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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무한 지지자

by 은조

그때 나는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을 때였어

매일 당신이 집에 오기만을 기다리며 당신과 함께 하지 못하는 평일은 나에게 아무 의미 없다 생각되면서 어느 순간

주말이 되기만을 기다렸지-


하지만 막상 주말이 되면 피곤해 누워있고 싶은 당신과 반대로 그날만을 기다렸던 나로선 누워만 있는 그 1분 1초가 아까워 잦은 대립이 이어지곤 했지.


이런 나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할 기회가 생겼어


맞아, 이날도 주말이지

저녁, 당신은 아들과 함께 고기를 사 온다며 나갔다 왔고

돌아와서 봉지에서 고기를 꺼내며 아주 뜬금없이 나에게 말했어. 당신 피부미용 자격증 배워볼래?

응? 무슨 피부미용이야 하며 한 귀로 듣고 흘렸던 그 자격증이 그렇게 나의 정신을 빼놓을 줄이야. 그땐 몰랐지


짧게만 느껴지는 주말이 지나고 아주 지극히 아이들이랑만 함께하는 평일의 일상을 보내는데 당신이 또다시 뜬금없이 문자를 보내왔어. 피부미용 배워볼래? 배워봐-


이때는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의 느낌이었달까? 그리고 마침 타이밍이 좋았던 건 뭔가 집에서만 같은 일을 매일 반복하고 있는 나 자신이 되게 무료하고 무의미하다고 느낀 순간이었거든. 그러니 나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는 하나도 모른 채 선뜻하겠다는 답장을 보냈지.


그리고 또, 타이밍이 맞았던 게 당시 옆에 친정엄마가 있어서 내가 자격증 실기 배우러 갈 때 아이들을 봐줄 수 있었잖아. 집에서 이수역까지 다니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나만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그것을 하기 위해 나를 가꾸고 움직이는 그 자체가 신나더라고.

혼자 외출하고 다시 돌아오고 돌아와서 연습하고, 그때까진 마냥 좋기만 했던 거 같아. 한 치 앞도 모르고


하지만 실기가 쉽지 않더라고. 원래 내가 뭐 시험 보고 한 번에 척척 붙는 운이 좋은 스타일이 아닌 터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피부미용 실기 시험을 보기 위해선 매번 기준에 맞는 모델도 준비되어야 하고 많은 수건에 여러 도구까지-


짐도 한가득이라 한번 시험 볼 때마다 장난이 아닌데 나는

그걸 무려 세 번이나 했잖아.

그 세 번! 전부 엄마랑 함께 짝이 되어서 말이야-


나중에 세 번째 갔을 땐 우리 엄마가 주변 모델들에게 시험 화장 한 번에 통과되는 비법을 전수해 주고 있더라니까?! 그 모습을 마주하니 웃기면서도 미안하고 고맙고 막 그랬어. 그 감정을 담아 뻔뻔하게? 떨어졌던 경험을 살려 열심히 했더니 정말 다행히도 세 번째 만에 합격할 수 있었어. 당신 생각해도 눈물이 앞을 가리네 아주 그냥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이런저런 자격증이 좀 있잖아?

근데 취득하고 제일 기뻤던 건 피부미용 자격증이랑

운전면허증이라고 하면 어떤 감정인지 알까?!


암튼, 합격하고 너무 기뻤어.

또다시 그 바리바리 가방을 싸들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다 끝냈다는 것에 너무 행복했거든


그 후에 당신이 나중에 말해줬잖아.

나한테 이 자격증을 따라고 권유했던 이유가 그때 시장으로 고기 사러 갔을 때 자격증 취득 후 피부숍을 차려서 하고 계시던 아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고기를 엄청 많이 사가셨다고-


그래서 피부숍하면 돈 많이 버는 거 같았다면서 말이야

농담반 진담반 웃으며- 근데 고기 왕창 사가시는 그분이

자격증 이야기 하니 솔직히 진심으로 혹해서 나한테 권한 거 같은데 맞지?


자격증 드디어 합격했다는 소식을 시어머님께 전했을 때

어머님은 축하한다고 하시곤 1초도 쉬지 않고 바로 덧붙여서 말씀하셨지. 절대 피부숍 같은 거 함부로 차리면 안 된다고 절대! 절대로


그 말이 무섭게 당신은 대출까지 받아서 나에게 샵을 차려

주었잖아. 정말 무한지지를 해주었지.

서너 달 배운 나에게 한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경험해 보라며 나만의 공간을 차려주다니 정말 고마웠지


작지만 나의 공간이 생겼다는 현실이 너무 좋았어.

내 공간의 간판이 올라가던 그 상황, 절대 잊지 못해

너무 좋아서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던 그날, 그 순간을


비록 그 샵은 코로나를 버티지 못하고 막을 내렸지만

당신은 그 마저도 헛된 것이 아니라며 돈 주고 해 봄으로써 경험을 배우고 쌓은 거라고 나를 위로해 주고 인정해 주었지



근데 당신 말이 맞아. 나 정말 그때 많은 것을 배웠어

당시엔 알지 못했지만 지나면 지날수록 그때의 경험들이 현실을 살아가며 겹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서 알겠더라고


내가 이제야 알 거 같다고 말할 때에도 당신은 단 한 번도

이제 알아서 뭐 하냐는듯한 원망의 조각이 느껴지는 듯한

뉘앙스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그 경험을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쌓아줬으니 당신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어.


분명 외적으로 보이는 멋진 성공은 아니었지만 내적으로는 아주 완벽한 내공을 얻었으니 훌륭한 성공을 이루었다고 이 깊은 성공은 당신의 무한 지지 덕분이라고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


그때만을 생각하면 아직도 여전히 앞으로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뿌듯함과 황홀함을 알게 해 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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