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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하겠습니다

[12] 기꺼이

by 은조

나에게 눈치는 가장 빨리 자연스레 흡수한 능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혼자 깨우쳤고 놀라운 학습 능력으로 항상 경계선을 넘지 않으며 살게 해 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있는 시간보단 항상 타인들과 있는 시간이 많았다. 외삼촌, 외숙모, 교회 사람들부터 시작해 많은 시간을 남들과 보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그 안에서 상대방의 상황과 기분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 감정을 박살이나도 어쨌든 내쳐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리고 조금은 사랑받고 싶은 욕심에 점점

한순간도 나만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절대 미움을 받으면 안 되고 나를 위해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부담과 민폐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과해져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담과 압박이 내 마음이 가득 찼던 나날들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출근해야 해서 나에게 이른 아침이지만 작은 외삼촌네 가라고 하여 갔었는데 2층이었던 집을 향해 계단 한 칸 한 칸 올라가 현관문 앞에 다다른 그 순근 벨을 누르려는데 문 너머 안에서 밥을 먹는듯한 달그락달그락 숟가락과 그릇이 부딪히는 유리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 순간 머리에 판단이 빠르게 섰다. 지금 들어가면 밥 달라고 한다고 생각할 것만 같다는 생각의 판단.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그 문 앞에 쪼그려 앉아 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소리가 끝나면 벨을 눌러야지 하면서-

사실 나도 그때 밥을 먹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는 것도 싫을 텐데 밥까지 얻어먹으면 얼마나 꼴 보기 싫을까 나를 그렇게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더 두려웠으니 그 정도쯤은 얼마든 참을 수 있었고 참아야 했다.


잊고 지내고 싶지만 밥 먹는 상황 속 달그락 소리를 매일 마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매일 그날이 떠오른다


나의 일상은 늘 그런 식이었다.

다른 가족들과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고 같이 껴서 놀러 가고 할 때도 조금 멀리 있는 반찬이 먹고 싶을지라도 나는 항상 마음을 감추고 숨기는 연습만을 했다. 누가 그러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래야만 했다


성인이 되고 그 습관이라고 해야 하나? 그 모습은 사라지지도 없애지도 못하게 내 몸에 자석이 되어 찰싹 달라붙어 늘 가지고 가야 하는 버거움이 되어버렸다


눈치가 이어진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주변을 살피며 민폐가 되는 상황이 극도로 꺼려한다. 내가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민폐가 될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고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항상 밖에 나가면 더욱 주변 사람들을 살펴야 했다 그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라고 착각하며


그러다 보니 나의 의견을 보이는 순간들이 적어지고 튀고 싶지 않아 묻어가는 일상이 지속되었다 그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유난히 내성적이라 내 바운더리를 지키고 들키고 싶지 않았고 적정한 선을 그어놓고 사는 것이 편하다면 편했다


그렇다고 주변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이랑 못 지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두루두루 친해지기보단 한 명과 깊게 친해져 관계를 길게 유지하고 싶은 유형이었을 뿐이다


괜찮은 척 힘들지 않은 척 그렇게 척척 척을 하다 보니 집에 오면 녹초가 되지만 나에겐 탈 없이 무난하게 보낸 그런 하루가 꽤 만족스러움으로 안정되었다.


내성적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새로운 환경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환경보단 익숙하고 한결같은 상황을 유지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지금 상황처럼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야 할 때면 더 심하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걱정이 더 큰 걱정으로 돌아온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스타일이라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노력했지만 직장은 나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영역이었고 그래서 나는 다시 새로운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마주 했다.


여러 곳에 지원서를 넣고 기다리고 있는 현재.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이 바로 오지 않아 신경 쓰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막상 전화가 온다고 해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이런 걱정과 불안의 감정들이 나의 마음을 휩싸고 있다


그러다 문득 해가 바뀌고 새로운 학년이 된 아이들을 보며

그래, 이 아이들은 1년에 한 번씩 반이 바뀌어 친구들도 선생님도 변하는 환경을 감당해야 하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처음 이 두려워 지레 겁먹고 있는 모습이 너무 우습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마음을 단단히 굳세게 붙잡을 거라 다짐하며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그래, 면접 전화야 다 와라. 기꺼이 감당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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