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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원래 자야 하는 사람

by 은조

처음 당신을 같이 살게 되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부분이

바로 수면, 잠이었던 거 같아.

그리고 어머님한테 매일 한소리 듣던 부분도 같은 이유였지?

평일엔 거의 집에 없다고 봐야 하는 당신이기에 나는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인 주말만 바라보며 살아가던 때였어


거기다 나는 원래부터 저녁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스타일이기에 어김없이 아침 7시면 눈이 떠져버리고 말았지 뭐야.


처음부터 당신을 무작정 깨우기만 했던 건 아니었어

곤히 잠들어 있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조용히 까치발 들어 방문을 조용히 돌리고 나가기도 했고 거실 밖에 나가서도 말도 조용조용히 하며 분위기를 만들어 갔는데 이게 어느 순간 되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오전 11시가 넘어가고 12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말이야. 그때부턴 나도 참지 못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당신 곁에 앉아 일어나, 일어나하는 나의 중얼거림이 당신의 귓가에 울림으로 퍼졌지-


그럼 당신은 눈을 뜨고 억지로 억지로 일어나긴 일어났어

그리곤 어머님 아버님 다 있는 거실로 나와서 말했지

- 아, 자야 하는데 옆에서 계속 깨워서 잠도 못 잤네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나면 어머님은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나에게 절대 깨우지 말라고 원래 당신은 자야 하는 사람이라며 나에게 뭐라고 하시곤 하셨지-


그 후부턴 눈치 보이니깐 나는 당신을 깨울 수 없었고 그러니 나는 당신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던 거야. 당신은 그렇게 어머님을 등에 업고 아주 신나게 실컷 전날 펑펑 늦게 자다가 늦게 일어나는 일상을 반복했잖아. 얄미워 죽는 줄 알았네


그러니 내가 분가를 하고 싶었겠어? 안 하고 싶었겠어?

어후, 다시 생각해도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네


오후 늦게서야 꿈쩍꿈쩍 일어난 당신은 누가 봐도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 언짢아 보이는 나에게 나갈 준비를 하라고 했고

그제야 같이 밖에 나가 걷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데이트 다운 데이트를 하곤 했지-


그러니 내가 버티고 살았구나 생각이 드네.

난 내가 착해서 참고 살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당신도 나름 이벤트가 있었고 노력이 있긴 있었구나?


조금 더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지. 불면증이 워낙 심한 사람이라 저녁, 같은 시간에 누워도 밤새 뒤척이며 쉽게 잠에 들지 못했던 거였고 그러니 수면의 질이 좋지 않기에 항상 피곤함을 달고 살아야 했던 거라는 것을.


분가로 자유로움이 찾아와 한동안 잠잠하던 그 서운함이 말이야 아이들이 클수록 서운함이 다시 생겨나기 시작하더라?! 이유인즉, 아이들이 크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주말이면 조금 더 빨리 일어나서 어디도 가고 나가고 돌아다니고 싶잖아?!


하지만 그런 내 마음과는 달리, 당신은 여전히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러면서 다시 우린 많이 싸우기도 싸우게 되고 또다시 반복되는 문제지만 쉽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그럴수록 서로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포기가 답일까? 생각해 보았어.


더군다나 주변에서 아빠는 뭐 하니? 물어보면 늘 아이들은 누워계세요- 그 대답이 참으로 웃기기도 슬프기도 화나기도 한다? 정말 포기가 답일까?


그렇게 말하면 당신이 꼭 하는 말 있잖아?

당신도 내 나이 돼 봐라 이렇게 못 일어날 거다-

과연 그럴까?


같이 산지 10년이 넘어가면서 포기의 단계를 넘어서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어 고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아버렸거든.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알았으니 다행이지

그냥 당신은 당신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야


그러던 이번 일요일, 내가 우리 다 같이 주일 예배를 가자고 했던 거 기억나? 나는 당신이 당연히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흔쾌히 간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도 솔직히 속으로는 백 프로 믿지 못했어.

당연히 주말이고, 아침시간이라 못 일어날 거라 생각했거든

그렇게 당일이 되었고 역시나 시간이 흘러가는데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고, 포기하려는 즈음 당신이 어물쩍

일어나긴 하더라? 속으로는 답답해 미치겠지만 일어난 게 어딘가 싶어서 기다렸지? 일어나서 씻더라고 기다렸지.

그렇게 결국 좀 늦었지만 우린 다 같이 나올 수 있었어


와, 무슨 일인가 싶고 너무 기분이 좋았어.

중간에 일이 좀 있긴 했지만 당신과 같이 교회를 다녀오고 난 뒤에 그날은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그냥 모든 것들이 다 좋았어. 당신이 그 이른 아침에 일어났고 약속대로 같이 다녀왔고 무엇보다 그 약속을 지키려고 엄청난 노력을 해주었다는 것에 말이야. 그래서 너무 오버했나 봐..


암튼 내가 지금껏 상처받고 속고생했던 것들이 싹 날아가고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어. 미안해. 난 당신이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욱 매번 화가 나고 기대 조차를 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며 당신의 진심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거 같아서 말이야.


이번에 정말 진실을 알게 되었어.

이젠 혹시 당신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예전처럼 비난하고 탓하지 원망하지 않을 거야.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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