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평일에 이렇게 오래 자고 일어난 건 처음 아닐까 싶은 날. 물론, 저녁부터 한방에 쭉 잘 수 있던 건 아니지만-
오전 7시쯤 일어나 아들 드림렌즈 빼주고 다시 잠들어
8시쯤 다시 일어나 새벽 배송으로 고기랑 빵이랑 온 거 정리하고 아이들 아침은 간단히 토스트빵과 방울토마토 구운 계란-
차려주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몸을 눕혔고 옆에 누워있는
남편 반대로 고개를 휙 돌린 채 잠을 청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사랑스럽고 자는 모습만 봐도 가엽고 고마운 감정이 올라오지만 오늘처럼 싸운 상태라면 눈조차 마주치기 싫어진다
그렇게 오늘은 우리의 그날이었다
작년 9월이 마지막이었으니 거의 1년 만의 일어난
부부싸움의 그날이랄까?!
시작은 이랬다.
저녁, 즐기자고 시작된 맥주타임 중 이런 말 저런 말 꺼내며
신나게 이야기하는데 타인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본질은
흐려지고 서로 상처되는 이야기로 끝이난 것이다
그렇게 서로 소리 높여 말하면서도 왜 끝이 이래야 하는지
왜 타인의 이야기로 우리가 싸워야 하는지 억울하기도 하면서 이유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싸워야 했던 것
서로 기분 상해서 잠이 들었고 아침에 눈을 떠서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던 것. 그래서 몸이 축축 처졌나? 마음처럼-
싸웠음에도 꼭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우리-
남편이 옆에서 몸을 뒤척이며 습관적으로 내 허리를 감쌌고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걸 의식했는지 남편이 황급히 손을 떼며 반대로 몸을 돌려 누웠다.
그러고 있자니 더 이상 누워있기 싫었고 방을 박차고 나와보니 전날 심상치 않게 기침하던 딸아이의 얼굴이 뭔가 다른 느낌에 비접촉 체온계로 열을 재어보니 부위마다 다르긴 했지만 38도가 나오는 것이다.
늦게 일어난 탓에 점심시간 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부랴부랴 준비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진짜 그런 건지 느낌 탓인 건지 아들도 뜨끈하고 나 또한 몸살기운이 있는 거 같아 셋이 함께 진료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결국 쏟아낸 나의 샤우팅-
병원에서 너무 상황에 어긋나는 행동들을 많이 했기에
나온 것이다. 근데 정말 안 할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하는데 왜 갑자기 엄마 배고파 그러는데? 옆에 서있다가 갑자기 왜 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데?
그래도 진짜 아픈 것이 아니라 기분 탓의 영향이 더 컸으니
그걸로 위안 삼으며 마음을 놓았다
학원 가기 전 아이들 점심을 차려주고
할까 말까 고민하며 말을 꺼냈다.
오빠 점심 언제 먹을 거야? 자는 척 눈을 감고 있던 남편은
곧이어 몇 시냐 묻더니 지금 먹겠다고 하는 것
차려주고 치우고 아이들 학원 보내니 조용해진 집안
남겨진 남편과 나는 더 고요하게 있었고 그런 숨 막히는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건조기에 넣기 위해
세탁기 남은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기다렸고 다 돌아가자마자 건조기에 올려 넣고 집을 나섰다
나서기 전 남편 앞을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보면서도
어디 가냐고 묻지 않던 남편. 더 얄미웠다.
그나마 오늘 기분이 최악까지 떨어지지 않았던 건
아이들은 친정 엄마네 집에서 하룻밤 자는 날이고
나의 자유시간이 주어진 날이었기에-
그대로 집에서 나와 장을 보고 커피 한잔 사들고 집에 돌아왔고 그사이 남편은 일터로 나간 것 -
당연한 거겠지만 싸우면 절대 연락하지 않기에
오늘도 연락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옷에서 냄새가 난다며 카톡을 보내온 남편-
내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간단히 짧게 답장을 보냈고
아이들은 엄마네 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차에 온 남편의 답장
아무렇지 않은 척 분위기 풀려고 보낸듯한 내용 이번엔 마음에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깔끔한 정적 속 화장실 청소를 했고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 며칠 전부터 먹고 싶어 미리 사두었던
김치만두를 찌고 나만을 위한 한상을 차린 뒤 매콤한 무김치를 더해 맥주를 먹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없는 빈 공간은 허하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가끔 한 번씩의 이런 시간은 다시 아이들을 케어하는데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용기와 열정이 불사 오르게 해 준다.
먹으면서도 몸과는 다르게 개운하지 않은 마음으로
은근슬쩍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이상한 마음-
부디 남편이 오기 전 취하지 않고 버티고 있길 살짝쿵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