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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괜찮지 않던 날

by 은조

당신, 우리 아이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혹시 뭔지 알아?

아빠는 맨날 괜찮대-


한날은 아들이 당신과 있다가 길에서 넘어졌나? 다리랑 손바닥이랑 은근히 많이 까져서 왔더라고. 넘어졌다는 이야기는

이미 전화로 들은 상태였지만 너무나 덤덤한 당신 목소리에 살짝 하얗게만 스친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서 실제로 보니 들었던 느낌과는 전혀 달랐던 거야 그래서 아들에게 물었어. 아프지 않았냐고-


아들이 그때 서러움을 토해내면 말하더라? 아팠다고

근데 아빠는 괜찮대. 아니 내가 아픈데 아빠는 맨날 괜찮대-

맞아. 그러고 보면 당신은 애들에게도 나에게도 그렇게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한다?


물론, 내가 당신에 비하면 조금 오버스러운 면이 있고 과장하는 면이 크긴 한 거 인정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당신은 너무 무딘 느낌이야. 그러니 가끔은 나도 당신의 작은 반응에 서운할 때가 적지 않게 발생하는데 여린 아이들은 얼마나 더 그렇겠어.


그럼 또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지-

여린 거 아니야. 괜찮아, 그 정도는 괜찮은 거야


그런 당신에게 그날은 괜찮지 않은 날이었지

갑작스레 알게 된 아들의 서혜부 탈장소식, 다행히 그것도

당신이 같이 샤워를 하면서 발견했고 바로 병원을 데리고 갔더니 발견이 쉽지 않은데 빨리 잘 왔다는 의사 선생님의 칭찬소견과 함께 의뢰서를 받아 대학병원으로 빠르게 갔기에 후다닥 진행할 수 있던 거였어


미안하게도 나는 일을 해야 하는 상태였기에 따라가지 못했는데 그때 아들 옆에 당신이 있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나 또한 수술 당일 아침부터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는데 병원복 입고 주사 꼽고 입원 준비하는 등 아들의 여러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준 당신 덕분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고 무사히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


당일 퇴원이 가능한 수술이라 저녁즈음 당신이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고 전신마취에서 깬 아들은 배가 아프다고 울먹이며 걸어오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네.


살살 달래 미리 포장해 온 죽을 조금씩 먹이고 하루종일 힘들고 지쳤을 아들을 재우고 옆에서 알게 모르게 신경 썼을 딸아이도 굿 나잇 인사를 해준 뒤에야 아들 데려다주고 다시 일하러 나간 당신이 떠올랐어. 이놈의 정신머리


그제야 하루종일 고생했다는 문자를 날리고 널브러진 집정리를 하고 당신을 기다렸지. 피곤했을 텐데 다행히 그날 당신이 평소보다 빨리 왔고 수술 이야기랑 그날의 하루 일상을 말하는데 당신의 눈에 물이 고이기 시작하는데 깜짝 놀랐어


그렇게 강하게 어떤 순간이든 버티는 사람이, 뭐든 괜찮다고 괜찮은 거라고 말하고 생각하며 꿋꿋이 견뎌내는 사람이

아들 수술 들어가기 전 마취 약이 들어가고 3-2-1 하는 순간

팍 눈감고 쓰러지는 잠이 드는 그 순간을 말하는데 꼭 죽는 것만 같아서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다신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라고 했지


너무 싫다고 하면서 말이야.

당신의 눈물은 아버님의 장례식장에서 딱 한번 보고 보지 못했었는데 그 순간 마주하게 되니 느껴지더라고

당신도 매번 괜찮지 않은 순간들이 많았는데 정말 악으로 깡으로 버텨내며 살아왔구나, 그래서 괜찮아야 했던 거였구나


이번에도 즐겁게 고기 외식 하던 중

아들이 손을 잠깐 내린 그 순간 아, 뜨거를 외쳤는데

정말 짧은 순간에 데었고 작지만 물집이 확 잡혔잖아

역시나 이번에도 당신은 그 정도는 괜찮아라고 말했고

아들도 면역이 되었는지 이 정도는 괜찮다고 그러더라?


말로는 그러면서도 약 잘 발라줬는지 혹시 터질지 모르니

밴드 가방에 챙겨주라고 알겠다고 했음에도 몇 번이나 확인하던 당신 문자에 서운하지 않고 이번에는 알 수 있었어

당신 마음이 괜찮지 않구나-


수술할 일이 있으면 절대 안 되지만 혹시나 있어도 다신 본인이 가지 않겠다는 당신.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며 말했지

근데 나도 볼 수 없는데 어떡해?! 그러니 뭐니 뭐니 해도 우리 가족 무조건 건강, 건강, 건강하자.


몸도 마음도 건강하자.

근데 마음이 건강하려면 괜찮지 않을 땐 그냥 그대로

때론 괜찮지 않음을 감추지 않고 내색해도 괜찮아.

대부분의 나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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