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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비행기 타고 가요

by 은조

장마가 한창이던 그 덥디 더운 여름날.

난 갑작스레 백수가 되었지.

거기다 긴긴 여름 방학을 시작한 아이들

당신은 이때가 딱! 기회라고 하며 지금이야 말고 이때껏

미루고 미루던 계획을 진행시키라고 했지-


여름휴가라고 하기엔 좀 이른 감이 있었지만 뭐 어때?

누가 휴가는 이때 가는 거야~ 하고 정해 논건 없잖아?

그래서 우린 여름휴가를 떠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지


당신은 이왕 가는 거 조금 멀리 해외로 가보자고 했지만

솔직히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은 나는 일단 아이들도 첫 비행인 만큼 가까운 제주도로 가자고 했잖아. 내 의견 따라줘서 고마워.


아이들은 제주도고 어딘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 오직!

처음으로 비로소 비행기를 탄다는 것에 마냥 들떠있었을 뿐

날짜가 정해지고 매일 디데이를 세면서 설레어하던 아이들의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해. 그렇지? 그거 보는 맛에 지냈는데 거기다 수영장 있는 곳으로 간다고 하니 기대감이 더해져

매일 아주 난리도 아니었잖아-


근데 그거 알아? 나도 애들만큼이나 신나 있었다는 거?!

물론, 나는 비행기를 타서는 아니었고 다른 생각 없이 여유롭게 가족들과 여행을 간다는 것에 설레었던 것 같아

거기다 아이들을 핑계 삼아 내가 가보고 싶었던 신라호텔을 예약해 둔 것도 있었고 말이야.


날짜가 애매했기에 다른 때보단 저렴했지만 그래도 비용이 만만치 않았는데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던 당신, 그것도

참 고마웠어.


그래서 우린 큰 트러블 없이 날짜, 숙소, 계획을 세웠고 출발할 수 있었지. 집에서 출발, 비행기 연착이 있었지만 이륙과 착륙할 때 아이들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설렘이

잠깐의 힘든 우리의 마음을 벅참으로 바꿔주었지.


근데 문제는 그다음이었어.


장마가 시작된다는 말은 듣고 오긴 왔지만 제주도 공항에

도착하고부터 비가 심상치 않게 오기 시작하더라?

우린 렌터카를 빌리지 않기로 했기에 공항에서 택시를 잡고 호텔 쪽으로 들어가기 위해 달리는데 안개에 뒤덮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야 속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는 거야 무서웠어.


정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기사님은 계속 달리시니까 걱정될 수밖에 우리의 할 수 있는 최선은 안전벨트를 꽉 부여잡는 것일 뿐-


그렇게 달리면서 드는 생각이 아, 정말 살고 싶구나.

죽고 싶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나 자신이 웃기더라고 거기다 그 와중에 당신과 점심을 어디로 먹으러 갈지 고민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더 웃겼고 말이야


다행히 숙소 들어가는 방향에 우리의 목적지가 있었고 드디어 빗속에 내려 음식점에 들어가 갈치회랑 막걸리랑 이것저것 먹으니 살 거 같더라? 다 먹고 난 뒤에도 비는 계속해서 내렸지만 술기운이 돌았는지 그 뒤부터는 두렵지는 않더라고


그 음식점에서 멀지 않게 신라호텔이 있었고 타이밍 좋게 체크인해서 룸에 들어갔는데 얼마나 좋던지. 아이들은 바로

수영장 가자고 그랬고 일분일초를 알차게 쓰고 싶던 우리도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을 즐기러 갔지.


딸아이는 원래 물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즐길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반전은 아들이었잖아. 겁이 그렇게 많았던 작년과는 달리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고 킥판과 튜브를 이용해 자유롭게 노는 모습을 보고 내가 헛것을 보나 싶었다니까?


그렇게 네 가족이 신나게 노느라 수영장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는 게 아쉽지만 그만큼 즐겼으면 됐다 싶어

정말 우리 호텔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먹고 놀고 하며 알차고 보람차게 즐기고 왔잖아 그렇지?


그리고 더욱 뜻밖인 건 전혀 예상치 못하게 당신이 그곳에서 매너적인 것? 서비스업의 발전된 모습? 배울 것들을 많이 보고 느껴서 돌아온 후, 다양하게 도전하고 바꿔나가야겠다고 말했잖아?!


그러더니 정말 순식간에 바로바로 도전하고 바꿔나가는 당신의 모습에 깜짝 놀랐고 그런 모습 본받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 사람이 똑같은 자리에 안정적으로 있다고 해서 계속 같은 방식으로만 눌러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며 말이야


사실 딱, 제주공항 내리고 비가 억수같이 내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 순간 후회했어 괜히 왔나. 그리고 공항 가까이 있는 숙소를 잡을걸 괜히 1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잡아서

이런 불안함을 느껴야 하는 건가 하면서 말이야


근데 당신이 다녀오고 나서 말했어

이번에 제주도, 신라호텔 다녀오길 너무 잘했다고-

다녀오기 전과 후의 마인드와 생각하는 방식들이 아주 많이 바뀌었다는 그 말을 듣고 나선 후회 따윈 깔끔히 다 사라졌지


사진 최대한 많이 찍는다고 찍었는데도 찍어놓은 사진들 보면 몇 장 없는 거 같고 괜히 막 그러네. 사진 꺼내 먹으며 그날들을 기억하고 그 순간들을 떠올리며 추억하는 거라 아쉬운 걸까?! 아, 너무 완벽했고 너무 좋았는데 그렇지.


야금야금 꺼내먹는 추억여행 끝났나 봐

너무 그립고 너무 생각난다. 우리의 제주도 우리의 그날이


그러니 다시 그런 추억을 만들러 떠날 때가 되었나 봐

이젠 마음에 준비 제대로 해서 한번 조금 멀리 떠나보자

얼마 남지 않은 나의 휴식기. 마무리를 천천히 해보자 우리

서로 다시 평상시의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그래도 잘 놀았다 알차게 보냈다 생각 들게, 그렇게 다시 한번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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