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용기
새로 이사 간 집에서 우리는 점점 나아지는듯했다. 적어서 내 생각엔- 하지만 정말 그것은 정말 어려서, 세상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내 생각과 마음일 뿐이었다.
나와 8살 차이의 고등학생이 된 오빠의 사춘기는 점점 날이 갈수록 절정을 향해갔지만 우리 집엔 그 감정을 달래 줄 수 있는 남자 어른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그 감정을 공감해 줄 수 있는 너그러운 여유를 품은 엄마도 아니었다.
그러니 엄마와 오빠의 갈등은 하루하루 심해져만 갔다.
얼굴만 보면 싸웠고 아침, 저녁으로 서로 얼굴 찌푸리고 화를 내고 소리소리를 지르는 대화를 하고 있지만 한마디 넘게 말이 오고 가지 못하는 이상한 패턴들이 일상화되어 갔다.
대화의 내용들은 돈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항상 원망하고 탓해야 이야기는 끝이 났다.
오빠는 소리를 지르며 울었고 엄마는 한숨을 쉬고 얼굴을 구기고 상처받고 상처 주는 말들을 해댔다.
그렇게 오빠가 문을 퍽, 닫고 나가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주저앉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럼 나 또한 기다렸다는 듯 우는 엄마 옆에 주저앉아 엄마 울지 마, 엄마 울지 마 반복하며 같이 울어댔다
늘 그런 일상이 이어졌다.
더욱 심한 날이면 엄마는 근처에 살고 있는 작은 외삼촌한테 전화를 걸었고, 몇 시든 작은 외삼촌은 단 한 번도 거절 않고
우리 집으로 바로 달려와 주었다.
삼촌이 오고 나면 그나마 오빠도 엄마도 진정이 되었고 그날은 조금 빨리 집안이 고요해졌다. 작은 외삼촌이 우리 집에 오는 날이 늘어나면서 어느 순간 작은 외숙모가 싫어한다는 걸 느꼈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땐 그렇게 얄밉고 미웠지만
지금은 백번 천 번 이해하게 되었다.
남편이 거의 매일 밤 나가면 싫긴 할 것 같으니까-
엄마는 원형탈모가 시작된걸 미용실에서 알았다고 했다
머리 커트하러 갔는데 미용사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손님 여기 500원짜리 만하게 구멍 두 개 있는 거 아세요?
보통 스스로 볼 수 없는 부분인터라 당연히 엄마도 몰랐고
당시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으니 그 이야기를 듣고 엄마는
놀라지도 않았다고 했다.
병원에 찾아가 그 두 곳에 몇 번이나 주사를 맞고 나서야 머리카락이 자랐다고 엄마는 시간이 지난 후에 아무 일 아니란 듯 담담히 말해주었을 뿐-
엄마가 지금도 모르는 이야기가 있는데 오빠와 나, 둘만의
이야기다. 한 낮이었고 점심을 먹기 위해 라면을 끓이기 위 물을 맞추던 오빠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더니만 갑자기 부엌 밑 문고리에 걸려있는 작은 과도를 꺼내 들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 그걸 지켜보는 나에게 말했다. 죽을 거라고, 죽고 싶다고-
그러지 말라고 하지 말라는 나의 말에도 죽을 거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과도를 배에다 찌르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하는데
옆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울면서 하지 말라고만 하는 순간 오빠도 칼을 놓고 주저앉아 오열을 하며 울기 시작했다.
서로 한참을 울었다. 죽고 싶은데 죽을 용기가 없다고 찌를 용기가 없다고 울부짖으며 죽고 싶다는 그 말만을 하던 오빠. 그런 오빠의 모습을 보며 저 속이 얼마나 엉망일까, 갈기갈기 찢겨 있을까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순간이었다.
오빠의 울음이 그치기 말없이 기다렸다. 혹시나 오빠가 또 칼을 들고 죽는다고 할까 싶어 옆에서 벗어나진 못한 채.
쏟을 만큼 쏟았는지 넋이 나간듯했던 오빠는 짧게 나를 보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나 다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고 우린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아무 말 없이 텔레비전을 만을 바라보며 라면을 먹었고 평상시처럼 엄마가 얼른 퇴근해서 오길 기다렸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오빠가 나에게 따로 말하지 말라고 했던 것도 아니고 서로 누군가에게 말하지 말자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니지만 그냥 말하지 않았다. 그냥 그게 맞는 거 같아서.
그렇게 엄마는 엄마대로, 오빠는 오빠대로 지쳐갔다.
반면, 나는 그냥 모든 것이 좋았다.
집이 무섭지 않으니 조금씩 집에 혼자 있는 도전을 시도해 볼 용기도 생겨났고 주말이면 자고 있지만 내 옆에 엄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그러다가 깨면 라면을 사 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에 신나게 달려가 사 오고 그럼 점심으로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을 같이 먹고 하는 모든 사소하고도 소소한 것들 다 좋았는데 나만 그랬던 것이었다.
그 집에선 나만 행복했던 것이다. 엄마와 오빠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앞으로를 꿈꾸지 않았고 그러면서 가족의 울타리가 심각하게 흔들리게 되었다.
물론 그 이유에 엄마의 재혼도 컸지만 지금까지 연을 끊고 살아가는 데 있어선 그 한 가지 이유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땐 오빠의 용기 없음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까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리며 자기 스스로를 구해내지 않을 것인지, 그 지하에서 빠져나올 용기를 내지 않고 있는 그런 오빠가 밉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꽤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내가 오빠의 입장에서 경험해 보고 느껴보고 겪어보지 못했기에 할 수 있는 오만한 판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미워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보면 분명 헤쳐 나와 나를 만날 때가 올 것을 있을 것이니, 그런 용기를 낼 날이 분명 올 것을 믿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