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허리 펴, 울지 말고

by 은조

불공평하다고 느껴던 날 중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분명 스케줄 표에는 진료실로 되어있음에도 데스크가 바쁘다는 이유로 처음엔 약간의 도움 비중에서 어느 순간부턴

당연하다는 듯 하루 종일 접수대를 지켜야만 했다.


그러니 진료실이라고 쓰여있는 스케줄 표는 더 이상 나에게 무의미한 글자였고 순리에 맞지 않은 일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채 모두가 당연시하게 여기기는 매우 이상한 일로 변해만 갔다.


솔직히 난 진료실을 배우고 싶었지 접수대 앉아 있기 싫었다. 그 이유엔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앞으로 내가 혼자 해내야 하는 곳은 접수가 아니라 진료실이라는 것! 훗날 혼자 진료실을 책임지라고 스케줄표를 짜놓을 텐데 이렇게 배우지도 못한 상황에서 혼자 해야 한다면 손해 보는 것은 결국 나 아닌가? 그런 걱정이 드니 불만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 일!


또 한 가지는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고일대로 고인 기분파인 직원선생님 때문이다. 본인의 기분에 따라 접수대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본인의 컨디션에 따라 되는 것도 안되고 안 되는 것도 되는 무한 이기주의 규칙이 성립되기에 매일 달라지는 장단과 박자를 맞출 수 없는 나로선 너무나도 괴로운 곳으로 여겨질 뿐이다.


또한 내가 신입이라는 이유로 하는 내가 하는 행동, 말투 하나하나 유심히 지켜보는데 보는데... 그 눈빛은 마치 알려주려고 하는 모습이 아닌 틀리는 것만 잡아서 뭐라 하려고 기다리는 사람의 눈빛을 발사하고 있으니 나같이 주눅이 잘 드는 사람은 벌써 움추러들기 마련이다.


뭘 하면 못한다고 하면서 마음에 안 들어하는 표현 한가득 내뿜으면서 뭐 한다고 나를 굳이 진료실에서 빼내 옆에 앉혀놓을까? 이해할 수 없던 마음이 얼마 안 가 깊이 알게 되었다


부려먹고 싶어서, 심부름꾼이 필요해서 단지 그것뿐


그날도 주눅 들긴 했지만 안 든 척, 괴롭긴 했지만 최대한 티매지 않으려 애쓰며 접수를 보고 있던 때, 접수하러 한 명의 환자가 내 앞에 섰고 무언가를 물어보기에 대답해 주었지만

아니라며 반복해서 계속해서 묻는 것이다.


나 또한 그것에 반복해서 대답해 주는데... 옆에 있는 직원선생님이 모든 직원들이 공유하는 메신저에 환자 앞에 앉혀 놓으라는 문자를 보낸 것.


다행히 그 문자를 바로 본 나는 환자에게 잠시만 앞에 앉아 계시겠어요?!라고 말했고 그 말함과 동시에 환자가 뒤 돌아 가는데... 옆에 있던 직원선생님이 버럭 하며 모르면 말하지 말고 앉혀 놓으라고 환자 앞에서 모르는 거 티 내는 거냐며 나에게 막 쏘다부치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다시 본인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속된 말로 앉은자리에서 때려 맞은 나는 예상치도 못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마디도 못하고 황당하여있었고.....


다음 환자가 들어오고 나서야 내 감정이 하나하나 느껴지기 시작하며 그 자리에서 한마디도 못했다는 사실에 열받음과 동시에 서러움의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운다면 이상해지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꾸역꾸역 눈치 없이 삐집고 나오려는 방울을 삼켜보았지만 뜨거운 느낌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려는 것이 결국 멈추려 하지 않아 화장실로 달려가 쏟아내고 말았다.


흘려보내면서도 머릿속으론 자리로 얼른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울고 나면 충혈되는 눈과 빨개지는 입술을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하는 현실이 더럽고 치사하게 느껴졌다.


언제까지 밑바닥에서만 눈치 보며 살고 언제까지 한마디 속시원히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 왜 이 모양으로 태어나 이 지경으로 하루하루 구겨지고 참아내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얼마나 잘 살겠다고-


그 조금 흘린 눈물이 그래도 마음을 비워주었고 거울을 보며 애써 웃으며 미소를 지어 스스로 마음을 다독여보았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그때 들어오는 평소 이런 말, 저런 말 걸어주시는 청소 여사님.

반갑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누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자리로 돌아와서도 쉽게 가라앉진 앉았지만 옆에 그 사람은 내가 운 걸 몰랐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며 올라올 거 같으면 물을 삼키며 눌러주었다.


끝나기 전, 기구를 닦으러 갔다.

그곳에 여사님이 계셨고 각자 할 일을 하던 중 평소와 같이

여사님은 나에게 일은 할만하냐며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시며 항상 허리 펴고 걸어, 울지 말고-


음?! 평소와 같이 네네 대답하던 나는 네? 저 안 울어요~라고 대답하자 여사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다 봐. 그러면서 또 한 번 말씀하셨다.


항상 허리 펴고, 울지 마-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23화23. 보이기 시작하는 틈