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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대 똥고집

by 은조

어매나, 오늘 아침엔 9시가 넘어 일어났다.

곧 다시 취직해서 이른 새벽 생활해야 하는데 말이다.

물론 먹고 살려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는 일어날 것이고

절대 출근시간에 늦지 않고자 정신력으로 버티며 살아갈 거란 걸 알면서도 이렇게 몸이 편해지면 다시 돌아가서 적응하기 힘들어지는 그 상황들이 걱정되어 가는 중이다


물론 아이들의 방학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 마음을 놓고 살아가고 있어서 그런 거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지만,

아직 방학이 끝나려면 한 달간의 시간이 남았는데 지나온

시간들을 보면 빨리 흐르는 거 같다가도 앞으로의 남은 날들을 생각하니 아직 멀었구나 싶기도 한 그런 나날들-


오늘 아침엔 남편도 일어나서 같이 아침 운동을 다녀왔다.

운동을 하면서 아이들로 인해 정신이 분산되었던지 남편은 정말 저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머리를 거치지 않고 속에서

입으로 바로 튀어나온 듯이 말했다.

아 정말 빨리 개학하면 좋겠다-


옆에서 운동하던 나도 남편의 백 프로 진심이 담긴 말에 픽하고 웃음이 났고 힘들었지만 역시 다 같이 운동하니 에너지를 받으며 어찌 되든 끝마칠 수 있던 하루의 시작이었다.


하기 싫은 운동만 끝내고 나면 그 후는 후루룩 지나간다

이른 점심밥을 차리고 치우고 정리하고 조금 쉬고 있음

아이들의 학원 갈 시간-


요즘 아이들끼리만 학원을 보내는데 마음이 불편하긴 하지만 몸이 이렇게 편하고 여유 있을 줄은 몰랐다.

항상 같이 갔다 다시 왔다 저리 갔다 왔다 하다 보니 틈 나는

시간을 활용하기 어려웠는데 둘이 가는 것만으로도 이런

신선한 틈이 벌어지다니!


점심을 이것저것 제대로 주지 못해 미안했기에 저녁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삼계탕을 해주기로 했다.

아이들을 보내고 조금 쉬다 마트에 갔고 닭다리만 담긴

포장팩을 손에 들고 해산물 코너로 갔다.

닭다리만 푹 끓여도 국물과 같이 먹으면 상당히 맛있는 맛이지만 이왕 하는 거 더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전복을 고르러 간 것. 아주 크고 신선한 것으로 골랐고 뭐 산 것도 없는 거 같지만 5만 원이 훌쩍 넘은 금액이 나왔다


아직도 더운 날씨 탓에 장보고 아이스로 커피 두 잔 사서 남편 한잔 배달해 주고 나는 커피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냉장고에 장 봐온 재료들을 넣어놓고 시계를 보니

다시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다녀와서 할까, 지금 할까 살짝 고민하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하는 일이란 생각에 굳이 미루지 말자 혼잣말하며 벌떡 일어나 건조기에 가득 들은 빨래 거리를 거실에 싹 쏟아내고 부지런히 개기 시작했다


시간을 딱 맞췄다, 접고 개기, 그리고 정리하기까지 끝낸 후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조금이지만 떨어졌다 만나면 다시

예뻐 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효과를 느낄 수 있는데

당연히 오늘도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역시나 당연한 것을 없는 법-


나를 보자마자 딸아이는 배고프다며 빵집에 가자고 하질 않나 안된다고 하니 동네에 있는 온 마트 이름들을 하나하나

다 대면서 가자고 고집을 부리고 또다시 안된다고 말하니

주먹으로 내 엉덩이를 때리던 아이.

(젤리사고 싶어 빵집에 가자고 하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길거리에서 그러는 것도 민망하고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인 것인데 옆에 아이들과 학원에 같이 다니는 형까지

있던 것- 웬만하면 밖에선 착한 척하며 말하는 나이지만

척이고 나발이고 정색에 정색을 이어갔다


그렇게 진정된 딸아이.

둘이 약속이라도 한 듯 피아노학원에 들어가기 전 아들 녀석이 말을 이어가며 학원이 끝나면 그 옆에 있던 학원 형이랑 놀고 온다는 것이다.


그냥 집으로 오라고 나의 말에 아들은 아니, 놀고 갈 거야라고 말을 하는데 그 말투와 목소리와 행동은 아예 내 이야기를 들을 생각조차 없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나타났고

그 순간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내 말을 아예 귀에 담지도 않을뿐더러

나에게 의견을 묻고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닌 그냥 선포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그 형이 오늘은 놀지 못한다고 해서 끝이난 결말이지만

아이들을 보내고 집으로 올라오는 내내 속에서 시끄럽게

움직이는 어처구니의 당황스러운 감정은 진정되지 않았다.


엄마인 나를 벌써 이렇게 대하고 생각하면 어쩌나 싶어서

좀처럼 마음이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그냥 내 이야기를 듣기만 한다면 그게 뭐라고?

그게 어떻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상황과 아들의 표정과 말투를 옆에서 보고 들었더라면 내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피아노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타들어가는 내 속처럼 팔팔 끓인 삼계탕을 저녁으로 차려주며 아까 약속한 거처럼 오늘 저녁엔 핸드폰을 하지 않는 거라고 아들에게 확인 사살을 해주었다.


사실 아침에 핸드폰 게임 시작 전 끝내는 시간을 미리 정했지만 하다 보니 시간을 당연하듯 넘겼고 마지막 주어진 시간까지 다 달았음에도 조금더를 외치던 아들에게 저녁엔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놨던 터였다


내 말을 들은 아들은 받아들이지도, 안 받아들이지도 못하며 밥을 먹었고 기분은 안 좋지만 남김없이 먹은 아들은 후식까지 마무리로 먹은 뒤 원래패턴대로 영어시험을 보자고 했고 시험이 끝나자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핸드폰을 요구하던

아들.


눈치 보며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그런대로 기특해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시켜줄까?

속으로만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갈팡질팡 마음이 움직였고 무슨 핸드폰이냐는 나의 말에 쿵쿵 방으로 가서울던 아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 해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가득 찼다


혼자 울었다가 진정했다 반복의 반복을 이어가던 그때

보드게임 하자고 했고, 그제야 아들은 현실을 받아들이는듯했는데 시작 전 몇 시까지만 하자는 나의 말에 또 트집 잡으며 늘어지던 아들을 보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를 무시한다고 들었던 생각이 확신이라고 느껴졌기에-


이럴 때 남편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나의 넋두리에 내 마음을 잘 이해하고 읽어주는 남편이 있어서 말이다. 아빠는 무서운지 아님 자신에게 실망할까 두려운 건지 아들 녀석은 내가 남편과 주고받는 문자 내용을 계속해서 물었다.


그냥 머릿속으론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랬다.

잠자는 시간이 얼른 오길 바랐고 아이들이 자길 만을 바라는 저녁 시간이었다.


잘 시간이 되니 누웠고 얼마뒤 방에서 고른 숨소리가 들려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보니 잠이 안 온다던 딸아이의 곤히

자는 모습은 너무 귀여웠고 울어서 통통 부은 고집이 가득

담긴 아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나 또한 고집을 잔뜩 담아 감정적으로 대한 것에 미안함이 전달되기 바라며 볼을 몇 차례 어루만져 본다.


역시 성질내면 나만 손해인 이 불공평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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