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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Nov 20. 2024

[15] 나가면 이혼이야

그렇게 원할 때는 언제고 둘째는 임신을 하기 위해서부터 임신 기간 동안에도 거기다 출산하고 출산해서도 모든 순간이 유난히 힘들었네


생각보다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던 임신과 첫째를 돌보며 배가 불러오고 이사와 함께 겹쳐온 집안 상황들 속

우울한 악재들이 고통스러웠고 딸아이의 출산 예정일 즈음엔  당신이 지방 일정이 잡혀있어 예상치 못하게 유도분만으로 빨리 아이를 만나야 했지.


다행히 선생님이 낳아도 된다고 하셨기에 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촉진제를 맞고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하루가 지나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모두가 지켜가던 때 당신이 첫째를 데리러 간 그 사이에 딸아이가 나왔지.

옆엔 친정 엄마가 있어서 탯줄을 잘라주는 웃픈 상황이 발생했잖아. 그렇게 같이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하필 당신이 딱

가자마자 그러니 아쉬울 뿐이었지


첫째 때는 조리원에 갈 수 있는 상황이 됐었지만 둘째 때는

 우리의 경제적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았잖아.

뭐, 조리원 비용이 한두 푼 해? 그래서 조리원은 깔끔히 포기하고 태어난 지 3일 된 신생아를 데리고 집으로 갔지-

그래도 한 번 해봤다고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어.

그래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


그게 우리의 모든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건 꿈에도 모른 채 잘 해낼 거라고 생각했어


힘들었어. 당신도 힘들었겠지 당연히 딸아이는 예민했어.

울기도 많이 울었고 신생아 때부터 클수록 더 많이 울었고

 당연한 거지만 모든 표현을 울음으로 표현했지.

아이의 울음 횟수에 비례하게 우리의 싸움 횟수도 늘어갔지

아마 그때가 우리 평생 할 부부싸움 거의 다 했던 거 같은데?


그날도 싸웠던 날이었어.

당신이 늦게 들어왔어, 아닌가 다음날 들어왔나?

원래 같으면 그런들 아무 소리 안 하고 있었겠지만 그날은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자고 있는 당신 곁에 애들을 두고 나도 밖으로 나갔어


동네 언니를 불러서 맥주를 마셨어.

몇 시간 뒤 당신이 일어났나 봐? 장문의 문자를 보냈더라?

나를 비난하는 문자였지. 그렇지만 역시나 평소와는 다르게 바로 들어가지 않았고 조금 더 버티다 집으로 들어갔어


그렇게 당신과 시작되었지 말싸움.

애들 앞에서 가장 크게 싸웠던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바라는 큰 싸움이었지. 악을 지르던 내가 나갈 거라고 했어.

당신은 나가라고 했고 그래서 나간다고 했어. 나가라고 했고


최대한 큰 가방에 옷을 쑤셔 담았어 마구 담았어.

그때 겨우 세 살이던 아들이 내 옆에서 울었어

미안하지만 멈출 수 없었어 이기적이고 나쁜 엄마였어.

아무거나 담았어 막 담았어 계속해서 나갈 거라고 했어


가방을 끌며 방에서 나갔고 현관문으로 향했어.

그런 내 뒤통수에 대고 당신이 나를 향해 소리쳤어

-지금 이렇게 나가면 절대 못 들어와 이혼이야

문을 쾅 닫았어


문이 닫히는 소리에 당신은 바로 베란다로 달려가더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나는 나가지 못했거든.

문만 열었다 닫았을 뿐 차마 문 밖으로 발걸음을 떼지 못했어

나갈 수 없었어. 용기도 없었고 애들이 보여서 이혼할 수 없었어. 갈 수 있는 곳도 없었고 말이야.


창문 밖에서 내가 보이지 않았는지 당신이 현관문으로 왔어. 당신이 걸어오는 발소리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부짖었어 나에게 왜 그러냐고 하면서-


당신은 그때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

똑같이 당신도 그랬지, 나에게 왜 그러냐고

그러곤 방으로 들어가 버렸지.

그렇게 며칠 냉전이 지속되었어.

그래도 우린 화해를 했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네.


이혼이라는 단어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나에겐 많이

무섭고 두려운 단어야. 부모의 이혼으로 원치 않게 이혼 가정에서 컸고 그 안에서 많은 결핍을 느끼며 자랐기에 내 자식들에게는 그 감정적 두려움과 결핍만큼은 절대 경험시켜주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하거든.


근데 나에 비해 당신인 두려워하지 않는 거 같아.

그럴 때마다 역시 당신은 나의 이런 결핍을 못 느껴봐서 그럴 수 있는 건가? 싶어서 이혼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당신이 밉고 또 미워 그런 순간은 언제나


싸움과 화해, 반복이 부부의 살아가는 길이겠지만-

그 길 끝엔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자식들이 있다는 걸 절대 잊지 말길. 어느 순간에도 우리 자신보다도 더 소중히 생각하고 챙겨야 하는 존재들이 서있다는 거 절대 잊지 말자.

당신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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