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물 흐르듯
실업급여 기간, 7개월이라는 세월이 정말 순식간에 흘렀고 끝을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 의도치 않게 실업자가 되었을 그때 그 마음과 뜻은 다르지만 기분이 크게 다르지가 않다. 씁쓸하면서도 개운치 않고 불안하면서도 쉬는 타이밍이 생겨 좋았던 그 순간의 감정은 그다지 기분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안정이 사라지고 걱정과 함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고 낯선 환경 속 다시 처음부터 적응해 나가야 하는 이 상황이 말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이러한 변화는 반가울 수 없었었다. 면접을 본다는 말과 함께 출근 날짜가 정해지고 부턴하루가 가기 무섭게 딸아이는 가만히 있다가도 슬퍼하고 가지 말라며 애처롭게 이야기를 전했다.
나만큼이나 문득문득 떠오르는 감정을 감당하기 쉽지 않은 듯하다. 뭐, 아들은 아무 감흥 없어 보이긴 하지만
이번엔 정말 운이 좋게 순서의 흐름이 내 마음처럼 잘 따라가 주었다. 취업 전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부랴부랴 여행 날짜를 잡았고 가기 전 면접을 보고 취업을 해놓고 다녀와서 바로
출근하고자 했던 계획이 딱 그대로 이뤄졌으니 말이다
꿈꾸던 순간이지만 출근 하루 전, 아침부터 괜히 우울감이 올라왔다. 완벽했던 하루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감정이었을까? 아이들을 케어하지 못하게 되고 또다시 남편과 다시
주말부부 같은 느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에?
거기다 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데 내가 그곳에서 잘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겪어보지 못한 두려움이 온 마음을 어둡게 눌러대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실 알고는 있다.
막상 해보면 최선을 다해서 해낼 것이라는 것을..
그 후엔 그렇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어도 되었다는 것도-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걱정투성이에 마음이 약해져 있다
이런 불안함 속에 옆에 있는 남편은 무한 용기를 해낼 수 있음을 수 없이 말해주지만 그 감정애서 쉽게 벗어나기가 어렵다. 늘 이런 연약한 감정이 드러날 때면 머쓱해진다. 딸도 아닌 아내인 나의 어리광을 보여준다는 것에-
그렇지만 마음속 아주 작은 한편으로는 나의 인생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는 것에 설렘이 자라고 있음이 보인다.
엄마, 주부만의 역할이 아닌 나의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성장할 나의 모습이 기대되기도 하고 찬 공기를 코로 맡으며 움직여야 자존감이 생겨나는 나를 잘 알기에 그런 환경이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에 우울한 감정을 애써 드러내본다.
그 생각을 할 때면 잠깐이나마 용기가 생겨나니
내일이면 우린 다시 7개월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처럼 각자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고 저녁에 만나 그 하루를 나누고 힘들고 피곤하지만 순리에 맞게 그런 하루하루를 반복하다 보면 한 달, 두 달, 일 년이 지나있을 것이고 그럼 물 흐르듯 지나간 세월만큼 그곳에 푹 젖어 흘러가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