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흐를 거 같지 않은 시간은 매번 잘도 흘러 2년의 빌라 전세기간이 끝날 시기가 되었지.
그때 집주인아저씨는 우리에게 그 집을 매매할 것을 권했는데 우리가 미치지 않고서는 절대 살 수 없었지.
집이 넓어서 좋은 거 빼면 하수구는 막힐 대로 막혔고 위아래가 다 같이 사는 듯이 방음은 저리 가라 소음으로 난리였지
그래서 우린 또다시 집을 구하러 다녀야 했어.
추운 겨울날. 다시 시작된 집 구하기 전쟁
전세가 슬슬 오르는 시기인터라 대출이 나오는가가 중요한 포인트였지. 전에 집에 비해 돈을 많이 빌려야 했기에 당신 도나도 많이 예민한 상태였어. 부동산도 한 곳만 가면 안 되잖아 우리가 가는 곳 엄마가 알려준 곳 건너 건너 소개로 알려준 곳 가리지 않고 정신없이 돌아다녔지
하루만 보고 딱 마음에 드는 곳이 나오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그럴 일은 쉽지 않다는 거-
돈이 올라가면 너무 마음에 들지만 돈이 내려가면 너무 마음에 들지 않고 그게 사람 미치게 만들더라고-
그러다 돈이 좀 올라가긴 했지만 조금 욕심내면 도전해 볼 만한 곳이면서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집을 딱 발견한 거야
1층이면서 넓고 약간의 작은 마당도 있는 미로의 신비한
구조를 가진 집이었지. 지금도 구석구석 생각나는 거 보면 나, 정말 마음에 들었나 봐.
바로 당신에게 말했고 부담스러워했지만 내 확고한 의견이 잘 전달되었는지 대출을 알아보던 당신.
하지만 그곳은 법인인가? 암튼 뭐로 묶여 있어서 대출이 아예 나오지 않는 곳이었어..
와 그땐 정말 다 포기하고 싶더라
그렇게 마음에 드는 곳을 보았으니 더 이상 더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아 의욕이 사라져 가고 날은 춥고 그나마 마음 붙잡고 돌아다니며 보면 볼수록 집은 더 별로고 그렇게 허탕치고 오는 저녁엔 더욱 날카로워 당신과 날 선 대화를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던 거 같네
그래도 되려면 어떻게든 되나 봐.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
당신에게 걸려온 전화. 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지금 바로
그곳으로 가보라고 하길래 솔직히 가기 싫었어-
날은 춥지 가도 허탕 칠 거 같았거든. 지금까지 그랬으니까
근데 가지 않으면 더 큰 싸움으로 번질 게 뻔하니 속는 셈 가자 하고 갔는데, 그곳은 내가 잘 알고 있는 곳이었어.
내 중학교 때 친구들이 많이 살았던 아파트 단지.
그리고 중학교 때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옆 부동산 사장님이랑 들어간 단지는 처음 가보는 곳이니
어떤가 궁금은 했지만 다른 집이랑 별반 다르진 않겠지 싶어
기대는 없었는데, 응? 구조가 달라서 그런지 괜찮은 거야.
아니 솔직히 말해 좋은 거야.
다만, 아파트라 전세가가 저렴하지 않아서 걸리긴 했지만
그때 본능적으로 이젠 이곳 아님 없을 거 같더라고-
당신과 상의가 필요하다는 나의 말에 사장님은 진실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곧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보러 온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이 미리 가계약 걸어버리면 바로 나간다고 하면서 집이 좋아 아마 바로 나가버릴 거라고 하더라고.
그 말에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겠더라고..
지금 이곳에서 나가버리면 희망이 끝날 거 같아서.
다행히 내가 좋으면 하라던 당신의 빠른 결단에 우리가 먼저 가계약을 걸었고 그렇게 우린 우리의 두 번째 집, 이곳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게 되었지.
월세 단칸방에서 빌라, 빌라에서 아파트 점점 발전하며 나아온 우리의 모습.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나는 마음이 안 좋았어 처음에는 그렇게 많이 느끼지는 못했는데 이삿짐을 올리고 보니 가져온 짐이 너무 많았고 새로운 이곳에 도저히 들어갈 공간이 없었잖아. 그제야 집이 좁아졌다는 게 실감 났지
반면에 당신은 처음 이곳 아파트로 이사 오고 정리도 안 돼 복잡스러운 곳에 앉아 감격스럽다는 듯 사실 아파트에 처음 살아본다고 말해왔던 거 기억해? 그 말이 나에겐 정말 순수하고도 행복한 고백으로 들려왔고 발전하며 살고 있다고 느껴져서 좋다는 당신의 그 말이 참 좋았어.
재계약에 재계약
사실 나는 우리가 이곳에서 이렇게 오래 살지는 몰랐어
벌써 6년째 살아가고 있네. 그리고 우린 이제 이사를 생각하는 시점이고. 또 다른 새로운 울타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전에 울타리를 찾아 나설 때가 생각이 많이나
그때도 지금처럼 많이 걱정스럽고 막연해서 두려웠거든
우리가 갈 곳이 있을까
우리에게 맞는 곳이 있을까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이 있을까 하며 말이야
서로 마음만큼 깊고 무겁게는 말하지 않지만 서로 느끼고 알고 있잖아 상당히 걱정스럽고 머릿속에 집에 대한 걱정뿐이라는 거. 근데 이것도 알고 있잖아.
우리에겐 분명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의 길이 주어질 거라는 거
얇은 점선들이 우리를 분명히 이어갈 것이라는 걸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