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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으로

by 은조

어제 아들과의 크고 작은 문제들로 기분이 너무 다운되어 있었다. 심지어 남편과의 그 즐거운 맥주타임을 가졌음에도

그 순간일 뿐 텐션이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잠이 들었고 아침은 아이들의 소음으로 깨어났다.


많이 시끄러운 소리에 깨어나 기분이 더 안 좋기도 했고

남편이 못 잤다며 일어나지 않아 운동을 같이 가지 않은 탓도 있었다. 근데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나는 정말 탓을 많이

하는 나약한 인간이구나 싶네?!


나의 기분은 내 것이니 온전히 내가 감당하고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임에도 주변 조건과 상황에 돌리니 말이다


이런 기분을 끌어올리고자 노력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이유인즉, 낮에 책장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박스를 정리하고자 꺼냈는데 그 안에 있던 여러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보너스처럼 아들의 어릴 적 사진까지-

아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보며 또, 아들의 사진을 보니

내가 아주 큰 잘못을 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정말 세상에게 호되게 혼난 느낌이 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만족하고 건강한 것만으로 감사하며

항상 칭찬해 주고 사랑해주어야 하는 귀한 존재이거늘,

나는 그런 존재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잘하면 잘할수록

모든 것을 당연시 여기고 오히려 더 나만의 기준에 잣대어

판단하고 미운말을 해대는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는 말이다. 존재 자체가 선물인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고 미안하다는 말을 넘어 심각하게 나 자신을

돌아봐야 했고 아이의 태어날 때 가졌던 그 초심을

다시 찾고 가슴 깊이 박아두고 잊지 말 것을 명심해야 했다.


멍청하게 다 잃고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고서도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을 할 순 없으니-

이런 현실을 깨달으니 가장 낮은 자세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게 되었고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마음이 편안해져 갔다.


박스 속에는 중학교 친구인, 지금도 아주 가끔 만나는 중학생 때부터 친구인 친구의 편지도 있었고 쭉 읽어나갔다.

그렇게 읽고 있노라니 자신의 삶 속에서도 나를 잊지 않고

챙겨주며 꾸준히 서로 주고받은 내용들을 다시 보게 되니

혼자 질투하고 자격지심 속에서 피하고 싶고 멀어지고 싶고 만남을 부담이라고만 느끼고 있던 감정과 관계들을 다시

편한 자세로 바라보고자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 중학교 친구들 중 한 명의 결혼으로 청첩장 모임차

오랜만에 만나는 약속이 기다리고 있는데, 솔직히

약속을 잡는 순간부터 오늘까지 그 만남은 나에게 부담

그 자체였다. 가지 않을 수 있는 핑계를 수없이 찾을 정도로-


싱글인 친구들은 본인만 챙기면 되고 걸릴 것도 없는

반면에 나는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다녀오려면 뒤에 걸리는 것들도 많으니 말이다.


만남이 심지어 평일이고 거기다 저녁 시간의 만남이니

쉽지 않고 쉽게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나에겐


그럼에도 나 하나로 인해 시간을 옮기고 어쩌고 하는 건 더

민폐고 부담스러워 그냥 가능하다고 했다.

저녁이니 엄마에게 잠깐 봐달라고 하고 바로 갔다 올 생각으로-


오늘 마음 변화가 생겼다고 해서 내가 그 만남에서 더 오래 있거나 더 자주 만나거나 하는 상황으로 바뀔 순 없지만 만남의 태도와 마음 가짐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라는 건 안다.


이렇게 진심인 친구들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혼자만의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던 걸까?

그건 자격지심일까 질투일까? 나만이 상황이 다르고

다른 친구들은 자주 많이 어울려 노는 터라 그런 걸까?

아니면 그 축에 끼지 못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안타까움을 빙자한 불쌍함이라 표현하던 친구들이라 그런 걸까?


나는 충분히 지금 너무 행복하고 즐겁고 소중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기에 전혀 그들에 틈에 끼고 싶은 마음도

어떻게든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데 친구들의

연락만, 사진만 보면 위축되는 어이없는 상황으로 변해가는

마음이 싫어졌고 그러면서 스스로 감정만 상하게 하기에

차라리 회피해 왔던 것이다.


솔직히 지금 이렇게 적으면서도 다음 주 만남을 가졌을 때

그곳에서 또다시 위축되거나 자격지심을 느끼며 기분 잡쳐서 오면 어쩌지? 그들의 눈빛이 나를 불쌍히 여기고 있다고 느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드는 건 사실이다.

언젠가처럼, 이놈의 구질구질-


그렇지만 이젠 자신의 마음에만 빠져 판단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과 혼자만의 생각이라는 걸 진심으로 깨달았으니 부담 가지지 말고 괜히 위축되지 말고 위축될 이유도 없으니 전과는 다르게 조금은 즐기는 쪽을 택하고자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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