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제하려고 노력하는데도 역시 술이 들어가다 보면 술에
취하는 순간은 순식간에 마주하게 된다.
언제까지 그러는지, 술만 먹으면 신이 나는 나 자신.
평소에는 조용조용 텐션 낮은 모습으로 보내다가
술 만들어가면 세상 밝은 사람으로 변한다.
오랜만에 남편의 지인분들을 같이 만났다.
한잔에서 두 잔, 결국 집으로 와서까지 이어진 술자리
다행히? 이른 시간부터 시작했기에 다 끝난 시간도 늦은 건 아니었지만 다음날의 숙취의 상태로 보자면 그날 나의
텐션이 어땠는지 안 봐도 뻔하다.
토요일, 그렇게 부어라 마시고 눈뜬 일요일
아니,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때까지도 머리가 빙글빙글
속은 최악, 그래서 그런지 다시 잠이 들지도 않았고...
누워만 있는데도 머리가 깨져오는 느낌이 나를 공격했다.
그런 상황이 되면 몸도 마음도 별로가 된다.
일요일, 나름 이른 잠자리에 들어갔다.
잘 잔다고 잤는데 맛있어서 낮에 많이 먹었던 총각김치가
문제였는지 새벽녘, 배가 싸하게 아파서 결국 잠에서
깨어났고, 화장실을 두어 번 정도 들락날락 한 뒤에야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었는데....
시끌 시끌한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깨워서 눈을 떠보니 체감상 30분 더 잔 거 같았지만 벌써 오전 8시가 넘은 것이다.
월요일은 월요일이라 역시나 정말 몸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순간 일어나지 않으면 뒤에 패턴이 다 깨진다고 생각하니 일어나게 되었다.
그 생각은 스스로를 일으키는 이유로 충분하다.
주말에 얼마나 먹어댔는지 몸무게는 2킬로가 증가한 날.
마침 이리저리 걷는 일들이 많았다. 걸으면서도 걷기 싫었지만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놈의 2킬로 때문에-
날씨가 조금은 찜통에선 벗어난 듯 하지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찝찝하게 땀이 차오르는 그런 날들이기에 온몸에 꿉꿉함이 같이 붙어댄다.
아이들 마지막 학원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내리는 비.
아이들이 우산을 가져가지 않았기에 다시 데리러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잠시 꾀를 부려보았다.
그냥 뛰어오라고 할까?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얇았던 빗줄기들은 굵어지고
누가 들어도 많이 내리네, 하는 정도의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뿜어대고 있었다.
우산 세 개를 챙겨 나왔다.
비를 막으며 학원에 도착했고 5분 정도 기다리니 나오는 아이들. 엥? 왜, 아이들이 나오고 2분 정도 지나니 거의 바로 비가 그치는 것인가-
심지어 그 얇디얇은 빗줄기 마저 바로 그쳐버렸고 우산을
접고 집으로 돌아오는 상황이 되었다.
안 나갈 수도 없었지만 날씨에게 뭔가 약이 올랐다.
점심에 김밥으로 때우게 한 것이 마음에 걸려 저녁은 제대로 차려줬다. 내가 만든 카레와, 내가 양념 조물조물해서 재어둔 뒤 정성껏 구운 고기, 반찬가게 사장님의 솜씨 가득 묻어있는 나물 반찬들이 모이니 진수성찬-
저녁시간 아직 젓가락질이 서툰 딸아이에게 나름 젓가락 성배인 아들이 차근차근 알려주고 있었다.
안 된다고 짜증 내는 딸아이를 보면서도 아들은 성질 한 번
안 내고 더욱 쉽게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도 그렇게 못하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선생님이 돼야 하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이왕 교수님이 되면 더 좋겠네 하는 혼자만의 북 치고 장구 치고-
저녁만 되면 무겁게 붓는 종아리와 닿기만 해도 뭔가 아픈 발을 끌고 딛고 씻고 나왔다.
아들 녀석 사춘기 호르몬이 나에게까지 퍼진 건지 아침만
되면 얼굴에 뭔 놈의 뾰루지가 그렇게 올라와있는지,
나름 나에게도 피부 좋다는 소리 들었을 때가 있었는데 정말 퇴사하고 집에만 있는 그 순간부터 얼굴이 엉망이 되어가는 느낌이 상당히 많이 들었다.
그런 얼굴에게 미안해 오늘은 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되어 있던 팩 하나를 꺼내 들고 얼굴에 붙이기로 했다.
팩을 찍- 뜯은 뒤 그 앰플이 진액이라지만 너무 많이 칠 벙하게 묻는 게 싫은 나는 슥슥 밀어내고 최소한으로만 묻혀 얼굴에 놓는다.
시원한 느낌이 싹 돌면서 얼굴을 눌러준다.
그냥 그렇게 하고만 있어도 피부가 좋아질 것만 같은 느낌에 기분이 살짝 좋아지는데 팩 하는 나의 모습을 보던 딸아이도 해달라고 하여 같이 부쳐 놓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떼어내고 톡톡 두드리며 마무리를 한다.
그렇게 나의 하루 육아도 집안일도 마무리가 되어간다.
남은 건 아들 녀석 드림렌즈 껴주고 두 아이들에게
잘 자. 사랑해 남발해 주고 자라고 하면 끝!
거실부터 불은 다 꺼 어둡고 침침함 속에서 스탠드 불 하나만으로도 나만의 환한 시간이 시작된다
아이들도, 남편도 없는 오로지 나만이 느끼는 빛 같은
고요함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