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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당신에게 전해 보는 마음

by 은조

TO. 늘 한결같이 내 남편에게


안녕? 당신에게 정말 오랜만에 쓰는 편지라 그런지 아니면 유독 더 진심 담아 쓰고 싶어서 그런 건지 처음부터 무슨 말을 써야 좋을지 잘 모르겠네. 그렇게 수없이 머리로 편지에 쓸 내용들을 떠올려 봤는데도 말이야


그만큼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서 정리가 잘 되지 않나 봐. 그러니 이렇게 편지를 쓰고자 생각했던 이유인

우리의 결혼 10주년을 축하하며 시작해 볼게.


뻔한 말이지만 정말 벌써 우리가 10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이했다는 게 믿기긴 하지만 너무 신기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언제 10주년이 될까?! 너무 먼 미래라 올 거라 느끼지 못했는데 하루하루 그냥 주어지는 대로 착실히 살아가다 보니 역시나 세월을 흘렀고 이런 날이 오긴 왔네


근데 마음이 뭔가 좀 이상해. 먼 미래를 생각하며 꿈꿔왔던

우리의 모습이랑은 다른 거 같아서-

오빠가 그랬잖아. 결혼식이 끔찍했다는 나의 말에 10주년엔 좋아하는 사람들만 불러서 정말 행복하게 파티 한번 하자고. 그땐 그렇게 말하고 생각했던 일들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러지도 못했으니 말이야.


이런 나의 말에 15주년으로 계획을 5년 미루자고 했지.

처음엔 서운한 감이 없진 않았는데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였고 그냥 우리가 처음 만났을 그때부터 1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까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고 더욱 잘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마음이 커졌다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어.


내가 자주 하는 말 있잖아. 오빠는 내 모든 힘들었던 순간에 대한 보상이라고. 그때 오빠가 그럼 나는? 무슨 잘못..

농담을 해서 내 기분이 많이 잡쳤던 순간이 갑자기 생각나네


암튼, 정말 나는 오빠를 만나면서 그런 감정을 느꼈고 모든 보상에 완전체는 우리 아이들을 다 만나고 나서 알게 되었지 너무 부족한 나에게 아낌없이 사랑해 주고 함께해 주는 우리 가족들 죽음에 미련이 없던 나에게 정말 잘 살아가고 싶게 만들어준 우리 가족들. 너무 소중해


환경이 그러다 보니 가족의 중요성 따윈 잘 느끼지 못했고

어떻게든 그 안에서 벗어나려고만 허우적거렸던 날들을 많이 떠올랐어.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만큼은 절대 그 결핍을 느끼게 않게 해 주고자 다짐하기도 했지.


근데 가족이라는 게 매일이 행복할 수만은 없잖아?!

최근에 내가 아들과의 문제로 너무 속상해하고 좌절했을 때

당신의 한마디 한마디가 진심으로 나에게 따뜻하게 다가왔고 많은 위로가 되어주었어.


그러니 우리 엄마가 생각나더라?

남편도 없이 사춘기 심한 아들, 딸 혼자 울고불고 다투고 힘든 감정들을 담아내고 견뎌냈을 우리 엄마가 짠해졌어


많이는 아니지만 여전히 가끔 싸우기도 싸우고 서로에게

화도내고 화도 나고 오해하고 오해받는 마음이 다른 일들이

생기며 트러블이 생기기도 하지만 난 알고 있어

그렇지만 이제 우린 서로 아주 큰 웅덩이에 서로의 시간을 가득 담아 놨음을. 그러니 쉽게 닫히지도 쉽게 파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10주년이니 뭔가 더욱 특별하고 큰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뭘 해야 그렇게 보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흔히들 여행이다 뭐다 하는 그런 걸 떠올려 보기도 했지만


그것들 보다 그냥 이렇게 평상시와 같이 하루를 함께 시작하고 탄탄히 그날의 순간들을 보내고 따뜻한 집에서 저녁에 무사히 만나 하루를 함께 마무리하는 것 그것이 가장 평범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이 가장 특별한 것이지 않을까? 싶어졌어


오빠, 우리 아직 아이들이 다 성장하려면 10년 넘게 남았지만 돌아보면 10년 엄청 금방 갔잖아?! 그러니 우리 앞으로의 10년도 지내왔던 듯이 힘들고 기쁘고 슬프고 서러울 때도 그 어떤 때라도 절대 떨어지지 말고 매 순간 함께하며 살아가자


오빠가 말했듯 우리는 흑수 저라 애들한테 남겨줄 땅도 집도 돈도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니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말자.


지금처럼 행복이라는 감정을 심어주고 항상 사랑받고 있음을 부모라는 울타리가 언제든 본인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자.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는 게 가장 크게 성공한 자식농사 아니겠어?!


그렇게 아이들 잘 성장시켜 내고 그다음은 서로에게 집중해서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고 즐겨보자. 그러려면 정말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 한다는 거 알지?!


오빠 절대 아프지 말고 나 두고 먼저 죽지 마

나보다 12살이나 많아서 내가 은근히 걱정이 되는데

나 오빠 없이 살기 싫어 오빠랑 정말 행복하게 닿는 데까지

살아가고 싶어. 그러니까 항상 내 옆에 있어줘.


주절주절 많이 많았는데 내 깊은 진심을 오빠가 느꼈을까 모르겠네.. 원래는 손 편지로 써서 줄까 했는데 뭔가 우연히 오빠가 이 글을 보게 되면 더욱 와닿게 윽-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감정에 초점을 맞춰 이렇게 쓰게 되었어


역시나 이번에도 오빠는 음.. 그렇구나 10주년이구나 이런 느낌으로 지나갈 거라는 걸 뻔히 알고는 있어 그래서 내가 괜히 아, 너무 기대된다며 설레발을 쳐댔던 거라는 것도 알고 있음을 알고 있고 말이야.


오빠의, 우리 가족의 매일이 내 가장 큰 선물이고 감동이기에 굳이 그런 부분은 따지고 들지 않기로 할게.

대신 주말에 우리 맛있는 것들 잔뜩 사 와서 집에서 1차부터 시작해 2,3차 코스요리처럼 쭈르륵해 먹자.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들, 함께하는 순간

그게 가장 큰 이벤트고 그게 가장 큰 설렘이지 뭐겠어


마지막으로 오빠.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정말 하루하루 지날수록 오빠가 더욱 좋아져 가끔은 큰일이다 싶을 정도로 감정들이 마구 뻗어 올라간다? 그러니 어떠한 경우에도 내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항상 내 마음속에 오빠, 우리 애들뿐이라는 거 잊지 말아 줘


또, 나는 누구보다도 우리 가정을 지키고 싶은 사람이라

바람피우거나 사채를 쓴다거나 우리 가정이 깨져야 하는 이유를 만드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할 생각도 해볼 시도 조차의 마음도 없으니 오빠도 절대 도전, 생각조차도 하지 말길 당부할게.


진짜 마지막으로

오빠 가족을 위해 진실되고 진심으로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최고의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 줘서도 너무 고마워. 가끔은 버겁고 다 놓고 싶고 힘들 텐데도

내색 없이 버티고 강하게 우리를 앞.. 앞잡이가 아니라 이끌어줘서 감사해


너는 정말 나한테, 우리한테 너무 귀한 존재란 거 절대 잊지 말고 진심으로 우리의 결혼 10주년 축하해. 지금까지 변덕 심한 나랑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 앞으로도 지금처럼 나를 잘 맞춰주길 바라고 나를 많이 사랑해 주길 바랄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인 널, 제일 사랑해


from. 변덕 심한 아내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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