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지금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야
근데 있잖아, 드라마에서 이혼하거나 남편을 잃거나 막 시댁에서나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앉는 여자들이 아이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들어가는 설정 그거, 그냥 짜인 거 절대 아니다? 정말 그거 현실에서 나온 진짜더라고
특히, 평소에 때려죽여도 가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일지라도 달린 자식이 있다면 그것도
갓난쟁이가 있다면 다른 거 따윈 볼 것도 따질 것도 없이 체면이고 뭐고 나발이고 굽히고 들어가게 되어 있더라고..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보니 확실히 알겠더라고
당신 알잖아, 내가 친정? 아닌 친정 정말 싫어하는 거
엄마가 재혼해서 새아빠랑 그 딸들이 살고 있는 그 집 말이야
그곳이 싫어 스무 살 때부터 원룸 얻어 나와 살았던 사람이잖아. 새아빠라는 그 사람 그림자도 밟기 싫어 한 동네 살면서 어떻게 해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며 가까운 거리도 꼭 돌아서 다니고 비슷한 말만 나와도 치를 떨며 기피하던 사람이라는 거.
근데 그 밤에 그렇게 애를 안고 도망치듯 나와 연락할 곳은 엄마밖에 없더라.. 당신은 아버님 막 진정시키고 말리고 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땐 당신에게서도 벗어나고 싶기도 했어.. 미웠나 봐
그래서 바로 엄마에게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감추지 못하고
전화하니 다행히 집으로 오라고 해주더라고..
또 거리가 좀 가까워? 걸어서 15분?
울면서 가니 다들 놀란 눈치고 싫은 기색은 애써 보이지 않으려고 해 주니 그땐 그래도 진심으로 고맙더라고
평소엔 그렇게 치를 떨며 싫다고 난리 치던 나지만 그래도
우리 애가 편히 누워 있을 곳이 있고 그 밤에 가족이라며 친정이라며 받아주는 곳이 있으니 너무 고맙고 다행이면서 이만한 곳이 없다 싶더라니까?
그땐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을 때라 그랬겠지만 정말
가족이 이런 건가 싶은 생각이 순간 들기도 했어
정말 오갈 곳 없을 때 가장 힘들 때 밑바닥에 떨어져 나자빠져 있을 때 도와주고 받아주는 그곳이 어쩌면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을 수 있겠구나 싶더라니까
그러니 혼란스럽더라고
그리고 나 스스로가 너무 간신배 같았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건 충분히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내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모양 같더라고 나 아쉬울 때만 빌빌 붙어대는 그런 모습이 말이야
거기서 최선을 얼른 나와야 했어, 그 상황을 벗어나야 했어
물론 그들도 내가 있는 걸 좋아만 하는 눈치도 아니었고
나도 아주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젠 진짜 우리 집이 필요해졌어.
우리만의 집, 우리의 울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