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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Nov 14. 2024

[13] 두 번째, 낡은 궁전

첫 우리만의 공간이었던 월세집이 아직 계약기간이 남은

시점이었지만 점점 한계를 느껴갔던 거 같아.

워낙 좁은 공간이다 보니 짐들이 더 이상 자기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할 정도로 포화 상태로 변해갔지-


거기다 뱃속에 한 생명이 더 생겼으니 그 작은 집에서 네 명이 살기에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지. 우리의 그러한 판단이  집주인아저씨에게도 마땅하게 느껴지긴 했었나 봐.

그러니 너무나도 유연하게 그리고 감사하게도 기간도 다 차지 않았음에도 방을 빼주셨지. 물론 복비랑 그런 건 우리가

다 감 당했고 하는 게 마땅했지-


우리의 두 번째 집은 산과 동네의 집들이 한눈에 펼쳐 보이는 아주 경치가 좋다면 좋은 꼭대기였잖아-

처음 엄마가 그 집을 알아보고 우리를 데려갈 때 걸어 올라가면서 당신과 내가 서로 바라보며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이런 곳에 위치한 집은 아무리 좋아도 못 산다고, 이렇게 꼭대기에서 어떻게 사냐고 중얼중얼 구시렁구시렁-


헉헉 거리며 도착한 어느 빌라 앞, 2층으로 올라가 현관문을 열었지. 딱 들어서니 넓게 펼쳐지는 공간들이 일단 합격.

거기다 거실, 방 한 칸 한 칸 둘러보고 끝으로 부엌을 보고 인사를 하며 나오는 길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 나 여기로 이사 올 거야! 그랬잖아!


올 때의 궁시렁의 마음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보자마자 너무 마음에 들었어. 일단 거실과 부엌이 따로 나눠져 있다는 것도 매우 마음에 들었는데 거기다 다 널찍널찍하기까지 그리고 방도 세 개라니!!


무엇보다 부엌이 어쩜 그렇게 넓은지 내가 그 좁디좁은 부엌이라고 할 수 없는 그곳에서 아들 이유식 만드느라 고생을 하던 시기라 그랬는지 큰 부엌에 홀랑 빠져버려서 더 이상 언덕이고 꼭대기고 다른 것들은 이미 보이지가 않았던 거야


다행인 건 나만 마음에 들면 의견 다툼이 있었겠지만 당신도 보고 나오니 나와 같은 눈빛이더라?

우린 그 길로 마음에 든다고 표현을 하고 집주인아저씨에게 말씀드리고 날짜를 잡고 차례차례 준비를 했지.


와, 지금도 생각나. 이사 가기 전 디데이까지 어찌나 설레던지 매우 기다려졌어. 넓은 집에 가서 얼른 살고 싶어서

그 기다림의 크기만큼 양쪽 간 날짜며 의견 조율하는데 애태운 마음도 같이 떠오르네. 이사라는 게 정말 한 10년쯤은 늙어야 진행된다고 느껴졌었어.


그런 여러 고생 끝에 드디어 이삿날이 되었고 그래도 운이 좋게도 인터넷에서 검색해 우연히 알게 된 이삿짐센터 사장님이 엄청 고수셨어. 큰 짐이 그렇게 많진 않았지만 은근히 물건들이 많았던 우리의 물건들을 금방 잽싸게 무사히 정성껏 포장해 주셨지 그리고 저렴하게-


생각보다 빠르게 물건을 다 빼고 도착한 우리의 두 번째 집 빌라.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 사장님이 물건 넣어주시면서

 와, 궁전으로 이사 왔네라고 하셨던 게 말이야-

10년도 더 된 기억이지만 그 처음으로 첫발을 들어설 때 느낌이 쿡쿡 쑤시게 생생하네


비록 집이 너무 더러워서 이삿짐을 넣기도 전에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던 우리 엄마도 생생히 기억나고-

이사했던 날이 2월의 추운 시기였는데 하필 첫날부터 보일러가 고장 나서 셋이 이불 꽁꽁 싸매고 잤던 것도 생생하게 기억나고 말이야. 근데 그것마저 좋지 않았어? 집이 궁전처럼 넓어졌잖아. 그것만으로 행복했었거든 나는


살다 보니 화장실이고 싱크대고 하수구가 다 막혀있는 제대로 눈 가리고 아웅이던 가관도 아닌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그곳은 우리가 꼭대기에 살면 큰집에 살 수 있구나 배운 곳이고 그랬기에 그런 곳에 살아볼 수 있었고 힘들지만 여러 경험도 해보며 문제들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  낡은 궁전이지만 어쨌든 궁전은 궁전이었잖아?! 그러니 그걸로 그런대로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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