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값진 경험
한때는 회피가 무조건 답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땐 그것이 나에겐 적당하다고 답을 내렸던 때이기도 하고
또 그것이 정당하다고 합리화하며 살아갔던 순간들이기도 했다.
나를 그렇게 만든 건 스스로가 아닌 주변 환경의 탓이라며
엉뚱한 곳에서 이유를 찾아 원망하며 지냈던 나날들이었고 그것이 나의 최대 무기인 마냥 숨고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그땐 몰랐지만 이젠 알고 있다.
그 모든 건 자신 나 스스로 만든 환경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용기가 부족했고 질타받는 것이 두려웠고 그 안에서 수긍하는 것이 힘들었던 큰 문제였다고 말이다.
이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며칠 전, 소아과에서 2년 동안 일한 경력으로 다른 소아과로 옮기게 되면서부터였다.
워낙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부담이 큰 사람으로서 그것부터가 위축될 거라 생각했지만 정말 나이를 헛으로 먹는 것이 아닌 게 생각만큼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아 스스로도 너무 신기했던 낯선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 수월하다 싶은 그때, 다른 곳에 두려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첫날, 출근한 뒤 경력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하는 행동엔 다 경력 있으니까 혹은 다 아는 거잖아요?라는 말들이 따라오는 것
그러다 보니 전에 일하던 병원과 다른 부분이 있어 궁금하고 모를 때 물어보고자 하다가도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
“경력직이 왜 그래? 다 아는 거 아니었어?” 소리 듣는 것이
두려워 차마 묻지도 다가가지도 않는 나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첫 출근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앞으로가 막막해지며 스스로에게 화가 났고 그러다 보니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져 밤새 뒤척이며 잠에 들지 못하고 있던 그때 이젠 알게 된 그 개념으로 다시 마음이 바로잡은 것이다.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 두 번은 피할 순 있겠지만 마냥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냥 빠르게 내 것으로 만들자는 생각과 함께 그러려면 부딪치면서 배워야 한다는 판단이 빠르게 서면서 회피하지 말고 돌진으로 계획을 변경하게 되었다.
새벽 내내 첫날 배웠던 것들 다른 점들 내가 회피하고자 했던 부분들을 또 생각하고 더 생각하고 계속 생각하느라 결국 잠은 자지 못해 몸은 피곤했지만 이상하게도 출근하며 찬바람을 쐬니 정신은 개운하게 말끔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정말 그날 내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전투적으로 뛰어들었고 실수할지언정 차분히 다시 다시 하며 잘 마무리할 수 있었고 안 해본 것에 대한 큰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붙어 보았더니 못할 것만 같았지만 막상 해보니 내가 할 수 있던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맡을 때면 쭈뼛거리지 않고 더욱 조심스럽지만 자신 있는 모습으로 해내고자 용기를 내뿜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전날 못 자기도 해서도 있었겠지만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바로 잠이 들 정도로 머리가 개운했다.
생각나는 것들이 두려움이 아닌 궁금증과 자신감으로 연결되어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겨우 이틀 나간 현실이지만 나는 앞으로도 회피 말고 도전하고 돌진할 생각이고 혹여 모르는 부분이 나오더라도 못한다 못한다 하지 말고 어렵다 힘들다 생각하지 말며 할 수 있다는 마음과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장착해 모든 일을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내 것으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결국 내가 해야 할 일들이니까-
그럼에도 다음날 출근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기는 하지만 이건 두려움의 쿵닥쿵닥이 아닌 기대가 동반된 떨림의 콩닥콩닥이라는 것만으로 나름 큰 위안을 얻는다.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순 없다는 것을. 하루하루가 쌓이며 배워가야 하는데 그걸 경험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때 쌓인 경험은 절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아주 귀하고 값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지금 다시 한번 값진 것을 얻기 위해 그 과정 위에 서있는 중이라는 것 명심, 또 명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