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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Nov 06. 2024

전쟁의 시작 2

[8] 막장 혹은 끝장

그날부터였지-

집안의 찬바람이 쌩쌩 불던 시작이

어머님은 아침에 출근하시고, 당신도 출근하고

집안에 남은 사람은 나와 갓난쟁이 아들, 아버님 이렇게 셋


화가 나신 와중에도 아버님은 나와 아들을 배려하신다며

낮에는 방에서 나오시지 않으셨어 더욱 죄송하게도

그때 나의 최선은 오전에 일들을 다 해놓는 거였어

집안일을 해결해 놓고 점심 겸 저녁을 후다닥 먹고 저녁과

새벽을 버틸 아들 분유 물을 보온병에 미리 가득히 채워놓고

목욕까지 미리 씻겨 놓고 말이야. 절대 나가지 않게끔


그렇게 어머님이 오실 때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왔고 방 문 소리에 맞춰 아버님은 방에서 나오시고.. 뭐 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렇게 일주일 넘게 생활을 하고 나니 당황스러운 마음들도 그런 생활들이 지속되니 오히려 평온하다고까지 착각이 들었을 정도로 그 안에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던 중이었어


대단한 착각이었지만. 그날도 그런 착각하던 날 중 하루였어

나는 방에 있었고 어머님이 퇴근하시고 들어 오시는 소리를 방 안에서 듣고 있었어. 그러면서 조용히 아들을 보며 있는데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리는 거야


바로 아버님이 나를 부르시는 소리였어.

처음엔 잘못 들었나? 싶어 가만히 있었어 더욱 숨을 죽이며..

근데 곧이어 다시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번엔  

어머님께서도 나를 부르시는 거야..

나를 부르는 그 소리에 바로 눈물이 맺히더라?!


뭔가 이제야 사람 취급받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갔어, 그것 또한 착각이었지

눈앞에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이었어.

식탁 위엔 이전엔 못 보던 것들이 놓여 있었거든


초록색 유리병들이 있었어.. 맞아, 병이 아니라 병들이었어.

분명 그건 소주병인데 한병도 아니고 무려 세병이 놓여 있던 거야. 그동안 아버님이 그렇게 술을 드시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었기에 너무 놀랐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


그만큼 드셨으면 취하 실 법도 하신데 오히려 아버님의 두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또렷하고 선명하셨어 분명히

그 진하고 강한 두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시며 내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시며 말씀하셨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인신공격과 집안 공격으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악몽의 순간들이었어

눈물을 펑펑 흘렀어. 그 순간도 마찬가지로 도망가고 싶었어 그리고 당신이 미웠어 왜 또 이런 순간을 나 혼자 감당하게 만드냐고 소리치고 욕하고 싶었지-


쉬지 않고 흐르는 눈물 속에서 아버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어. 본인이 이렇게 말하는 거 평생 잊히지 않을 거라고 마음에 대못으로 박힐 거라고 근데 본인 또한 이번에 그렇게 박혔다고 하시며 왜 본인 아들 힘들게 하냐며  그다음부턴 더욱 기억하고도 싶지 않을 정도로 너무 끔찍한 폭풍의 순간들이었지


어머님이 아버님 말리는 사이에 방으로 도망 와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어. 그래도 의지할 사람이 당신뿐이잖아 나에겐.

연결음이 가는데 어느새 방으로 들어오신 어머님이 일하는 사람한테 전화 걸지 말라고 하시며 끊으라고 하셨지 그렇게 끝내 연결되지 않고 끊겨버렸어. 절망스러웠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이 들더라


근데 그때 기적과도 같게 당신이 왔어.

그 끊긴 전화를 보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어.

그래서 당신은 바로 집으로 왔다고 했지. 당신이 오고 그

정신없는 틈을 타서 정말 아들만 들쳐 매고 그 집을 나왔어


그게 그 집에서 마지막 순간이 되어버렸지.

나는 분명 분가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런 식의 분가를 원하던 건 아니었는데 말이야.. 내 순서가 잘못되어서 그랬던 걸까

그런 선택들로 인해 서로를 할퀴고 상처 주고 엉망이 되어서 이렇게 했어야만 끝을 낼 수 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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