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조 Nov 19. 2024

[14] 새벽에 울린 벨소리

그렇게 낡지만 만족스러운 궁전으로 이사한 뒤 만삭으로 향해가던 즈음 믿기지 않게도 시아버님이 급성 췌장암으로 위독한 상태셨잖아. 누구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아버님 상황에 다들 심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시기였지.


주말이면 모두가 당연하듯 병원으로 모였고 그곳에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눴지. 그렇게 우린 아버님 곁에 있었지만 아버님은 우리가 있는지 모르셨을 거야. 그만큼 많이 아파하셨고 많이 힘들어하셨으니 말이야.


그런 아버님을 뵐 때면 알게 모르게 죄책감과 미움 양면의 감정이 들어 괴로웠어. 내 아픔 마음이 진심일까 보여주기식일까 스스로 가면을 쓰고 있는 걸까 그것밖에 안 되는 걸까

그런 이중적인 마음으로 고통스러워 그 감정이 강한 날엔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도 했어-


아버님이 장담하시며  말씀하셨듯 그날은 여전히 내 마음엔 큰 상처로 남아 찢겨 아물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야.


모두가 잠자는 조용한 새벽.

당신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어

누구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어머님일 것이라는 생각에 먼저 닿았고 아버님의 마지막 순간을 전하실 거라는 것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지.


당신은 그 길로 바로 집을 나섰고 나는 어린아이가 있다는 핑계로 만삭이라는 이유로 따라가지 않았어. 다시 잠들지 못한 채 나간 당신의 보이지 않는 검은 그림자를 따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어


몇 시간이 흐르니 날이 밝았고 당신이 집으로 돌아왔지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며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차분히 나에게 당신은 말해주었어.


확실히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 행동이 다르긴 다르구나 생각이 들긴 했지만 정신없어서 깊게는 생각하지 못한 채

아들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했지.


그때까진 아무렇지 않았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어

건물 안에 들어서니 검은 상복을 입은 어머님이 보였고

시누이가 보였고 아주버님도 보였어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라 그랬는지 더욱 믿기지 않았어 그 순간 장례식장 직원분이 들어오셔서 여러 가지를 묻고 고르고 정하라고 하니 그때 조금 뭔가 싶더라고


그 순간 뜨거운 뭔가 올라올 것만 같았어.

눈이 마주친 어머님에게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지.


안에 들어가면 있다고 하셔서 알려주신 대로 급하게 들어가 보았지만 걷는 도중에 견디지 터져버린 거야 눈물이

내가 눈물을 흘릴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뒤따라 오고 계시던어머님. 둘이 부둥켜안고 펑펑 울어버렸어.


정말 눈에서 바다가 쏟아지듯 그 많은 물들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신기할 노릇이었어. 어머님은 나에게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하셨지. 나를 너무 예뻐하셔서 그랬던 거라고 너무

서운하셔서 그런 거라고도 하시며 내가 말하지 않았지만

내 눈물의 의미를 그리고 여전히 어머님도 그날의 기억에서 멈춰 계셨던 거라는 걸 알 수 있었어.


거짓말처럼 쏟을 수 있을 만큼 다 쏟아내니 홀가분해졌어.

마음에서도 홀가분-


장례를 치르면서도  당신은 언제나처럼 씩씩해 보였어.

강한 사람인 건 알았지만 이상하리만큼 강해 보였지.

근데 그 강함이 와르르 무너지던 순간이 있었지.

바로, 염을 하고 와서였어. 물론 나는 보지 못했지만 그곳을 다녀온 당신은 두 눈이 시뻘게졌고 와서도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버거워했지.


비로소 한 남자의, 아들의 소년의 모습을 보여줬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당신은 말했어. 그 고통이 너무 크고

슬픔이 너무 깊어서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고 떠올리면 살아갈 수 없어서 애써 잊으며 지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이야.


강한 것이 아니라 강하려고 했고 강해야만 했던 걸까

무너진 것이 아니고 쌓여있던 연약함이 보인 것이겠지

근데 있잖아, 괜찮지 않을 땐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거야

그래야 괜찮을 때 진짜 괜찮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이전 13화 [13] 두 번째, 낡은 궁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