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듯 안정되지 않은 듯 딱 그때 우리의 상태였지
울타리는 이루었지만 제대로 된 인정 따윈 없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던 가족이라는
모습으로 보이던 덜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모습
사실 어렸을 때부터 결혼은 빨리 하고 싶었는데 결혼식에
대한 로망 따윈 하나도 없었어-
막 샤랄라 드레스고 뭐고 반짝반짝 왕관이고 휘황찬란한
화장 놀이의 그런 것에 대한 꿈 말이야
더군다나 아이를 낳고 나니 더욱 결혼식은 남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 지 오래되었지
근데 아들 낳고 6개월이 넘어가기 시작하니 어느 순간부터 친정 엄마가 결혼식 이야기를 꺼내더라고?!
하기 싫어서 이리저리 핑계 대며 미루는데 내 성격을 아는
엄마는 방법을 바꾸기로 선택한 거야-
내가 아닌 당신에게 집중 공략하기로 한 것!
아무래도 장모님의 말이니 버티기도 어기기도 어려웠던
당신은 사부작사부작 알아보더라고. 그렇게 하나씩 이루어져 마침내 우리의 결혼식 날짜가 정해지긴 했지.
아, 막상 정해지고도 내키지 않았어. 원래 날씬한 몸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이 이리저리 나오는 몸은 아니었는데 더군다나 두꺼워진 몸통과 꽉 차는 팔뚝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어-
웨딩촬영하는 내내 어찌나 신경 쓰이던지 원래 사진 찍는 것도 싫어하는데 말이야 그래도 사진은 보정이라는 기술이 있으니 어느 정도 볼만하게 변화시켜 주긴 했지만,
실제 결혼식에선 정말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일들만
가득했지-
우리의 결혼식이 분가가 이루어진 다음이었으니 말이야
대면대면이라고 하는 건 애교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있었다 갔다고 해야 하나? 시댁 식구 누구도 내가 앉아있는 신부 대기실에 한 번을 들어오지 않으셨으니 말이야 그러다 보니 당연히 남은 사진도 한 장 없거니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는 사람도 없었지.
이게 결혼식인지 초상집인지 헷갈릴 정도로 암울했지
심지어 시누이 가족들이랑 우리 친정 식구 들이랑 같은 엘리베이터를 탓타는거야 그래서 엄마가 먼저 인사를 건네었다는데 그 인사마저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는데 내가 더 이상 무슨 말과 무슨 행동을 기대하겠어
즐거워야 할 결혼식이 나는 얼른 끝나기만을 바랬어.
얼른 시댁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싶었거든. 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지-
결혼식 순서 중에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부분 있잖아 그때 내가 엄마와 마주 보는데 정말 멈출 수 없는 눈물이 흐르더라고 모든 감정들이 다 담긴 눈물이었지. 그중 기쁨만이 담기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슬픔이었네
그 후로 단 한 번도 결혼식 앨범을 꺼내본 적 없어
그건 절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고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감정의 과거들이 딱 박혀있는 모습들만 담겨있거든
마음 같아선 불태워 없애 버리고 싶어 정말.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우리 아들 처음 임신 테스트기로 했을 때 처음 알았던 그 날짜와 같은 거 알아?
그걸 기억해 내면서부턴 결혼기념일을 조금은 좋아해 보려고 하고 있어.
그래서 결혼식을 올리고 5주년이 지나고부턴 10주년이 되면 정말 즐겁게 우리 스타일대로 리마인드웨딩을 해서 기억을 바꿔볼까? 도 생각해 봤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네 벌써 10주년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래도 그때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평생 하지 못했을 거라는 건 확실해. 그렇지만 나쁜 기억은 없었겠지? 하지만 그때 하지 않았으면 해보지 못했다는 것에 결핍을 느끼고
아쉬워했을 거라는 것도 확실해. 역시 인생에서 모든 면이
다 완벽할 순 없고 다 만족할 순 없는 건가 봐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