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실패
스스로 감정을 잘 숨기며 드러내지 않고 그래도 그러지 않은 척을 잘한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그 자부심이 남편 앞에 서면 항상 와르르륵 무너져 내린다.
도대체 남편은 나에게 무슨 존재일까?!
너무 사랑하고 좋은데 미운짓을 할 때면 확 미워지고
나의 마음을 자극할 때면 내가 느낀 자극을 몇 배로 돌려주고 싶고 막 건드리고 싶은데 건드려지지 않아 약 오르는 이런 여러 감정을 한마디로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싶다가 알게 되었다.
이 감정은 지독한 사랑이라는 것을.
남편과 나는 정말 잘 싸우지 않는다고 떵떵거리며 말할 수 있었는데 지난, 12월은 무슨 일인지 하루 걸러 싸우는 패턴이 이어지는 나날들이었다. 그런 일상 속 남편이 미워졌고
그 미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사랑이 좀 빠져야 한다는 걸
알기에 나는 혼자 다짐했다
남편을 덜 사랑하기로. 관심을 줄이고 감정을 깎아서
질투도 화도 나지 않는 상태로 만들기로 말이다.
그 상태의 결론은 조금 덜 사랑할 수 있도록 감정을 조절하고사랑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척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한 며칠은 스스로 감정 속이기가 잘 되었는데 그 며칠에서
하루하루 지날수록 애써 숨긴 감정은 다시 튀어나오려고 발버둥을 쳐대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애써 다시 미웠던 날을 떠올리며 다시 그러지 않는 척을 해보았지만 날이 갈수록 쉽지 않음을 인정해야 했다
매번 싸울 때마다 그렇게 나를 무너뜨릴 때마다 조금 덜 사랑하자고 사랑하지 않는 척을 하자고 다짐해 보았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실패한 것.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가만히 있는 남편에게 다가가 나한테 미안하지? 미안하지? 물으며 대답을 강요한 뒤 용서해 주겠노라 선언을 했다.
남편 입장에선 가만히 있다 봉변당했다고 느끼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회복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해야 했다.
서로 술 한잔 마시는 그때 답답한 마음에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 이렇게 안 싸우는데 요즘 왜 이렇게 많이 싸우지?
그래, 주변에서 10년 넘으면 정말 사랑보다는 가족 의리 감정으로 살아간다는데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더 중요시 여겼기에 싸움이 반복되었나 봐.
이제 변해가는 과정을 인정해야겠다고 이야기를 하니 남편은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럼 뭔데?
단지 내가 10년 전과 다르게 본인에게 까불어서 그런 거라며 이야기를 하는데 처음엔 뭘 까불어라고 막 하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쭉 생각해 보니 양심이 찔리긴 찔렸으니-
분명 나는 남편이 하는 말을 법처럼 따랐다.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고 괜한 분란을 만들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그런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렇게 살면 큰 소리 없이 평온하게 살아갈 순 있었지만 하루하루 마음속에 작은 응어리가 덩어리가 되어 살이 붙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이렇게 두다간 커질 대로 커져버린 덩어리를 감당할 수 없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겨났다
그래서 나는 터지기 전에 그 감정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까부는 것이 아니라. 인간아
몇 년 동안 뭉쳐질 대로 뭉쳐진 것들이 한순간에 부드럽게 싹녹아내리진 못할 것이다.
이렇게 다시 새로운 환경에 놓인 우리 부부는 그 과정을 자주 싸운다고 느꼈던 것이지만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어렵지만 함께 나아가며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건강하게 녹아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도 미울 때면 척을 할 수도 있겠지만 웬만하면
하지 않고자 한다. 내가 더 괴로우니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분명 남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