만 7방을 물은 해도 해도 너무한 모기를 욕하고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재밌었고 이만하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살다 보니 정말 별별 일들이 많이 생기는구나-

생각하며 시작된 9월의 첫 월요일. 나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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